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쯤 됐을 것이다.
20대에 꿈에 그리던 블랙 투스카니를 갖게 된 후,
셀프세차는 일상이었다.
지금은 동네에 고급진 셀프세차장이 넘쳐나지만,
그 시절은 500원짜리 동전을 넣는 세차장이 많았다.
집 근처 가장 저렴한 셀프세차장에서 세차를 하곤 했다.
(※ 다른 세차장이 2,000원 할 때 이곳은 1,500원 이었다.)
세차장 규모가 작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에는 버킷 세차를 할 수 없으니,
나는 거품솔에서 나오는 거품을 차에 묻혀 개인 스펀지를 사용해 세차를 하곤 했다.
너무 더럽지 않은 경우에는 물만 열심히 뿌리고 드라잉을 했다.
내가 이용하는 세차장 주변에는 제법 큰 주유소가 하나 있었다.
주유를 하고 자동세차를 한 후, 실내세차를 위해 세차장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손님이 실내세차만 하러 들어온다면 바로 사장 부부가 출동해서 뭐라 하기 시작한다.
내용은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사장 부부는 실내세차만 하면 안된다고 했고,
손님은 실내세차도 내 돈 주고 하는건데 왜 되냐고 했다.
결국 옥신각신하던 손님은 짜증이 났는지 실내세차를 멈추고 세차장을 떠났다.
이런 상황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세차하러 온 손님한테 저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셀프세차장인데 외부를 하든 실내를 하든 손님 마음이 아닌가 싶었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차가 많이 더럽지 않아서 물만 뿌리고 드라잉을 하고 있는데,
사장 부부가 나에게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건다.
(※ 당시 사장 부부의 나이는 50~60대 정도 되보였다.)
"왜 거품솔은 안써요?"
"차가 많이 더럽지 않고 품솔 때문에 흠집이 나는 것도 싫어서요."
나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줄 알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니 에쿠스도 거품솔 쓰는데?"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우리가 돈을 못 벌어"
사장 부부는 물만 뿌리는 내가 못 마땅 했나 보다.
순간 욱한 마음에 대답을 할까 하다가 대꾸 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말싸움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땐 그냥 내 갈 길 가는 것이 최고다.
아무 대꾸도 안하고 무시하니 사장 부부도 더 이상은 뭐라하지 않았고,
나는 묵묵히 세차를 다 하고 세차장을 떠났다.
그 후, 밤 10시쯤 아무도 없는 세차장에 버킷을 들고와서 세차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세차장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시설이 더 좋고 눈치 안주는 세차장을 이용했다.
몇년 전,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 있는 이 세차장은 언젠가부터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가 끝나고 셀프세차장은 노터치세차장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세차를 자주 하지 않기에 가끔 노터치 세차를 이용하곤 하는데,
문득 바뀐 그 곳에서 세차를 하고 싶었다.
세차장에 도착하니 젊은직원이 메뉴판과 카드결제기를 들고와서 어떤 세차를 하겠냐고 물어본다.
기계로만 노터치세차를 하는 기본세차부터 직원이 드라잉+왁싱을 해주는 프리미엄세차까지 있다.
순간 혹했지만 세차타월로 벅벅 드라잉을 하고 있는 직원의 모습을 보니 프리미엄세차의 생각이 사라졌다.
나는 기본세차를 주문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기본세차만 결제했으니 차를 닦는 직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직원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낯이 익었다. 바로 세차장의 사장 부부였다.
사장 부부는 세차타월로 열심히 차를 벅벅 닦고 있었다.
이후 나는 더 이상 이 세차장을 이용하지 않는다.
가게주인은 손님이 자신의 가게에서 최대한 많은 비용을 사용하길 원할 것이고,
손님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고의 만족을 얻어가길 원할 것이다.
실외세차를 한 손님만 실내세차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세차장의 방침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존중한다.
하지만 비용을 지불하고 세차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노터치세차장으로 바뀌어 실내세차만 하고 가는 손님이 없을 것이고,
거품솔을 사용하지 않고 물만 뿌리는 손님도 없을테니 신경 쓸 거리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몸으로 드라잉+왁싱을 하셔야하니 잡생각도 많이 없으실 것이다.
이제는 나이도 많이 드셨을 사장 부부가 노년에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