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수있는것을 넓히는 AI vs 해야하는것을 좁히는 인간

AI 공포, 인간의 반지성주의를 먹고 자란다.

by Wade Paak

AI의 발전과 인간의 불안

2023년 초 ChatGPT 등장 이후, 사람들은 일제히 놀랐습니다. 학생들은 에세이를 맡기고, 직장인은 보고서를 부탁했으며, 디자이너는 Midjourney에 그림을 주문했습니다. 몇 달 뒤 AI가 만든 노래가 음악 차트에 오르고, AI 배우가 광고 모델로 등장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창작물"에 매일 노출되어 있습니다.[1]


이 모든 편리함은 경이롭지만 동시에 불안합니다. AI는 시키는 일을 너무 잘하고, 너무 빨리 배우며, 너무 많은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인간은 묻습니다. —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직업 위기를 넘어섭니다. 작가는 AI 문장 앞에서 창작의 의미를 잃고, 의사는 진단 AI보다 느린 판단에 자존심을 내려놓으며, 교사는 학생보다 먼저 "정답을 아는" 기계를 마주하며 혼란스러워합니다. 금융 분석가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에 밀려나고, 법무팀은 계약서 검토 AI의 정확성 앞에 무력함을 느낍니다.


이 불안의 정체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속도의 격차에 있습니다. AI는 하루가 다르게 '할 수 있는 것(can)'의 영역을 넓히지만, 인간은 그만큼 빠르게 '해야 하는 것(ought)'의 의미를 좁혀가고 있습니다. AI는 목적 없는 능력을 증식시키고, 인간은 목적 있는 판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생각 능력의 틀

ChatGPT와 대화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입니다. '이 기계, 정말 똑똑하네. 그런데 뭔가 이상해.' 똑똑하긴 한데 진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아는 것 같긴 한데 정말 아는 걸까?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이름 자체에도 이런 의문이 담겨 있습니다. '인공의 지능'이라고 부르지만, 그 지능이 인간의 어떤 능력을 닮았는지, 어디까지는 모방에 불과하고 어디서부터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지 우리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의문을 해결하려면 먼저 '똑똑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똑똑하다'는 말 속에는 사실 서로 다른 여러 능력이 뒤섞여 있습니다.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들을 떠올려보세요. 한 명은 수학 문제를 보자마자 척척 풀어내고, 다른 한 명은 역사 연도를 줄줄 외웁니다. 또 다른 친구는 복잡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어떤 친구는 항상 현명한 조언을 해줍니다. 이들은 모두 '똑똑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똑똑함의 성질은 서로 다릅니다.


이런 관찰에서 출발해 인간의 생각 능력을 네 층위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지능(Intelligence)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새로운 퍼즐을 받자마자 규칙을 파악해 푸는 아이, IQ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세요.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두뇌의 처리 능력입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능은 상황의 즉각적인 의미를 파악해내고 평가하는 능력"입니다[2]. 체스 AI가 수많은 수를 계산하여 최고의 수를 선택하는 것도 이런 높은 지능의 표현이지만, 그 결과가 옳은지 그른지까지 판단해주지는 않습니다.


지식(Knowledge)은 다릅니다. 백과사전처럼 많은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연도, 의사가 축적한 의학 정보, 셰프가 숙지한 요리 레시피가 모두 지식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토마토가 과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지식이고, 토마토를 과일 샐러드에 넣지 않는 것이 지혜"라는 농담이 있습니다[4]. 지식은 무엇이 무엇인지 아는 것에 그치지만, 그것을 어떻게 현명하게 쓰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지성(Intellect)은 무엇일까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을 떠올려보세요. 이 학생은 단순히 플라톤의 이론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가?", "이 개념은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지식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창의적으로 연결합니다. 호프스태터는 이를 "지성은 평가들을 다시 평가하고, 상황 전체의 의미를 찾는 능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2]. 지성은 높은 지능과 풍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이상의 통합적 판단력과 이해력을 필요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혜(Wisdom)는 가장 높은 차원입니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인생 조언을 떠올려보세요. 지혜로운 사람은 지식과 경험을 종합하여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판단하고 실천합니다. "지혜란 지식을 슬기롭게 활용하는 것"[3]이라는 정의처럼, 지혜는 도덕적 판단과 깊이 연결되며 인간다움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능 → 지식 → 지성 → 지혜의 순서로 갈수록, 더 높은 차원의 이해와 가치를 다루게 됩니다. 지능과 지식은 뇌의 능력과 축적물이지만, 지성과 지혜는 마음의 성찰과 판단의 영역입니다.


