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앞뒤가 맞지 않네.

40대 어른 아이의 고백

by 크런치바

가끔 잊긴 하지만 나의 첫사랑, 나의 첫 아이.


어느덧 6학년이 되었고, 이제 곧 중학생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긴 코로나 시절이 끝나고 학교에서 처음으로 운동회가 열렸다. 운동회 내내 아이는 내가 어디 있나 쳐다보느라 자신의 순서도 놓치고 경기에 1~2초 늦게 참여하고는 했다. 옆에서 답답했던 짝꿍이 면박을 주고 구박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는 오로지 "엄마!", "우리 엄마야!"를 외치며 열심히 손을 흔들고, 나와 눈만 마주치면 한 없이 웃곤 했다.


나는 "못 살아! 왜 저래, 진짜!" 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날이 두고두고 행복했던 날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엄마라면 일명 환장했던 녀석이, 이제 곧 중학생이 된다. 슬슬 사춘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하긴, 나도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6학년이면 내가 다 큰 줄 알았다. 거의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 엄마의 그 아들 아니겠는가.


이 녀석도 "내가 알아서 할게요!"의 나이가 시작되었다.


이해는 하지만 가끔 화가 나는 날이 있다. 어쩌면 그건 '화'라기보다 '서운함'일 수도 있다. 아직은 결국 엄마 손길을 필요로 하면서 "알아.", "알아요."를 남발하는 녀석이 가끔 그렇게 서운한 것이다. 저게 다 크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심 서운하고 그래서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날도 그랬다. 일요일 내내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얘기하면 큰 아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아."를 외쳤다. 그러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나는 간이 제법 된 설렁탕을 식탁에 올렸다. 온 가족이 다 짭짤하다는데 자기는 싱겁다고 소금을 더 넣는다는 거다. 모두가 짜다고 말렸는데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짜 짜, 건강에 안……."이라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 아이는 한숨을 쉬며 "알았어, 알았어."라고 했다.


결국 그 한숨 때문에 아빠에게 아이는 혼이 났다. 부모님에 대한 예의에 어긋났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었다. 나도 유독 요 며칠 "알았어."를 남발하는 녀석이 괘씸했다.


'치! 야, 너 운동회 때 나 좋다고 정신 못 차리고 손 흔들다가 짝꿍한테 구박받고 그랬었거든!!'


혼자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서운함에 속으로 씩씩거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각자의 바쁜 하루를 보냈다. 나도 유독 일이 바빴던 날이라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간에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바빠 보이는 딸에게 엄마는 밥은 먹었는지, 힘들진 않냐고 물었다. 역시 날 생각해 주는 건 엄마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바쁜데 엄마가 빨리 용건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는 거다. 사실 무슨 용건이 있었겠는가. 엄마는 그냥 딸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했던 것이다.


나는 어느덧 엄마의 안부 질문에 건성건성 대답하고 있었다. 엄마는 발을 동동 거리며 조바심이 차오른 내 심정을 귀신같이 눈치채고는 빨리 볼 일 보라며 허겁지겁 전화를 끊으려고 하셨다. 나는 "응, 엄마. 나 오늘 정말 바빠. 나중에 전화할게!"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후회가 됐는데, 망설일 틈도 없이 나는 다음 일정들을 소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데 계속 엄마 생각이 났다.


'좀 친절할 것을. 왜 그렇게 귀찮은 듯 전화를 받았을까.'


마음 한편이 내내 찜찜했다. 지금 다시 전화해서 아까 미안하다고 하자니, 종일 내가 너무 녹초라 그 전화를 할 기운이 나질 않았다. 엄마는 날 이해해 주니까, 기운 차리고 내일 전화하자 싶었다. 나이 마흔 중반이 되어도 여전히 딸 년은 나쁜 년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갔는데, 큰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엄마한테 버릇없이 굴어 미안하다고 내게 사과를 했다. 나는 큰 아이에게 알겠다고,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사과를 받고 속이 좀 후련하다 싶은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띵 했다.


'앞뒤가 안 맞잖아!'


나는 엄마에게 툴툴 퉁명스럽게 귀찮은 듯 전화를 받아놓고, 하루 종일 미안했으면서 사과 전화도 미루면서, 누가 누구를 혼 내고 사과를 받은 것인지……. 저 아이는 사춘기 까칠함이라는 명분이라도 있는데, 마흔이 넘은 나는 무슨 명분이 있는가.


복잡 미묘했다. 우리 엄마도 나 같은 기분이었겠구나 싶으면서도, 자식이 힘들어서 그러겠거니 하고 나를 이해해 주는 엄마의 마음을 나는 반이나 따라가는 건지. 반도 못 따라가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는 다음날 전화했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내 전화를 받았다. 사과는 따로 하지 못했다. 그냥 어제와는 다른 딸이 되어 다정한 질문들을 던졌다. 결국 엄마한테 사과를 못한 찜찜함은 앞으로 아들을 이해하는데 쓰기로 했다. 그렇게 퉁 치기로 했다.


아마 내 전화를 끊고 엄마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 년이 오늘은 살만한가 보내."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