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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혼자 있는 게 좋습니다(2).

나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by 크런치바

'지친 걸까, 원래 내향적이었던 걸까?'


나를 보며 자주 드는 생각이었다.


나는 외롭다고,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열심히 듣고, 열심히 웃고, 가끔은 수다에 열심히 동참하며 살았다. 친구 많은 사람이 순간순간 부러웠고, 나도 나이 먹으면 곁에 사람이 많은 그런 사람으로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주도적으로 잡은 적은 없지만 약속이 생기면 반가웠고, 사람들에게 오는 전화도 메시지도 참 열심히 받았다. 전화가 오면 가끔 귀찮으면서도, 막상 연락이 드물거나 달력 안에 적힌 일정이 적을 때는 불안했다.


함께 할 사람이 나는 꼭 필요하구나 싶었다. 나는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요즘 깨달은 것이 나는 사실 혼자 있는 게 제일 좋다. 별일 없는 평일이 주어지면 무척 설렌다. 혼자 있으면서 하고 싶은 일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그때그때 다르지만 별 건 없다.


일단 집을 부지런히 치우고 깨끗해진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컵에 좋아하는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는 읽고 싶었던 책을 읽기도 하고, 일기처럼 글을 끄적이기도 한다. 좋아하는 야구 영상들을 찾아보거나 경기 일정들을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꼭 치우고 싶었던 집의 한 구석을 치우기도 하고, 장을 봐서 만들어보고 싶었던 반찬들을 만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가계부 적기에 심취하거나, 대청소를 하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좋아하는 향의 샴푸나 바디워시로 느긋하게 씻는 시간은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이렇게 할 게 많아서 늘 혼자 만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한 없이 귀하다. 그래서 쉴 수 있는 날이 생기면 나는 점점 약속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내가 지쳐서 그런 줄 알았다. 만사 다 지쳐서, 그냥 혼자 있고 싶어진 줄 알았다.


사는 게 힘들었던 엄마의 무거운 하소연, 본인 얘기를 쏟아내시는 어머님, 친하다는 이유로 내 인생을 휘젓는 친구, 밝은 사람이고 싶었던 나의 강박,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혼자 보고 살았던 나의 모자람, 경제적인 책임감, 이루지 못했다는 패배감 등등 수도 없는 이유를 대며 혼자 지내는 시간을 갖기 시작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는데,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외로울까 봐 불안했던 마음이 도리어 사라졌다. 그리고 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수많은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 원래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밖으로 돌아도 늘 뭔가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었다. 혼자가 되면 외로울까 봐 그렇게 겁을 먹었는데, 나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그 시간이 있어야 마음의 안정을 얻고, 충전이 되고, 또 다음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걸 나이 마흔다섯이 다 되어서야 아는 사람이 바로 나다.


평생 그렇게 덜렁거리고 뭘 빼먹고 다니더니, 나는 나를 아는 것도 덜렁이처럼 또 놓치고 이제야 알아챘다. 나도 참 나다. 내가 어이없기도 하고,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덜렁이로 태어난 걸 어쩌나, 이제라도 안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 내가 나를 이해하고 잘해줘야지, 누가 나를 잘해주나? 나를 키우기로 했으니, 인심 크게 나를 다독여주기로 했다.


그걸 시작한 게 벌써 오래전이다. 그 이후에도 나는 계속, 혼자 있는 시간이 귀하고 좋다.


지쳐서가 아니라, 비로소 편안하고 진심으로 즐겁다. 늦게라도 깨달아 다행이다.


'사실 혼자 있는 게 제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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