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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살 만 해져야 생각나고 할 수 있다.

40대 부부의 인생 이야기

by 크런치바

'뭐든 살 만 해져야 생각나고 할 수 있다.'


글이 그렇게 의지가 되고 좋음에도 내 코가 석자이니 한 자도 쓸 수가 없었다.


가끔 글에도 털어놓았듯 우리 부부는 시부모님과 관련된 고민들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민이 계속되면 결국 곪고 만다. 우리도 그랬다, 결국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물밀 듯 터져버렸다.


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우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감정들이 꽁꽁 숨겨둔 상처 속에 숨어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 않는 상황이 두려워서 숨이 막혔고, 남편은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느껴 막막하고 절망적이었다.


우리는 감히 서로 어떤 얘기도 나눌 수 없어 이틀을 그냥 흘려보냈다.


결국 우리는 날 것의 대화를 나눠야 했다. 남편의 퇴근길 단 둘이 대화할 곳이 없어 우린 한강으로 갔다.


어두컴컴한 벤치에 앉자마자 수많은 모기가 우리를 뜯어댔지만, 오직 단 둘이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곳은 우리에게 그곳이 유일했다.


서로의 잘못이 아닌데 이렇게 지치고 아프다는 것에 우리는 두려웠다. 해결책이 없을까 봐.....


나는 바뀌지 않는 상황을 탓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경계가 필요했다. 예를 들면? 밥은 언제든 살 수 있다. 다만 우리 형편에 맞는 밥값의 범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경계가 없어 매 순간, 내 책임과 역할의 범위가 대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가의 식사비를 할부로 계산한 경험도 몇 차례 있다.


그 말에 남편은 미안해했다. 어쩌면 스스로 마주하기 힘든 현실에 '그냥 내가 해버리고 빨리 끝내자!'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 과정은 책임감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배려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감정에 치여 내게 안정적인 경계를 지어주지 못했다며, 남편은 내게 다짐했다. 앞으로 든든한 경계를 만들어주겠다고. 그 말을 하는 남편이 너무 안쓰럽고 애틋해서 나는 더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고민 끝에 혼자 말고 같이 하자고 했다.


그날 벤치에서 일어나 집까지 걸어온 길은 내게 큰 산을 넘어 내려온 듯 느껴졌다. 벤치로 향하던 나는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눌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서로를 원망하면 더는 답이 없을 것 같아, 무척 두려웠던 길이었다.


그 길을 우리가 다시 손을 잡고 돌아 나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동안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수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는 늘 깊고 진솔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속에 많은 상처들이 쌓여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결혼 15년 만에 깨달았다.


어느덧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이제 각자 마음가짐을 달리 먹었다. 서로의 생각과 노력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나는 내 남편의 아픔을 보았다. 책임과 역할을 도맡고 살아온 여정 속에 사랑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남았다는 남편의 말이, 그 아픔을 나한테도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는 남편의 사과가 내 마음에 새겨졌다.


많이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그래서 이제 브런치에도 시부모님과 관련된, 우리의 그 아픈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내 글이 결국 그에게는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정말 나아졌으니까.


우리 부부가 길을 찾아서 정말 다행이다.


공짜로 주는 게 없는 인생이다. 그렇게 아프게 하더니, 그 덕에 나아진 것들이 있다. 냉정하기 짝이 없는 놈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살만해져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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