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시험을 돕다가
'졸면서도 슬프다.'
아이의 시험을 도와주려고 옆에 앉아 있다 든 생각이다.
큰 아이는 내일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을 본다. 아이는 내일 시험장에 갈 준비를 하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 날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 역사가 재미있다고.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놀라고 또 놀라웠다. 왜냐하면 내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니까. 도리어 그 반대였으니까.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성실한 아이긴 하지만, 공부를 대단히 좋아하는 학생도 아니다. 하긴, 세상에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싶긴 하다. 어쨌든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데 뭐든 좀 해놓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결국엔 "공부해라!" 소리를 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에게 자격증 같은 걸 따보면 어떻겠냐고, 한국사도 급수 시험이 있다고, 나는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얘기를 잘못 꺼냈구나!!' 분명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 아이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이럴려고 역사가 재미있다는 말을 한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이미 늦었다, 엄마는 단단히 결심을 했거든. 너를 꼭 어떻게든 설득해보고 싶었어. 그게 공부일지 네가 좋아하는 것일지 조금은 모호했지만, 무엇인가를 노력해서 이뤄내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거든.
결국 아이는 여름 방학에 있을 시험을 보기로 했다. 대신 시험이 끝나는 날 맛있는 걸 사달라는 조건이 붙었다. 얼마든지! 그리고 하나 더! 공부하다 어려우면 엄마가 좀 도와달란다!!!
그렇게 우리의 한 달이 시작됐다. 하루에 한 단 원씩 공부하고 어려운 내용은 나에게 물었다. 엄마의 역사 지식이 얕은 건 일찍이 공표했다. 그럼에도 6학년 아이는 나를 배울 맘으로 쳐다봤다. 그 눈빛이 고마워서 "엄마가 한 번 찾아볼게!" 말하고 같이 공부했다. 책을 보다 모르면 네이버 선생님께 배우고, 남편에게도 물었다.
간신히 간신히 아이의 질문에 답을 찾아 도와주며 하루에 한 번씩 아이 옆에 앉아 있었다. 정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약속은 지키고 싶었고, 선생님은 절대 될 수 없지만 같이 궁금증을 찾아가는 동지가 있다는 점에서 아이도 좋지 않을까? 내심 혼자 상상도 해봤다.
하지만 한결같은 건 나의 하품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역사책 글씨를 보기만 해도 나는 졸렸다.
평생을 봐도 역사는 늘 낯설다. 까마득하고 어려워서, 책을 펴는 순간 자동으로 잠이 쏟아졌다. 새로운 단원으로 넘어갈 때면 이미 기억해야 할 내용도 많은데, 또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면 이걸 어떻게 다 외우나 막막해서 읽히지도 않았다.
매일 졸고 있는 나를 보고 아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할까 싶어 민망한 날도 있었다. "엄마에게 역사는 그런 거야. 그런데도 내가 같이 공부를 하고 있잖아.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지??" 말하며, 그렇게 나는 내 공을 열심히 높였다.
아이보다 엄마가 누워서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던 그 한 달의 막바지, 우리는 드디어 조선의 후기를 배웠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자세한 얘기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들.
외워야 할 때는 막막하기만 했던 역사였는데,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찬찬히 들여다보니 너무 슬펐다. 외워야 하는 단어들마다 엄청난 일들이 실려 있었다.
독립을 하고도 얼마나 우리가 오래 힘들었는지, 아이와 같이 사건별로 나열할 때는 감성적인 'F' 엄마도 대쪽같이 이성적인 'T' 아들도 가릴 것 없이 먹먹했다.
진짜 살 만한 나라가 된 것이 내 나이보다도 짧다니, 알았으면서도 또 놀랐다.
우리의 역사 공부는 오늘 밤으로 마무리 됐다. 앞으로 아이가 나에게 또 도움을 청할지는 모르겠다. 일단 잘 몰라서 알아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고, 하다가 아까 그거 잘못 말했다고 번복도 자주 했다. 그 밖에도 매우 매우 많다.
그럼에도 나는 못 잊을 것 같다, 졸면서도 슬펐던 이 마음이. 아마 처음으로 역사를 '공부'했나 보다.
-아들 공부시키려다 졸지에 같이 공부해야 했던 엄마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