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는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순례의 중심도시로 남아있다.
이곳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면
100km 도보라는 순례자 증서의 요건을 갖추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행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비가 와도 너무 온다.
비가 오다 오다 이젠 주룩주룩 내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명한 기억을 남긴 마을, 사리아
높아진 습도, 창밖에 수직으로 떨어지던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내리던 마을로 기억될 것이다.
도보 기행을 다닐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후나 기온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걷기에만 집중하던 시절의 상황과는 다르다.
이 빗속에 제대로 된 우비와 신발도 없이 20킬로 이상을 걷는다는 건 불가했다.
언제쯤 순례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지만
사리아부터 걸으리라는 계획은 수정되어야 했다.
완벽하게 걸었던 것은 아니지만
산티아고 프랑스 길이 세 번째 여행인 친구들이
같은 루트를 함께해 주는 이번 여행을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상황이다.
저렴한 숙소여서일까, 세면대 물 내림이 시원하지 않다.
10시 체크아웃이라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숙소에서 1분 거리에 있는 터미널로 나왔다.
포르토마린행 버스는 오후 2시 15분 도착이다.
미친 듯이 내리는 비로 마을 탐방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포르토마린까지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택시를 부르려니 난감한 상황이다.
거리에 택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처 우산으로 가리지 못한 비가 배낭 위로 후드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어제 빗속에 다녀왔던 대형마트 주인이 주유 중인 것을 발견하고
콜택시를 부탁했다.
친절이 몸에 밴 젊은 사장은 흔쾌히 택시를 불러 줬다.
비는 꾸준히 내리고
택시는 숲길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달려간다.
마음은 정했지만
버스로, 택시로, 순례길을 달리는 마음이 착잡하다.
여기쯤 걷겠지, 걷겠지 하며 아쉬움이 짙어질 때쯤
미뇨강을 가로지르는 길고 하얀 현대식 다리를 건너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 시간이 일러 배낭만 내려놓은 채 비 오는 포르토마린 마을 탐방을 시작했다.
택시를 타고 지나쳤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아치문을 지나니 고지대에 위치한 마을 입구가 나온다.
기존 구시가지는 미뇨강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사라지고
높은 언덕 꼭대기에 있던 신시가지만 남아 있는 포르토마린은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식당과 바(Bar)가 많이 보인다.
바람이 쌀쌀하니 진한 커피 한 잔이 그립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다.
언제 이런 비에 약해졌다고,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말아야지,
마을과 순례길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친구들이 3년 전 방문 시
현지 할머니가 알려주신 맛집 정보를 갖고 있어 찾아 나섰다.
위치맵를 켰는 데도 빙글빙글 돌리면서 여간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은 현지인에게 물어 본 후에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야채를 넣은 수프가 따뜻하게 나온다 해서 주문하니
감자와 야채를 넣은 프가 우리의 시래기국처럼 나온다.
세명이 먹고 남길 만큼 충분한 양이다.
이어 샐러드와 대구 생선구이와 치킨 그리고 꽈리고추튀김 맛이 일품이다.
어릴 적 밀가루 묻힌 고추를 튀겨 주시던 엄마의 손맛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연일 계속되는 비로 인해 지친 심신에 음식이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오늘 밥값은 내가! 기분 좋게 한턱내고 소화도 시킬 겸 밖으로 나왔는데
비가 그친 늦은 오후의 거리가 부드러운 질감의 햇살로 넘쳐나고 있었다.
와인으로 인해 붉은 기운이 도는 두 뺨위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쳐간다.
'아~ 너무 좋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숙소로 들어온 시간이 오후 5시가 조금 넘었는데
친구들은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우리도 어느덧 씨에스타에 적응하나 보다.
내일 새벽, 출발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일찍 자야 하건만 잠들기가 쉽지 않다.
두 친구가 연주하는 귀여운 코하모니에 귀 기울이며
이 밤을 하얗게 지샌다 해도
행복한 순간에 나를 고정해 놓을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친구들과 나, 각자의 빛이 스며들고 있는 여행길에 있음이
행운 아닌가.
이 나이 돼서 알게 된 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생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비가 내려도
좋은 일이든 아쉬운 일이든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좋을 수 있다는 것
창문을 조금 열자 진한 비 냄새가 후욱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