1_w-Pc6z7g1v1DhNGSQ3ilkw.png 중국어 방 사고실험


그런데 AI를 보면서 우리는 새로운 의문에 부딪힙니다. AI도 이 네 가지를 어느 정도 다 하는 것 같은데, 왜 여전히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까요?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의 유명한 "중국어 방 사고실험(Chinese Room Argument)”이 이 의문에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방 안에서 중국어 매뉴얼대로 문자들을 조합해 질문지에 답변을 쓴다고 상상해봅시다. 바깥 사람은 완벽한 중국어 답장을 받고 "방 안에 있는 존재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구나" 생각하지만, 사실 방 안 사람은 문자의 패턴을 따라왔을 뿐 중국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6].


바로 여기서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 그리고 '경험한다'는 것의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고실험이 시사하는 것은 "행동의 지능"과 "행동 뒤에 깔린 이해와 의도"가 전혀 별개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두 가지 추가 차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위 능력(Agency):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고 규칙과 형식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

경험 능력(Experience): 실제로 상황을 체험하고 그로부터 내적 의도를 판단하고 의미를 추출하는 능력


인간은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행동하고 경험하며 그 의미를 성찰합니다. 반면 현재의 AI는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실제로는 패턴 매칭과 확률 계산에 기반한 반응을 보일 뿐입니다. 이제 이 여섯 축이 어떻게 결합되어 인간과 AI의 근본적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생각 능력의 틀로 본 AI 기술의 현재 위치

이제 AI가 인간의 인지 능력에서 어느 정도까지 도달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지능 + 지식 + 지성 + 지혜) × (행위 능력 + 경험 능력)의 8차원의 틀로 분석해보겠습니다.


행위 능력 측면에서 AI는 놀라운 성과를 보입니다. 지능 × 행위: DeepMind의 AlphaGo는 바둑에서 이세돌과 커제를 압도했고, OpenAI Five는 Dota 2에서 인간 프로팀을 꺾었습니다. Tesla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복잡한 도로 상황에서 실시간 의사결정을 내리며, 수술 로봇 다빈치는 인간보다 정밀한 수술을 수행합니다. 지식 × 행위: GPT-4는 200여 개 언어를 번역하고, GitHub Copilot은 수백만 줄의 코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프로그래밍을 돕습니다. 의료 AI는 650만 페이지의 의학 문헌을 바탕으로 진단을 지원하며, 금융 AI는 수천 가지 시장 변수를 분석해 초단위로 거래를 실행합니다.


경험 능력 측면에서는 인간과 AI 사이에 근본적으로 격차가 존재합니다. 지능 × 경험: 강화학습 AI는 반복 학습을 통해 새로운 패턴을 습득하지만, 인간처럼 한 번의 실수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거나 직관적 도약을 하지는 못합니다. AlphaGo가 아무리 많은 게임을 '경험'해도, 승부의 희로애락이나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지식 × 경험: AI는 훈련 데이터에서 간접 경험을 '학습'하지만, 실제로 그 경험을 '체험'하지는 못합니다. ChatGPT는 사랑에 대한 수천 편의 시와 소설을 분석했지만 설렘이나 이별의 아픔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의료 AI는 수만 건의 환자 데이터를 처리했지만 환자 가족의 절망이나 회복의 기쁨을 공감해본 적은 없습니다.


