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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선 Mar 04. 2024

팜플로나를 향해 가다

-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



울리아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9시 30분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배낭을 꾸리고 숙소 정리를 순식간에 끝냈다.

마을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했고 마을 어귀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태우며 천천히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여행자의 마음은 얼마나 여유로운지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들이 생겨난다.

오랜 시간 알아 왔던 친구들의 인생이라든가, 아팠던 마음과 가까워지고 

함께 여행하는 순간에도 동지애를 넘어 우정, 연민이라는 새로운 감정선이 만들어진다 할까. 

오늘도 그녀들과 마을버스라는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감과 설렘으로 감정이 요동친다.

더군다나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이라는 아름답고 멋진 도시가 내 생각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니....



혼자만의 생각에 도취돼 있는데 눈부시게 멋진 할머니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차에 올랐다.

우리 셋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꼿꼿한 허리와 걸음걸이, 

단아한 몸매에 한껏 부풀 정갈하게 손질한 머리, 

감청색 비로드 양장 속 하얀 블라우스가 할머니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고 있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양희가 묻는다.

하우 올드 알 유? 87세? 내 귀 제대로 들리는 거 맞아? 

같은 장소에서 내린 행운?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또다시 어제와 같은 얘기로 되새김질하며 잘 늙어가자 다짐 아닌 다짐을 하며

팜플로냐행 알싸 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알싸(alsa) 버스 창구 앞 늘어선 줄에 현주가 합류했다. 

오전 11시 30분 출발 고속버스 뒷자리에 차례로 앉았다. 

높은 산과 푸른 초원이 번갈아 나타나며 사진을 통해 보았던 산티아고 카미노 길이 이어져 보였다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졸며 감탄하며 도착한 팜플로냐, 체크인 시간이 일러 피에스타 시간 전에 식사를 해결하고 싶었는데 식당은 보이지 않고 작고 아담한 슈퍼만 보인다.  건물 주변을 돌고 돌아 겨우 찾은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맥주 한 모금으로 낮더위에 시달린 마음을 달래주었다.


숙소에 들어와 말 많은 호스트를 졸졸 따라다니며 집 사용설명서를 듣느라 귀도 몸도 피곤하다. 

적당히 하시지...


배낭을 내려놓고 팜플로 시청 근처 대성당을 향해 걸어갔다. 

10월의 햇살이 아직은 강렬하다. 그러나 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해지는 느낌이 좋다. 

3유로 입장료를 내고 방금 구입한 순례자 여권 성당 세요를 처음으로 찍었다.  

종교인으로 참배하는 여행자는 아니지만 성스러운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앞으로 남은 여행 기간 동안 

무탈함과 친구들의 깊은 배려와 사랑에 감사함을 담은 행복한 기도를 올린다. 

은은한 음악과 공간이 주는 평화와 안식이 마음속으로 번져간다. 


많은 하몽 집과 타파스 바의 활발한 모습을 보며 투어의 재미를 느낄 때 쯤 

헤밍웨이가 자주 갔다던 이루냐 카페가 보인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을 당시 헤밍웨이가 프랑코에 대항해 참전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곳 팜플로나에 자주 방문해 참전 경험을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로 썼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라는 소설에서는 세계적 소 몰이 축제인 산 페르민 축제와 까스티요 광장에 있는 

카페 이루냐(Cafe Lruna)가 자주 등장한 클래식한 분위기의 카페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까스띠요 광장에서 분위기를 내고 싶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본 맥주를 시켜 단숨에 들이키고  숙소로 오는 길에 

옛 나바라 왕국의 도심을 보호했던 팜플로나 요새를 지난다.

별 모양의 원형으로 깊게 파여있는 요새를 나서니 저 멀리 나바라 대학교 교정이 보인다. 

내일은 좀 더 가까이에서 학교 교정을 볼 수 있으리라.



하늘을 덮어버릴 듯한 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이어져 있는 공원 길목을 들어선다.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노란 불빛에 앞서 걷는 친구들의 모습이 개나리꽃 같다. 

여행을 시작하고 생겼던 고민들이 부스러기처럼 작아지는 지금, 이 시간이 참 좋다.

오늘이 지나면 용서의 언덕을 오르리라는 흥분으로 잠을 청하기 어렵겠지만

버스 타고 산티아고 길을 여행하며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찾는 여정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순간들은 먼 훗날 꼭 필요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내게 늘 묵직한 위로로 

다가올 거란 믿음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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