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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선 Apr 15. 2024

노을이 아름다운 아스토르가

- 철의 십자가( Cruz  de Fero)찾아 폰세바돈으로 -


레온 지방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산티아고 순례길 22구간이며

친구들은 두 번째 방문인 아스토르가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가 있어

길잡이 동생을 앞세워 동네로 들어섰다.


여행 내내 비를 만나고 있다.

우기가 일찍 시작된 건지

우리가 비를 몰고 다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어

눈부신 햇살이 빛나는 날씨가 되기도 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숙소 초입 골목 끝에 마주 보이는 대성당의

붉은색이 더욱 선명하다. 

대성당에 마음을 뺏기며 다다른 길 끝에 숙소가 있다.

2층 우리의 숙소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뷰가 기다리고 있었다.


베란다로 통하는 길쭉한 창문을 열어 제키니 

바로 코앞이 대성당이다. 

심지어는 침대에 누워서도 볼 수 있다니......

비가 오거나 말거나 베란다로 나가

천년이 넘는 세월 속에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성스럽게 우뚝 서 있는 성당의 모습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아스토르가에 입성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철의 십자가를 꼭 가고 말겠다는 일념인 나를 위해

갈등을 하던 친구들도 함께 하기로 했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 아래서부터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주방 창문으로 보이는 지붕과 노을의 색감에 감동하며 하루가 저문다.



긴장하고 잔 탓인지 일찍 일어났다.

다행히 비는 소강상태로 걷기에 좋은 날씨를 보였다.

곤하게 자는 친구들을 깨워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폰세바돈까지 버스를 이용하고 철의 십자가 있는 곳까지 걷기로 했다.

그러나 버스가 마을을 벗어날 즈음 비가 오기 시작했고

차창밖에 수직으로 떨어지던 빗줄기로 인해 걱정이 앞선다.

더군다나 완행버스라 마을마다 정차하며 천천히 달린다.

꽤 높은 고도의 지역을 달리는 버스가 위태로워 보인다.

비는 점점 굵기를 더해가면서 

이미 산 윗부분은 안개에 싸여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비가 오고 바람마저 심하게 불었다.


아... 망했다. 


비바람을 뚫고 

폰세바돈으로 가야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실은 버스는

한 시간을 넘게 달려 폰페라다에 도착했다. 

그러나 폰세바돈으로 가는 버스 노선이 없어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여성 운전자인 택시를 발견,

우리의 목적지를 알려주니 폰세바돈까지 데려다주는데 7만 원을 요구한다. 

시외요금이라 어쩔 수 없다며 책자를 보여주며 우리의 이해를 도왔다.

우리는 대안이 없는 관계로 택시를 타고 출발,

대관령 길을 넘듯 구불구불 위험한 도로를 돌고 또 돌아나간다. 

순례자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비를 입고 스틱을 짚었지만 이미 날씨는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내리꽂는 비를 온몸으로 받으며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거의 멈춰 서 있는 듯하다.

택시가 흔들릴 정도의 폭풍우를  뚫고 휘청이며 걷는 순례자들이 

대단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우리는 택시로 안전하게 '철의 십자가' 앞에 도착했다.

아스트로가 해발 900m에서 출발해 1,505m를 넘는 

순례길 전체 구간 중 가장 높은 지대라고 해서 잔뜩 긴장했는데

순례길의 상징 '철의 십자가'가 바로 코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택시에서 내렸다.

우산이 뒤집히고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왔다.


비를 뚫고 순례자들의 소망과 사연이 적힌 조약돌로 쌓아 올린 언덕에 올랐다.

각자 고향에서 참회의 상징으로 가져온 돌을 내려놓으면서 만들어진 돌산 얘기는

책과 영상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철의 십자가 앞에 서서 순례자 아닌 순례자가 된 기분이다.

내려놓고 갈 돌은 준비조차 못 했지만

아직도 그립고 보고픈 엄마의 안부를 묻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무탈하게 지나길 기도하며

기원을 담은 마음을 십자가 아래 살포시 내려놓는다.

비바람을 뚫고 택시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멋지고 당찬 기사님 덕분에 숙소까지 안전하게 올 수 있었다.


종일 긴장된 심신을 

동네 호텔 스파에서 달래본다.

스파 후 시청 앞 마요르 광장에 있는 로컬 맥줏집에서

차가운 맥주를 한 모금 넘기니 

뜻밖의 순간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더군다나 츄러스와 도넛이 공짜라니......

가볍게 소름이 올라올 정도의 바람을 맞으며 마을 탐방에 나섰다.

현재는 순례자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가우디의 건축물도 보고

초콜릿이 유명하다더니 상점이 즐비하다.

저녁으로 픽업해 온 피자로 

아스토르가에서의 아쉬운 밤을 달래본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이쪽이 저쪽을 그리워하게 하는 여행

떠나면 떠난 곳을 그리워하고

떠나서는 돌아갈 곳을 그리워하는

어설픈 여행자이지만

그 길 위에 내가 있음이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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