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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진이 Apr 25. 2024

의식대로 적어보는 아주아주 두서 없는 글

심리적 자수성가 

어제 일을 하며 새롭게 하소서를 들었다. 티비에서는 몇번 본적이 있었던 채정호교수님 이라는 분의 간증이였다. 혹시 나도 심리적 자수성가중? 이라는 제목이였는다. 제목을 보고 클릭한 이유 내가 심리적인것을 공부하고 나를 알아가는것이 결국 나를 의지하는 것일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전혀 다른 내용이였다. 부모가 재산이 많으면 그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수 있듯이 부모의 정서적인 부분이 자식에게 영향을 준다는 내용이였다. 나도 그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에 익히 알고있고, 인정하는 부분이였다. 그런데 그 뒷부분 내용이 나 머릿속에 딩... 하고 남아있는데, 그건 부모가 돈이 없으면 아무리 돈을 달라고 해도 줄수 없는것처럼, 부모에게 사랑을 구해도 부모에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꺼내어 주려고 해도 줄수 없다는 것이였다.


나는 늘 감정적인것, 사랑, 수용, 온전히 받아주거나 어리광을 받아주는것이 참 어려웠고, 그게 특히 첫째에게 그랬었다. 그게 나에게 늘 숙제였고 죄스럽고 후회스러운 마음의 짐이였다. "엄마 돈좀 줘~" 아무리 외쳐보아도 엄마 수중에 돈이 없으면 어디서 그 돈을 주겠냐고.. 물론 정서적인것과 물질적인것은 좀 다를 수 있지만.


우리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가 새엄마 라는것을 나는 내가 결혼하고 알게되었다. 그러니 거의 30년 넘도록 할머니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쉬은에 낳으신, 쉬은둥이라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중학교정도에 돌아가셨으니 한창 엄마가 필요한 나이에 엄마의 엄마는 안계셨고, 할아버지가 적어도 64세는 되셨을것이다. 엄마가 몇살에 새엄마가 생겼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엄마에게도 엄마의 부재의 시간이 있었다. 엄마에게 20살 차이나는 첫째언니(나에겐 첫째이모)가 결혼한다고 이모부를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엄마는 7살인가 5살이였다고 하는데, 엄마가 언니랑 형부를 따라 간다고 쫓아오니, 집에서 예쁜 신발 신고 오라고 하고 돌려보내고 나니 이미 언니랑 형부가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엄마가 불쌍해서 내가 눈물이 다 나더라.


나는 가끔 엄마가 아직도 어린아이일때가 있다고 느낄때가 있다. 엄마도 어딘가에서 독립하지 못했거나, 아직도 무언가를 의존해야하는 어린아이 같을때가 있다. 때로는 그게 나인것 같고, 동생인것 같다. 그럼 그게 남편이 되거나 제부가 되는것 같아 내 마음에 불편함을 느낄때가 있다. 나의 재정상황이 좀 더 여유로웠다면 그게 부담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나도 남편에게 생활비를 타 써야 하고, 남편도 평범한 수준으로 돈을 벌뿐인데.. 게다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일을 벌려 놓았으나 그저 정말 유지만 하는 상황이라 나에게도 심리적인 압박이 될 때가 있다.


주말에는 공방 가마가 고장이 났다. 정품으로 열선을 바꾸려니 50만원은 줘야 해서, 알아보니 다들 사제품을 사서 쓴다더라. 반값으로 구매를 했지만 처음이라 고치는데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나마도 자신이 없어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연락을 해서, 오전 일만 하고 달려온 남편이였다. 얼마 되지 않는 주문작품들을 외부 소성으로 돌리고 나니 가마비와 오가는 택시비도 비용이고,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저녁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면 그 또한 돈도 되지 않는 일을 남편에게까지 벌리는것 같아 마음의 짐이다.


어제는 시간이며 돈이며.. 공방일에 쏟아붓고, 남편도 나를 도와 일은 해주고 있지만.. 참 이게 뭔가, 나를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여러가지 일들이 겹치니 눈물이 다 나더라.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좋아하지만 돈도 안되는 일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들더라. 


의식의 흐름대로 적는 글이라 두서가 없다. ㅋㅋ 참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과거에 머물러있거나, 부모탓을 하는것은 참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문득문득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가난했던 집안에서 자라 자수성가 하는것도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정서적인것도 그렇겠구나.. 심리적인것도 그렇게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 분명 필요하구나. 그래서 나는 이렇게 힘들 수 있구나 생각했다.


요가나 명상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울음이 터질 때가 있다고 들은적이 있다. 요즘 다시 요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일그러지는 얼굴이 되어 눈물이 팍 터지는.

그러다 그렇게 무언가 쏟아내는 시원함이 있어 내가 비워진다면.. 그 안에 또다른 것이 채워질 것일텐데 그 채워지는게 참 중요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깊이있는 명상과 요가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은 신앙안에서, 아니 말씀 안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들을 가지면서 그 비워진 공간들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상처를 비우고 털어내어 가벼워진다 하여도 그렇게 빈 상태로 살아갈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무언가로는 채워질텐데.. 또 나를 허무하게 하는 것들로 채우는 것은 의미가 없을것 같다. 


나의 결핍과 부족함, 연약함 때로는 그런것들을 핑계로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모든 죄를 합리화 할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나의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나의 의지가 되어주신다. 요즘은 정말 그렇다.

없어질것 없는것 허무한것을 붙들지 않고 실존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수 있어서. 그안에서 다시 나를 바라볼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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