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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선 Apr 01. 2024

부르고스 대성당을 어슬렁거리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532km 전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 기착지 가운데 가장 큰 도시이며 

스페인 북부의 교통 요지이다.


빌바오에서 90km를 달려 도착한

오후 다섯시 부르고스의 하늘은 회색빛 구름을 낮게 드리우고

도로는 비에 젖어 반짝인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숙소로 이동했다.

이층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아담한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를 찾아 나섰다.


어슴푸레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습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낯선 골목이 다정하게 느껴지는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걷지만 

좀체 마트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결국 주유소 직원에게 물어 대형마트를 찾아

구입한 재료로 동생은 뚝딱 저녁을 만들어냈다.

푸짐한 새우 찜과 샐러드, 불린 누룽지밥, 그리고 와인까지 근사한 한 상이 차려졌다

숙소 공동 식당에는 우리 외에도 피자를 시킨 가족단위 여행객,

홀로 여행 와서  만난 친구들과 생일파티하는 한국청년의 

밝고 유쾌한 목소리에 덩달아 즐겁다.

저마다의 이야기로 빛나는 기분 좋은 저녁이다.


달콤한 숙면을 취하고 어김없이 첫새벽 기상,  

이어폰을 통해 고국소식을 들으며 아침을 맞는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될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루를 일찍 시작하려

배낭을 꾸려 숙소를 나섰다.  

버스터미널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대성당을 향해 가는 

부르고스의 아침은 햇살 속에 눈부셨다.

돌다리 아래 반짝이는 물빛과 어우러진 초록빛 나무들이 싱그럽다.

풍경 어딘가 따뜻하고 세월의 아늑한 시간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치 형태의 건물, 산타마리아 문을 지나니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압도적 규모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성당이 바로 코앞이다.

지친 순례자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놓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친구의 모습이 개구 짖다.



성당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운집돼있고 

버스킹 맨의 기타 음률에 맞추는 노래가락이 여행 분위기를 돋운다.

찬찬히 도시를 훑는다.

성당 주변으로 알록달록한 집들이 

여행지에서의 호기심 어린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바람이 쌀쌀하니 커피가 생각이 났다.

친구는 부르고스 대성당 투어를,

우린  2년 전 부르고스에서 추억을 잊지 못하는 동생의 기억에 남았다던 카페를찾았다

크루와상과 카페 콘레체, 맛이 궁금한 카푸치노를 시켜

하얀 파라솔이 펼쳐져 있는 외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 또한 여행지에서 먼저 하는 일은 카페를 찾아내는 일이다.

긴 여행이 아닐지라도 맘에 드는 카페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떠나왔음을 실감하고 

행복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생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비온 후 찬란하게 빛나는 햇살 아래

저널 북을 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카페 주인을 비롯한 손님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살짝 부담스럽긴 했지만 

내심 안 그런 척 태연하게 그려갔다.

완성된 그림을 주며 카페 도장을 찍어오랬더니 동생과 쥔장의 대화가 한창이다. 

카페 내부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그림 그리길 참 잘했다 싶은 마음이 들어차 온다.




성당 투어에 나섰던 친구가 돌아와 카페 옆 우동가게로 들어갔다.

뜨끈한 국물이 그리웠고 쌀쌀해지는 날씨에 몸의 긴장도 풀어내야 했다.

기다림도 길고 가격에 비해 맛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또다시 비가 시작됐다.

긴 터널을 이루고 있는 가로수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군밤을 구워내는 형상의 동상 앞에서

한 꼬마가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물어보니 비 맞을까 봐 우산을 받치고 있다는 꼬마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다.


해가 지려고 하는 하루의 끝, 

매일 반복되던 일상을 벗어나 

일시적 비일상 상태의 여행이 좋다.

쉽게 너그러워지는 나를 만나고 

좋아하는 일로 하루를 채우는 그런 여행

어디에서나 비슷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만나 

섞여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여행 

추억으로 떠오를 여행지를 향해 우린 레온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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