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유학 생활, 여행 중에 좋은 사람들만 만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난 대체적으로 운이 좋았다. 돌아보면. 날 해하려는 사람보다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으니까.
아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은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다. 세상엔 나쁜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이 휠씬 더 많다는 것.
내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꼭 나타났다. 복잡하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한 도쿄 신주쿠역에서 헤맬 때는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심지어 개찰구까지 데려다줬다.
그 상황에서 나쁜 사람은 나였다. 그 할아버지의 선의를 의심했던 거다. 개찰구까지 같이 가주겠다는 할아버지가 혹시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만화 ‘드래곤볼’에 나왔던 거북이 할아버지처럼 변태는 아닐까. 계속 갈등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냥 내가 손녀 같아서 도와준 보통의 선량한 시민일 뿐이었다.
“여행자는 현지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사람”이라던 소설가 김연수의 말처럼 내가 그 꼴이었다.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나는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니 했는데, 표정은 분명 굳어 있었을 거다.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미안해진다.
또 기억나는 한 장면은 파리 지하철 소매치기 사건이다. 그날따라 차려입고 나간 게 잘못이었을까. 아랍계 소녀 3명에게 거의 강도 수준의 소매치기를 당했다. 지하철이 역에 도착하고, 지하철에 오르려는 찰나 소녀 3명이 나를 둘러싸더니, 핸드백을 잡아챘다. 나는 뺏기지 않으려 필사적이었지만, 결국 3명의 힘에 밀려 바닥에 짐짝처럼 내팽개쳐졌다. 그 사이 소녀 강도단은 내 가방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난 거의 울다시피 “Aidez-moi(도와주세요)”를 외쳤다. 나의 다급한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한 아저씨는 자신이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난 사람들의 연민 어린 시선을 받으며 겨우 일어났다.
그때 몸집 좋은 흑인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살아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던 내 핸드백과 지갑을 내미셨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들을 붙잡아 핸드백을 찾았노라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때의 감동이라니, 그 아주머니의 얼굴에 후광이 비치는 듯 했다. 오 마이 엔젤!
여행지에서, 유학 생활 동안 이런 도움은 수도 없었다. 캐리어를 끙끙대며(이사할 때마다 캐리어에 짐을 담아 직접 옮겼다) 파리의 무시무시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고 있으면, 어디선가 힘 좋은 남자들이 나타나 도와줬고, 일본 식당에서 주문을 못해 종업원(영어를 못하셨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땐, 나의 버벅대는 영어를 용케 알아들은 옆 테이블 꽃미남이 대신 주문을 해주기도 했다.
LA 여행 때는 친절한 버스 기사 덕에 얼어있던 마음이 살살 녹기도 했다. 초행길에 잔뜩 긴장해있던 나에게(커피를 들고 있었다) “그 커피 나 줄려고 가져왔지?” “아니요. 제 건데요(재치라곤 1도 없는 대답이라니).”라고 너스레를 떨어줬던 아저씨.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여행자는 또 이런 작은 친절에 갑자기 울컥하기도 한다. 나를 이방인이 아닌 이웃으로 봐주는 것 같아서.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 나를 끼워주는 것 같아서.
보통 때라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내내 긴장을 놓지 않고 방송 소리에 온 감각을 집중하고 있었겠지만(내릴 곳을 알려달라고 기사에게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고도), 그날은 마음 편하게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역시 내 부탁대로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알려줬다. “케이트야, 지금 너 내려야 돼” “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응, 너두”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고, 난 무사히 LACMA(LA 카운티 미술관)에서 피카소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인생이 이렇게 아름답기만 하면 재미없겠지. 앞서 밝힌대로 황당한 일들도 많았다. 미테랑 도서관에서 공부할 땐 집까지 따라온 녀석 때문에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뭐, 내 인물이 송혜교 같아서 남자들이 졸졸 따라다녔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다음 생에나, 그것도 운이 아주 아주 좋을 때나 가능한 일이고, 유럽 남자들은(물론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냥 동양 여자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너무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라 이상한 환상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파리에선 최첨단을 자랑하는 건물, 아름다운 중정이 있는 미테랑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현관에 서 있는데 비가 내리더라. 어쩐다? 그냥 맞고 가기엔 빗줄기가 굵었다. 그때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 것부터 뻔한 수작이 시작되었다. 한국이라고 얘기했더니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한국에 홍수 난 이야기를 꺼냈다. 난 대충 상대해주다 가지고 있던 가디건을 우산 삼아 밖으로 나서며 안녕을 고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작디 작은 내 가디건을 같이 쓰자고 하더라. “뭐? 니 눈에는 이게 파라솔로 보이니?”라고 대꾸해주고 싶었지만, 한국인에 대한 나쁜 편견을 가질까봐 아주 예의 바르게 “그러기엔 너무 작아”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그분은 지하철역까지 비를 맞고 따라오셨다! 그리고 같은 지하철을 탔다. 뭐 같은 방향일수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날 힐끔거리던 녀석. 역시나 집까지 쫓아오더라. 무섭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해서, 휙 돌아봤더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애걸했다. 이런 끈질긴 녀석은 또 처음일세. 난 차갑게 전화 같은 거 없다고 했다. 이번엔 이메일 주소를 물어보더라. 미친다! 난 비를 쫄딱 맞으며 한참 그 녀석을 쳐다보다 그냥 가짜 주소를 가르쳐줬다. 뭐라도 쥐어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기세였다. 옛다! 가짜 이메일 주소를 받은 녀석은 연락하겠다며 사라졌다.
표정이 어땠나. 기뻐했나. 아님 거짓인 것을 눈치채는 눈치였나. 기억도 안 나지만, 집에 와서 생쥐 꼴인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도대체 나의 어떤 면을 보고?
이 모든 일들이 유학을 갔기에, 여행을 갔기에 겪을 수 있었고 알 수 있었던 일이다. 내가 몰랐던 세상에도 나쁜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이 휠씬 더 많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한번 찔러나 보자’ 덤비는 남자는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도).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게 나에게만 기쁜 일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기쁜 일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방인에겐 작은 친절이 얼마나 큰 감동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까지.
지금도 나는 길 가다 외국인들을 만나면(여행자로 보이는) 혹시나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까 관심을 가지고 본다. 그리고 길을 물어올 때 친절하게 알려주려 애쓴다. 그러고 나면 그때 그 시절 내가 받았던 도움을 조금은 갚은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