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처럼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우리 아빠는 작은 개척교회 목사였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아빠는 나에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니 원망하지 말라 하셨다.
그 말이 아빠의 유언이 될 줄이야.
아빠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미친 목사들도 많은데,
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아빠를 데려가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와 헤어진지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빠의 유언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살아왔던대로 앞으로도 계속 크리스찬으로 살아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믿는 기독교가 혐오의 종교로 변해버린 요즘.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처럼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본다.
어떤 목사는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는다.
어떤 목사는 설교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본인의 정치적 주장을 전달한다.
어떤 목사는 낮은 계급 군인의 생명보다 높은 계급 군인의 안위에 더 관심이 많다.
세습을 정당화 하는 목사와 그에게 아무말 하지 못하는 교단이 있다.
어떤 크리스찬들은 사찰 한복판에서 땅 밟기와 통성기도를 한다.
어떤 크리스찬들은 무슬림 사원 앞에서 돼지고기 수육 파티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찬에게서 이러한 극단적 행태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배척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성경을 펼쳐 요나서를 보자.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에 갈 것을 명하신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다.
하나님은 큰 폭풍을 일으켜 요나가 탄 배를 뒤집으려 하신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요나는 자신을 바다 속으로 던지라 한다.
그렇게 바다 속에 들어가게 된 요나는 큰 물고기에게 먹힌다.
요나는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서 지내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이후 큰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낸다.
어쩔 수 없이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요나는 지 멋대로 사는 니느웨가 망하길 원했지만,
하나님은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고 오히려 구원하셨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4장 11절]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지 않는 니느웨 족속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쌍하게 여겨시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요나서는 끝이 난다.
오직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
나는 크리스찬이니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요즘 기독교인들의 극단적 행태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그저 그들이 가진 비루한 권력과 재물을 지키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으리으리한 교회 건물, 많은 교인들이 내는 헌금, 목사 자신들의 권위.
신천지 출입금지 딱지를 교회 정문에 붙일 필요가 있을까?
신천지 환영이라고 붙여놓고 다가오는 신천지를 변회시키는게 교회가 할 일 아닐까?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무고한 생명을 살육한 대통령, 무속에 빠진 대통령.
이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안수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꾸짖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교회 지도자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 아닐까.
우리 평신도들은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 라고 말하는 목사를 지탄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를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는 교회, 교단을 향해 당당하게 잘못됐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성전에서 제물로 장사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욕하고 모두 엎어버린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가난한 자들과 아픈 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과 함께 하신 예수님처럼.
우리 크리스찬들도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아픈 자들에게 더 신경쓰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분명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예수님 처럼 살고 있는 목사와 신도들이 더 많을 것이다.
몇몇 모자르고 무식한 기독교인 때문에 기독교를 혐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지 배척과 탄압의 종교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았고,
토라를 곡해하며 지만 잘 살려는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본인이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우리 죄를 사하셨다.
말로만 나 자유 얻었네, 나 구원 받았네 하지 말고,
교회와 목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면서 살자.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돌을 던지기보다는 사랑으로 품어주자.
그것이 기독교인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길이다.
기독교에 대해 실망한 분들께.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신 사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