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 날의 설거지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애꿎은 그릇들과 수저들은 화가 난 나의 화풀이의 대상이 된다. 어릴 때는 몰랐다. 왜 엄마가 아빠랑 싸운 날 한숨을 북북 쉬며 설거지를 했는지. 그 소리는 왜 그리 컸는지. 엄마가 되고, 주부가 되어 보니 나의 설거지 소리가 더 우당탕탕 거리는 날, 컵과 컵이 부딪히는 소리는 사실 내 안의 아우성이었다.
"나는 지금 무지하게 화가 났어. 내 마음을 몰라주니 정말 서운하다. 아니 나 지금 열! 받!았! 어..!"라는 내 안의 목소리를 컵과 컵들이, 숟가락과 숟가락들이 해주고 있었다. 건조대에 그릇들을 내팽개치다시피 해버리고, 장갑도 냅다 집어던져버린다. 아직은 다 마치지 않은 설거지를 통해 나는 말한다.
내가 지금 이것까지 해야 돼? 이 기분에?라고.
사실 화풀이 대상이 설거지라면 그건 양반이지, 때로는 그 대상이 아이들이 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게 아깝다고 느끼는 시기에는 발에 치이는 장난감, 아이들 가방, 연필, 작은 옷가지들까지-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라며 되려 아이들은 어리고, 나는 젊은 이 시기를 행복하게 여기고 감사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떤 날은, 어디에서 받았는지도 모르는 내 안에 삐쭉대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가 발에 장난감 하나라도 걸리면 또다시 장난감은 나의 화풀이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 이내, 이런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다시 화살이 돌아간다.
지금 나의 삶의 모습과 결과는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벗어나야 할 과거로까지 다시 나를 끌고 가 그곳의 어떤 시점, 어떤 날, 어떤 말, 어떤 사람이 나의 화풀이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것을 붙들고 화풀이를 한다고 나아질 턱이 있나. 과거에서 기인했다고 여겨지는 현재의 나로 다시 돌아오면, 결국 나의 불만족러운 시선 때문에 너무나 감사한 현재의 순간들을 잃어버릴 뿐이다.
설거지하다 든 생각을 적으려 컴퓨터 앞에 잠시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