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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선 Apr 08. 2024

레온에서 비를 만나다


부르고스를 출발하여 레온 도시를 향해

달리는 버스 차창 밖 풍경이 환상적이다.

구름의 시작이 땅에서 부터 인  듯 

초록과 흰 구름이 만들어내는 풍광을 한시도 놓칠 수가 없다.

친구 말대로 예술이다. 


레온에 도착할 즈음

하늘색은 깊은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상냥한 호스트의 첫인상만큼 잘 정돈된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마켓으로 향하는 두 친구의 걸음이 가볍고 유쾌하다.


맛난 저녁과 쾌적한 숙소 덕분에 숙면을 취하고 맞는 상쾌한 아침,

주섬주섬 간단한 소지품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제법 널찍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회색 날씨와 잘 어울리는 진초록의 공원에서 깊은숨을 들이 마신다.

이 세상 모든 초록이 공원을 가득 메웠다.

망중한을 즐기는 오리들,

우리들은 '레온'이라고 새겨진 벤치에 앉아

비에 젖은 아름다운 도시를 감상하고,  

스산한 기운까지 맛볼 수 있는 시간을 각자의 방식대로 즐긴다.


또다시 시작된 비

하늘을 보니 하루 종일 비가 내릴 모양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밤새 무섭게 내리던 비가 날이 밝으면 소강상태로 돌입,

여행자 발걸음이 비로 인해 무겁지 않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비 내리는 레온 도시는 적막했고 

그리움을 더 짙게 하는 높은 습도가 

여행의 고적감과 쓸쓸함으로 다가와 

오히려 여행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내 시선이 닿는 건물들을 감탄하며 

인증샷을 찍기에 최적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레온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는 레온 대성당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LEON 글자 형상 앞에서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성당 주변을 돌아 느릿한 걸음으로 아시안 마트까지 왔다.

아시안 마트에는 없는 물건 찾는 게 더 쉬울 듯, 

한 끼 먹을 짜파게티, 신라면을 구입하고 성당 주변을 돌아 나오다

가우디 건축물을 마주한다.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보티네스 저택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

가우디 동상을 바라보는  친구의 표정이 환하다.

레온에서의 보석 같은 하루가 저물고 있다.




아침 바람이 싸늘하다. 

날씨 탓인가, 몸이 천근만근이다.

두툼한 옷들은 미리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낸 터라 보온에 신경을 써야 했다.

이른 기상을 하고 미처 채우지 못한 그림을 완성해 간다.

숙소 전체가 빵 굽는 구수한 내음으로 가득하다.

딸기, 사과, 납작 복숭아, 오렌지 스, 당근, 따끈한 빵과 진한 에스프레소까지

오늘도 동생의 수고로움에 감사한 아침이다.


어느덧 오전 11시가 넘었다

싸늘한 바람을 막아 줄 스카프로 목을 감싸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숙소에서 10여 분의 거리에 있는 터미널 사물함에 가방을 맡기고 레온 중심부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 도심 바닥은 미끄러웠다. 

여기저기 배낭을 둘러 맨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나도? 걸었다면 저런 모습으로 레온 도시를 헤매고 있을 테지......

아쉬운 마음을 재빠르게 접어 본다.



한 달에 한 번 열린다는 장날,

우리의 장날과 다를 게 없는 분위기가 친근하다.

운 좋게 딱 맞춰 온 덕에 친구들은 여행 선물 구입이 한창이다.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 프린트된 숄을 구입한 동생의 입꼬리가 승천한다.


음악에 맞춰 탭댄스로 시선을 모으는 여학생을 만났다.

박자를 맞춰주던 친구는 여학생을 격려해 줄 마음으로 

함께 춤을 추며 악기 케이스에 격려금도 넣어준다.


아침을 푸짐하게 먹어서 인지 츄러스로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았지만 식욕이 없다.

설탕 옷을 입은 부드러운 츄러스와 쌉쌀한 아포가토로 

간단하게 점심을 끝냈다.



레온에서의 이틀을 갈무리할 시간이다.

5유로의 행복으로 빨간색 꼬마기차를 타고

미처 돌아 보지 못한 레온 도시를 돌아 나왔다.

비는 점점 세차게 오기 시작했다.


좋은 것을 볼 때도

맛난 것을 먹을 때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들을 

떠오르게 하는 여행

두 사람 덕분에 

그들의 경험 사이를 오가며 

내가 짐작조차 못 하던 여행의 결들을 

하나씩 건져 올리게  해 주는

고마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부디 내 품에 안을 수 없을 정도의 

따뜻한 행복을 안고 돌아갈 수 있는 여행이 되기를 기도하며

어느덧 나는 나도 알지 못하던 힘의 지평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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