사실, 지성과 지혜의 측면에서는 행위와 경험 모두에서 명확한 한계를 보이는 것이지요. AI는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지만 그 작업의 맥락이나 의미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AI는 법률 조항을 완벽하게 인용할 수 있지만 법의 정신이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해석은 어렵습니다. ChatGPT는 논리적으로 완벽한 에세이를 작성하지만, 그 논증이 사회에 미칠 영향이나 윤리적 함의는 스스로 성찰하지 못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AI는 묻는 말에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해 패턴에 맞는 답을 구성할 뿐이라는 점입니다[7]. 누군가 윤리적으로 잘못된 전제를 담은 질문을 해도 AI는 그걸 비판 없이 받아들여 답을 만들어냅니다. 인간 지성이라면 질문의 전제를 짚고 넘어가겠지만, AI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지혜는 더욱 취약합니다. AI는 기술적으로는 완벽한 행위를 할 수 있어도, 그 행위가 윤리적으로 적절한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지혜는 윤리적 판단과 깊은 통찰을 포함하는데, 현재 AI는 이러한 가치 판단 능력이나 도덕적 직관이 전무합니다. AI는 우리에게 정보를 줄 수는 있어도 스스로 그 정보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지는 않습니다[8]. AI는 "지식의 보고"일 수는 있지만 "현자의 조언자"는 아직 아닙니다[9]. 한 평론가는 "AI는 아는 것은 넘치도록 많지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지혜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9].


결과적으로 현재 AI는 8차원 중 2~3개 차원(지능×행위, 지식×행위, 부분적으로 지능×경험)에서만 인간 수준에 근접하거나 초월했을 뿐, 나머지 5-6개 차원에서는 여전히 인간에게 크게 뒤처져 있습니다. 이는 AI의 능력이 아직 매우 편향적이고 제한적임을 의미합니다.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실제 AI 기술의 성취 사례들을 확인해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료 분야에서 IBM Watson for Oncology는 암 치료 권고안을 제시하지만, 실제 환자들은 여전히 인간 의사의 공감과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AI는 증상과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지만, 환자의 불안을 달래고 가족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은 인간 의사만이 할 수 있습니다. 말기 환자에게 "통계적으로 3개월 생존율이 15%"라고 알려주는 것과 "함께 싸워나가겠다"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AI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I 튜터링 시스템은 개인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지만, 학생의 자신감을 북돋우고 학습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 교사의 몫입니다. 한 학생이 수학 문제를 틀렸을 때, AI는 "정답은 42입니다"라고 답하지만, 인간 교사는 "괜찮다, 다시 한번 차근차근 해보자"라며 격려합니다. 이러한 정서적 지원과 인격적 성장은 AI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창작 분야에서 AI는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경험과 감정은 여전히 모방에 그칩니다. DALL-E가 아무리 완벽한 그림을 그려도,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담긴 고독과 절망, 그리고 그를 통해 승화된 아름다움까지는 재현할 수 없습니다. AI가 창작하는 작품에는 '삶을 살아본 자의 무게'가 없기 때문입니다. 법률 분야에서 AI는 판례를 검색하고 계약서를 검토하지만, 법의 정신과 사회 정의에 대한 판단은 인간 법관의 영역입니다. 동일한 범죄라도 범행 동기, 가정 환경, 사회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결하는 일은 단순한 알고리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AI가 정말로 "똑똑한 바보"와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계산과 암기는 천재적이지만 무엇이 옳고 중요한지 모르는 상태이니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이 있습니다. AI가 실제로는 이렇게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AI를 두려워할까요? 특히 AI가 인간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것이라는 공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AI의 행위 능력에 대한 공포: 기계의 의지라는 착각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AI 공포는 AI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 즉 행위 주체처럼 보이는 순간에 찾아옵니다. 자율 주행차가 사고 순간 누구를 보호할지 결정하고, 자율 무기가 표적을 식별해 공격하며, 알고리즘이 대출 승인이나 채용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AI가 정말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게 되면, 인간은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닌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포는 상당 부분 오해와 투영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AI의 겉모습이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무의식중에 "저 안에 인간과 같은 마음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인간화 경향(anthropomorphism)”에서 발생합니다. 앞서 언급한 중국인 방 사고실험에서 방 안에는 중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실제 존재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지요. 한 연구는 우리가 느끼는 AI의 '행위 능력'은 상당 부분 환상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10]. 기계가 보여주는 목표 지향적 행동과 우리 뇌의 인지적 착각이 맞물려, 마치 AI에 독립된 의지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AI는 프로그래밍된 목표 함수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바둑 AI가 스스로 바둑을 두고 싶어하는 게 아니듯, 자율 주행 자동차도 그저 센서 입력을 계산하여 운전 행위를 흉내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 그 자체가 아니라, AI를 악용하려는 인간의 의도나 AI 시스템 설계자의 예기치 못한 오류입니다.


