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번에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고. 네 덕분이야."
세미야.
정말 너 덕분이었어.
생각해 보니 15년이더라, 결혼하고 내가 아등바등 '이룸'을 욕심냈던 시간이. 그 긴 시간의 종지부를 드디어 찍었다. 이제는 정말 뭘 하지 않으려고 해.
돌이켜 보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일명 '멀티'가 잘 안 되는 사람이었어. 공부를 할 땐 놀지를 못했고, 놀 때는 공부를 못했어. 일이 좋아서 푹 빠져 지낼 때는 친구는커녕 아이도 제대로 돌보질 못했어. 아이에게 미안해 육아에 집중하자 마음먹고 나서는 내 몸 하나 씻는 것도 잘 못하더라.
그게 어쩌면 내 인생 체력이었는데, 나는 그걸 눈치 못 채고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가지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 골고루 잘 해내는 사람들도 있잖아. 나도 그중 한 명이기를 바랐던 건가 봐.
아이들이 크면서 조금씩 내 시간이 생기니 나는 뭐든 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성급하게 내 꿈을 진단하며 학원도 다니고, 때로는 내가 알 수도 없는 분야에 뛰어 들어서는 내가 그 일을 잘하기를 꿈꾸기도 했어.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뭔가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었는데, 사실 나는 도무지 내 자리 같은 곳이 없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던 것 같아. 실상은 하다 관두고, 하다 관두고의 연속이었어.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뭐든 빨리 이뤄야 했던 나는 늘 발을 동동거리며 살았어. 그러다 올해는 정말 바쁘더라고. 내가 벌려 놓은 일들을 다 해내려면 쉴 틈이 없었는데, 나는 어떤 즐거움도 성취감도 없더라. 여기에 벌이마저 얼마 안 되니, 내가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었어. 게다가 그놈의 꿈 타령, 인생 타령에 사람이 나날이 진지해지더라고. 그래서 결심했지.
'이럴 바엔 꿈을 꾸지 않는 게 낫겠다.'
받아들인 거야, 내 그릇을. 무려 15년 만에. 어쩌면 평생 가져왔던 나에 대한 과장된 꿈을 드디어 내려놓은 것 같아.
그런데 그거 알아? 난 내 인생을 고민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늘 외로웠거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내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서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그렇게 외로웠어. 웃기지? 원래 인생은 혼자 고민해야 한다는 고집과 이해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뒤섞였던 것 같아. 그래서 고민을 슬쩍 흘리긴 해도, 속을 다 꺼내놓은 적은 거의 없었거든.
근데 이번 내 결심의 과정에 네가 함께 해줬어. 나의 결심과 그 결심의 배경에 있던 내 고민을 이렇게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얘기했던 건 정말 처음이었거든. 내 얘기를 밖으로 꺼내놓고 후회하는 나의 습관 같은 감정도 들지 않았어. 너는 내가 어떤 마음을 얘기하는지 알지?
인생은 혼자 잘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순간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어. 늘 스스로 혼자 해내는 것을 선택했지만,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때 가끔은 외로웠거든. 그런데 덕분에 이번에 나는 외롭지 않았어.
우리는 어떻게 같이 글을 쓰고 서로 읽으며 각자의 인생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게 됐을까? 지인이 내 글을 읽는 것을 상상조차 안 했던 우리가 말이야!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치?
세미야. 각자 바쁘게 살던 우리는 아마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은 순간 또 만났나 봐. 내 결심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너여서 무척 감사해.
너 역시 너의 얘기를 감사하게도 나에게 꺼내주고 있으니, 너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역시 너를 무척 응원해!'
-2025년 8월 7일 인생에 오래오래 남을 우리의 뜻깊은 순간들을 담아, 세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