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케이트 May 23. 2024

08. 그리고 음악에 몸을 맡긴다

내가 그림을 좋아하게 된 건 클림트 때문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고등학생 시절 클림트의 ‘키스’를 처음 보게 되었다. 화려한 색감과 고혹적인 분위기가 한 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그전까지 미술 시간을 통해 고흐의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림도 봤고, 서정적인 모네의 그림도 봤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이상했다. 홀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연인의 사랑이 절정에 이른 순간을 표현한 듯했지만, 난 묘하게 슬픔을 느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얼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배경이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암시하는 듯했다.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마구 상상이 되었다.

그 이후로 클림트의 그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유디트’ ‘다나에’ 등의 그림들은 섹시하면서도 어두웠고, 화려하면서도 슬펐다.      


클림트에서 시작된 미술에 대한 관심은 다른 화가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옮겨갔다. 고흐의 그림들도 다시 찾아봤다. 역시 애정을 가지고 보니 흔하게(?) 보였던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도 다시 보이더라. 검은색과 카키색으로 가득한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볼 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한 장의 그림이 굉장히 다양한 감정들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그림은 보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이래서 미술 치료가 가능한 건가.   

       

그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즈음 유학을 갔다. 프랑스는 역시 예술 유학을 오는 사람이 많았다. 당연하게도 음악, 의상, 미술 전공자들이 내 친구가 되었다. 그들 중에는 C도 있다. C는 당시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국립 예술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프랑스의 미술 학교는 한국의 미술 대학과 교육 방식이 많이 다르다. 한국의 경우 조소, 회화, 비디오 아트 등으로 학과가 나누어져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하나의 주제가 과제로 제시되면 어떤 표현 수단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엄마’라는 주제로 과제를 제출해야 될 경우,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영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C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을 했다. 어떤 날은 종이와 박스로 인형과 세트를 만들기도 했고, 또 다른 날은 추상화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사실 그전까지 난 현대 미술에 문외한이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인상파까지의 그림만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C의 작업을 옆에서 보면서 그녀의 생각이 어떻게 점이 되고, 선이 되는지 조금씩 알아지더라. 그러다 보니 현대 미술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호안 미로 전시회에서는 독특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블루’라는 작품 앞에서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흐르는 거다. 뭐지? 이 이상한 감정은? 벌써 갱년기가 온 건 아니겠지? 

‘블루’는 짙은 블루로 가득 찬 캔버스 위에 빨간 선과 검은 점이 무정형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마침 큰 캔버스 앞에는 벤치가 놓여 있었고, 난 그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바다 같은 그림에 압도되었다. 유학 생활에 너무 지쳐있던 시기라서 그랬을까. 뭔지 모를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때 알았다. 추상화라는 이름의 알 수 없는 그림들 역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을. 


당시 그 전시회는 파리의 유명 건축물 퐁피두 센터에서 하고 있었다. 퐁피두 센터에는 미술관 뿐 아니라 도서관도 있어서 공부하러 자주 가던 곳이다. 당연히 거기엔 나만의 휴식 장소가 있었고, 난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들고 그 장소로 향했다. 

그 장소에 서면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파리는 건축법이 엄격해 높은 건물이 많이 없다. 파리 어디에서도 에펠탑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제정한 법인데, 도시 개발을 막긴 하겠지만 아름다운 파리는 지켜주는, 어떻게 보면 고마운 법이다. 전망대에 서서 커피를 마시며 한참 동안 그 ‘블루’를 곱씹었던 것 같다.   

      

파리에 살면 언제 어디서나 예술이라는 애가 나타나 ‘친구 하자’고 꼬리를 친다. 음악, 미술엔 전혀 관심 없어! 그런 것들엔 마음을 꽁꽁 닫아버릴 거야! 라고 굳은 결심을 한다고 해도(할 사람도 없겠지만) 어느새 버스킹 중인 가난한 음악가를 응원하고, 카페에 걸린 낙서 같은 그림에 마음을 뺏기게 된다.


알다시피 그 좁은 파리(서울의 4분의 1 크기)에는 수백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루브르 박물관(인상파 이전의 미술품이 많다)을 비롯해 오르세 미술관(인상파 전후), 퐁피두 센터(현대 미술 위주)가 있다. 

그 외에도 모네의 그림들이 모여있는 오랑주리를 비롯 피카소, 로댕 등 단일 화가의 작품이 방대하게 전시되어있는 미술관도 수두룩하다. 미술책에서만 보던 그 대단한 작품들을 실물로 영접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곳곳에서 버스킹이 열린다. 대중음악은 물론 클래식, 민속 음악 등 장르도 다양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버스킹은 소르본 대학 앞에서 봤던 작은 클래식 음악회와 튈르리 정원 근처에서 들었던 어떤 성악가의 독창회. 


겨울이었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오후, 쇼핑 후 근사한 첼로 선율에 이끌려 학교 앞 작은 광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많지 않은 사람들 사이로 첼로, 바이올린이 보이더라. 친구와 한참 동안 서서 감미로운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생각해보면 그때까지 클래식 연주회를 실제로 접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눈앞에서 보는 연주자들의 진지한 표정, 익숙하게 들었던 멜로디에 설레기도 했고, 내가 파리에 있다는 게 실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 초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튈르리 정원을 산책하다 고운 목소리가 들려 발길을 옮겼던 적이 있다. 도착한 곳에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앞에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여대생이 목청을 뽑고 있었다.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내 귀에도 그녀의 실력은 아마추어 이상이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가장 좋은 악기는 사실은 사람이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술에 대해 멋도 몰랐던 내가 취향을 발견하고, 키워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파리라는 도시 때문이다. 돈을 들이지 않아도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그 속에서 내 심장이 뛰는 것들을 발견하고, 알아가고, 공부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파리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참, 6월 셋째 주에는 ‘페트 드 라 뮤직크(Fete de la Musique)’라는 음악 축제도 열린다. 거리 곳곳에서 음악 좀 한다는 뮤지션들이 실력을 자랑한다. 도로는 통제되고, 공원, 콘서트홀에서 다양한 음악회가 개최된다.

옷가게 앞에서 머리를 흔들며 자신의 음악에 빠져있는 록 밴드의 연주를 듣는다. 지겨울 즈음 길 건너편에서 열리고 있는 인도 전통 음악회에 귀를 기울인다. 너무 낯설다 싶으면 위쪽 카페 앞에서 소리소리 지르고 있는 헤비메탈 밴드의 공연을 볼 수도 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이날만 특별히 나오는 길거리표 핫도그를 사 먹는다. 도로는 폐쇄되고, 평소에는 불법인 길거리 상인들이 대거 등장하고, 우리는 자유를 느끼며(평소엔 차 때문에 다닐 수 없는 도로만 걸어도 대단한 자유인이 된 것 같다) 다리가 아프다고 아우성칠 때까지 도로 위를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음악에 몸을 맡긴다.    


한나 파울리 <아침식사 시간>__photo by kate


작가의 이전글 07. 곤경에 처할 때마다 천사들이 나타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