AI의 지능과 지식 우월성이 강화하는 반지성주의

앞서 분석에서 확인했듯이, AI는 지능×행위지식×행위 차원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적인 사회 현상이 나타납니다. AI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깊이 생각하기를 꺼리는 흐름, 즉 반지성주의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왜 AI의 지능과 지식 능력이 뛰어날수록 인간은 더 생각하지 않으려 할까요? 이는 우리가 분석한 8차원의 생각 능력 틀과 직결됩니다. AI가 지능×행위지식×행위에서 보여주는 압도적 성능은 인간으로 하여금 "굳이 내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유혹에 빠지게 만듭니다. 복잡한 계산은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주고, 방대한 정보 검색도 AI가 즉석에서 정리해주니, 인간은 자연스럽게 지성×경험지혜×경험 차원의 노력을 게을리하게 됩니다. 반지성주의지적 탐구와 전문가에 대한 불신 또는 경멸의 태도로, 복잡한 진실보다는 단순하고 귀에 듣기 좋은 해답을 찾는 경향입니다[12]. 오늘날 우리는 지식의 홍수 속 판단의 기근을 겪고 있습니다. 스마트폰만 열면 수초 안에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지만, 정작 깊이 있는 통찰이나 비판적 사고는 뒷전이 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AI가 제공하는 편의성의 함정입니다. AI는 인간이 느끼기에 매우 편리한 지식의 지름길을 제공합니다. 앞서 분석한 지식×행위 차원에서 AI의 압도적 성능을 경험한 사용자들은 일일이 숙고하지 않아도, 묻기만 하면 그럴듯한 답을 순간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지성과 지혜를 우회하는 지름길처럼 느껴집니다. TikTok 영상과 인스타그램 릴스가 긴 글과 복잡한 담론을 대체하고, "생각하기 귀찮다"는 농담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생각을 대신해주는 생성형 AI의 대중화 속도는 전례가 없을 만큼 빠릅니다. ChatGPT 등장 불과 2년 만에 미국 성인 중 약 40%가 일상이나 업무에 AI를 사용하게 되었고[1], 대학생의 86%가 학업에 AI를 활용한 적이 있다고 보고되었습니다[13]. 대학가에서는 ChatGPT 과제 대행 서비스가 성행하고, 직장인들은 보고서 작성을 AI에 맡기며, 심지어 연애 상담까지 AI에게 묻는 일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AI에 의존하는 영역은 정확히 지능×행위지식×행위 차원입니다. 복잡한 계산, 정보 검색, 번역, 요약 등 AI가 뛰어난 분야에서는 기꺼이 AI에게 맡기지만, 정작 지성×경험지혜×경험이 필요한 비판적 사고나 도덕적 판단은 방치됩니다. 이는 결국 인간의 고차원 인지 능력이 퇴화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는 두 가지 우려를 불러일으킵니다. 첫째, 일반 대중이 AI를 맹신할 때 발생하는 사고 능력 저하도덕적 위험입니다. 학생들이 AI 덕분에 숙제를 쉽게 해낸다면 겉보기 성적은 오를지 몰라도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은 길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보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훈련 없이 AI의 첫 답변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들면, 잘못된 정보나 편향된 지식이 퍼져도 걸러낼 필터가 약화됩니다. 둘째, 반지성주의적 정서와 AI의 결합으로 지식의 인스턴트 소비가 부추겨져 사유의 과정을 건너뛰게 만드는 것입니다[15]. 이미 "요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ChatGPT한테 물어봐"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대인은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AI라는 첨단 기술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인 세대이면서, 동시에 깊이 있는 사고와 지혜를 놓치기 쉬운 세대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AI의 지능×행위지식×행위 우월성이 인간의 지성×경험지혜×경험 퇴화를 촉진하는 아이러니한 메커니즘입니다.


