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도 키우고, 나도 키우고.
나는 매주 수요일 목요일이 바쁘다. 최근 내가 하고 있는 수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충분히 소화할 만한 일정이다. 오전 시간에 부지런히 준비하고 움직이면 되니까.
하지만 방학은 다르다. 아이들 아침, 점심을 챙겨주며 나도 수업을 준비하고 오후에는 수업 중간 아이들 이른 저녁밥도 챙겨줘야 한다. 오늘은 저녁에 아이들을 데리고 친한 가족의 시골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이것저것 챙길 것까지 생각하니 유독 분주한 아침이었다.
아침밥을 챙겨주는데 작은 아이가 계란찜은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후다닥 해버렸으면 좋겠는데 자기가 전자레인지에 계란찜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종종 하던 것이라 하면 되는데, 오늘은 안 했으면 싶었다. 마지못해 하라고 했다.
밥을 먹고 치우니 큰 아이가 채점받아야 하는 숙제를 들고 왔다. 오늘 일찍 약속이 있어 할일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했다. 숙제를 챙기는데 시간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 할 일들은 언제 손에 잡을 수 있을까, 짤막한 시간에도 마음이 분주했다.
작은 아이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먹고 하면 5분, 10분이면 될 일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오늘 저녁 놀러 가는 일정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각자의 출발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왜 두 집이 따로 가는지, 그렇다면 아이들이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등을 물었다. 궁금할 이야기들이었는데,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
대답은 하는데 짜증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제발 그만 좀 하자 싶은 마음이다. 알아서 데리고 갈 테니 이제 나 내 일 좀 하자!! 이 말을 꺼내지만 않았지,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녀석이 빨리 안 온다, 준비시켜 내보내야 하는데 참 안 온다. 오는 길에 인형을 휘두르다 구슬을 쏟았다. 괜찮으니 빨리 오라는데 자꾸 안 온다! 결국 "좀 와!!!!!!!" 소리를 듣고서야 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꾹꾹 눌러뒀던 짜증은 이제 비집고 튀어나와 감출 수가 없다. 감추기는커녕, 활활 타올랐다. 엄마가 일주일에 딱 이틀 바쁜 날인데, 그날을 못 도와주냐고 원망을 했다.
백 절까지 준비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1절에서 멈췄다.
그 사이 큰 아이는 약속에 갔다 오겠다고 부랴부랴 나가고, 작은 아이는 미안하다고 후다닥 할 일을 마쳤다. 그리고 집이 조용해졌다.
상황 종료. 해결되었으니 이제 그렇게 노래 불렀던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일단 속이 답답해서 좋아하는 음악의 짧은 릴스 영상들을 둘러봤더니 화가 좀 가라앉았다. 근데 이상하게 개운치가 않았다.
나는 바쁜 날 아니면 아이들과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삼고 즐겁게 보내는데 아이들은 왜 나의 이틀을 존중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따 오면 날 좀 존중해 달라고 꼭 얘기하려고 생각해 보니, 막상 애들이 오늘 아침 날 존중 안 한 건 뭔지도 더 모르겠다.
밥을 달라 해서? 계란찜을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자꾸 뭘 물어봐서? 채점을 해달라 해서?
이렇게 분해해서 하나씩 적어두면 아무 일도 아니라 현타가 온다. 이 하나하나가 뭉쳐지면 생기는 압박이 분명 있는데,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솔직히 애들에게 이 중 뭘 하지 말라고 말해야 하나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이미 마음이 바빴다. 어제도 아무리 바빴어도 한 두 가지 미리 챙기고 잘 수는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하고 할 일을 준비 시작해도 전혀 문제없는데 미리부터 바쁘다고 스트레스를 끌어온 것도 사실이다. 릴스 보고 짜증을 가라앉힐 5분의 시간이 있었으면, 애들 질문에 충분히 답해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쁘다고 함부로 짜증 내지 말자.', '미리미리 준비하자.' 다짐한다. 그렇지만 너네도 이런 날은 계란찜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어떻게든 말해보고 싶은 궁리가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내가 이래서 바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