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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엄마 되기는 글렀다.

'다정'이 어려운 순간

by 크런치바

"Are you Okay? No prblom! I love you."

"괜찮아? 문제없어. 사랑한다."


아이가 실수했을 때 미국 엄마들의 반응이란다. 접시를 깨거나 혹은 어떤 사고를 쳤을 때, 미국 드라마나 영화 속 온화했던 엄마들이 떠올랐다. 김창욱 교수님도 강의에서 이 주제를 한 번 다루셨는데,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덕분에 안정감을 얻고 실수 앞에 위축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나 역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서 저런 따뜻한 미국 엄마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덤벙대다 물컵을 떨어트렸다? 집에서 뛰어놀다 물건 하나가 부서졌다?


"괜찮니?"가 웬 말인가. "일루 와!!"로 시작하는 무시무시한 액션 장르였다. 주변을 둘러봐도 사는 모습은 다 비슷했는데, '천사들의 합창' '나 홀로 집에' 속 미국 엄마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저렇게 자상할 수가 있다고??


그래 그래, 저런 훈육과 사랑이라면 내가 진짜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잘 살았겠냐고. 내가 애만 낳아봐라, 백 번 천 번 괜찮다고, 아이의 실수 앞에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안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리라 다짐했었다.


그 다짐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도 이어졌다. 드디어 애 둘 엄마가 됐고 이제 정말 내 그 다짐을 이루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정'이 뭐였더라? 나는 실수하는 아이들에게 "야!"가 자동 반사로 나온다.


오늘도 그랬다. 2박 3일 할머니집에서 신나게 놀고 온 아이들이 집으로 복귀했다. 아이들이 없는 사이 깨끗하게 빨았던 침대 이불에 아이들이 누우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역시 나 모성애가 좀 있나 보다 싶은 순간이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작은 아이가 향기도 좋고 최고라며 엄청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그때 자려던 아이가 소화가 안 되는 거 같다고 했다. 나가서 약 먹고 올까? 물었더니 싫다고 갖다 달라는 거다. 내가 오래간만에 열심히 교체한 침대 이불이 눈에 밟혔지만, 나는 아이에게 선뜻 누워 있으라며 약과 물을 챙겨 들어왔다.


시럽 약을 대충 슬슬 빨아먹던 아이는 결국 주황색 약을 이불에 줄줄 흘리고 말았다. 3일 만에 만난 아이에게 솟구쳤던 나의 모성애는 그렇게 마무리 됐다.


"야!!!!!!"


돌아서면 그게 별 건가 싶지만, 결국 그 순간에는 또 자동 반사다. 관대하지 못한 건 미안하지만, 또 너도 꼭 그렇게 이불 안에서 대충 먹어야겠니??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고 보니 이불 그거 너무 별거 아니다.


'아, 멋있는 엄마 또 못했다.'


아니 그런데 미국 엄마들은 정말 그렇게 따뜻한 얼굴로 "괜찮니? 문제없어. 사랑한다."라고 말한다고? 진짜 그게 가능한 거야? 유전자의 문제는 아닐까. 아무튼 꽤 부럽다.


어쩔 수 없다. 토종 한국 엄마는 자는 아이 보며 내심 미안해서, 내일 아침밥에 고기로 점수 좀 따볼 계획을 세우고 자러 간다.


'미국 엄마 되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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