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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부럽고 서로가 위로되는 사이

주어진 것이 다 다르다는 것을...

by 크런치바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걸어 놓고는 상대방이 받으면 전화를 받았다고 놀라는, 그런 관계의 친구가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덜렁거리기 전문가였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며 제법 정신 차리고 살지만, 둘 다 여전히 전화 연락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화를 걸면서도 으레 안 받겠거니 생각하는데, 상대가 전화를 받는다?? 깜짝 놀라 웃음부터 터지고 만다. 물론 그 통화 연결이 자주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오랜만에 그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통화 연결이 되자마자 우리는 또 재미있어 웃음이 났다.


우리는 20대 취업 학원에서 만났다. 같은 꿈을 꾼다는 건 엄청난 것이었다. 아직 무엇도 이루지 않았던 그 시절, 세상에 인정받을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꿈을 인정하고 응원했다. 그렇게 20대 청춘을 같이 보냈다.


친구는 결혼 후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우리의 꿈이었던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 후 몇 년 더 일을 하다 둘째를 낳고 그만두게 됐다.


이후 10년이 흘렀다. 친구는 결혼하며 시작했던 일을 계속하고 있고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간간히 하고 있다.


나는 친구가 멋지고 부럽다. 아이들을 키우며 공부를 이어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된 일이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견디며 지키고 이뤄낸 것이다.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점점 입지를 다져 회사는 물론 대학 강의까지 하게 된 친구가 나는 한 없이 자랑스럽고 멋지다.


그런 친구가 최근 몇 년 간 일이 바빠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회사 구조 상 앞으로도 혼자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아 더 막막한 듯하다. 엄마가 바쁜 사이 홀로 남겨진 아이들을 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러고 사나?' 싶으면서도, 친구는 그만둘 용기도 없어 매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는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는 나를 부러워한다.


"그거 하나는 정말 감사한 일이야."


나도 이 친구에게만큼은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다.


딴 사람은 몰라도 난 니 속을 안다고, 천하의 네가 힘들다고 말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힘든 거냐고 맞장구를 쳤다.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 미안해서 나는 더 신나게 맞장구를 쳤다.


"너는 좀 어때?"


돈이 벌고 싶다고, 내 일을 갖고 싶다고 노래 노래 부르는 나를 아는 친구는 내 안부를 물었다. 내가 한풀 꺾여 지내는 것을 아는 녀석이다.


사실 뭘 대단히 해낸 것도 없는 나는 이럴 때 말수가 줄어든다. 실패도 한두 번이지 자꾸 뭐가 잘 안 됐다거나, 아니었다고 말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실 핑계나 변명은 아닐지 자신도 없었다.


꾸물거리는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사람들은 몰라도 자기는 내 마음을 안다고 말이다.


집에서 아이 곁에 머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 누군가 보기엔 부럽고 때론 편해 보이겠지만 열심히 살아왔던 너도 얼마나 니 자리를 갖고 싶었겠냐고, 육아의 고단함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덧붙였다.


친구는 우리가 아무리 서울, 제주에 멀리 떨어져 살아도 경단녀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면 고민하고 있을 내가 늘 생각났다고 했다. 전화는 서로 잘 못 받아도 이래서 친군가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기도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친구는 해왔던 시간이 아까워 일을 그만 둘 용기가 없었고, 나 역시도 아이들 곁에 머무는 것을 포기할 용기가 없었다. 그럼 어쩌겠나, 사람마다 다 주어진 것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건 소주 한 잔 하면서 해야 될 얘기라며 서로 '캬' '캬' 해댔다. 12시가 막 넘은 점심시간에 우리는 한참 소주 타령을 하다 전화를 끊었다.


"한 잔 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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