인간에게 남은 것 – 지성의 회복과 지혜의 심화

AI 시대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AI를 더 잘 활용하는 법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8차원 분석이 보여주는 것은 다릅니다. 인간의 가치는 속도나 데이터량에서 AI를 따라잡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AI가 가지지 못한 차원들, 즉 지성×경험, 지혜×경험, 그리고 부분적으로 지성×행위지혜×행위 영역입니다. 핵심은 AI가 뛰어난 차원(지능×행위, 지식×행위)에 의존하면서도,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차원들을 의도적으로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는 AI와의 경쟁이 아니라, AI 시대에 더욱 필요해진 인간 고유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생각하는 개인의 노력

AI가 지능×행위지식×행위에서 압도적 성능을 보이는 시대에,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AI가 부족한 지성×경험지혜×경험 차원을 의도적으로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는 매일 접하는 정보에 대해 "이것이 정말 사실인가?", "다른 관점은 없을까?", "이 정보의 출처와 의도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습관화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ChatGPT가 제시한 정보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최소 2-3개의 다른 출처와 교차 검증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하루 중 일정 시간을 정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한 칼럼니스트가 "우리는 진실에 대한 헌신, 깊이 생각할 용기를 되찾아야 한다"[17]고 촉구한 것처럼, 짧은 요약본보다는 원문을, 자극적인 영상보다는 길고 복잡한 글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합니다. 세대가 다른 사람, 다른 문화권 출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AI로는 얻을 수 없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의 교육

교육 분야에서 가장 시급한 변화는 AI가 압도적인 지식×행위 차원에서 벗어나 지성×행위 차원으로 교육의 중심축을 이동하는 것입니다. 현재 교육 시스템이 여전히 정답 암기에 치중하고 있다면, 이는 AI 시대에 더욱 무의미해집니다. 대신 "왜 그럴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동시에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문학과 도덕 교육이 사치가 아니라 필수가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철학적 사고와 윤리적 판단력을 기르는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나는 누구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근본적 질문들을 다루는 시간이 늘어나야 합니다. 이와 함께 AI를 맹목적으로 거부하거나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한계를 이해하고 인간의 판단력과 결합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AI 도구 사용법뿐만 아니라 AI 윤리, AI의 편향성 문제, 인간-AI 협업의 원칙 등을 교육 과정에 포함시켜 학생들이 AI 시대에 필요한 균형 감각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공동체로의 변화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개인의 경험과 도덕적 성찰이 응축된 지혜가 AI로부터 나올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인간 사회 안에서 세대 간의 대화공동체 내 멘토링을 통해 지혜를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노인의 지혜와 젊은이의 창의성이 만나는 접점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며, 이는 빠른 뉴스와 자극적인 콘텐츠보다는 심층 분석과 맥락을 제공하는 미디어를 지원하고 소비하는 문화와 연결됩니다. 클릭 베이트보다는 사려 깊은 기사를, 짧은 영상보다는 다큐멘터리를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는 AI 기술의 개발과 활용에 있어서 기술자뿐만 아니라 철학자, 윤리학자, 사회학자, 일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AI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기술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혜로운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마무리: 인간다움의 재발견

결국 AI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다움의 재발견입니다. 8차원의 인간 생각 능력 틀이 보여주듯, AI가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차원들의 가치를 더욱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도덕적으로 판단하며, 타인과 공감하고, 의미를 창조하는 능력입니다.


AI는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의 지성과 지혜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인간의 성찰 능력이 뒤처진다면, 그때야말로 우리는 AI 그 자체보다 더 심각한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메시지를 담아 이 논의를 맺겠습니다:


AI가 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넓힐수록,
인간은 해야 하는 것의 의미를 더 깊이 물어야 합니다.




참고 자료

[1] Generative AI adoption surpasses early PC and internet usage, study finds | VentureBeat

[2] [11] [12] [13] [15] [16] [17] Live Laugh Lily: Use of AI contributes to anti-intellectualism - The Post

[3] [5] [7] [8] [9] AI's knowledge vs wisdom. Receiving knowledge but no wisdom, are… | by Marc Binnema - (Polymath) | Jun, 2025 | Medium

[4] Brian O'Driscoll - Knowledge is knowing that a tomato is a...

[6] Language Log » Searle's "Chinese room" and the enigma of understanding

[10] The Illusion of Agency - Why AI Isn't Just a Tool, But Also Not Yet a Being by Lakshmi Pillai Gupta :: SSRN

[14] Confronting a New Anti-Intellectualism in the AI Era – Singapore ...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지능의 공허: Thunderbolts*와 AI의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