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떠나신 지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네요. 매년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평화로운 곳에서 잘 지내시는 거죠? 아버지는 만나셨나요? 오랜만에 엄마를 생각하자니 묻고 싶은 질문도 많아지네요. 엄마가 가신 후 함께 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면서 가슴을 치는 시간이 반복되었어요. 그렇게 빨리 떠나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후회는 더 크게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긴 여행을 떠나신 그날을 기억해 봅니다. 설 연휴가 끝난 이튿날 절에 다녀오다 넘어진 채 하루를 못 넘기고 황망하게 가신 그날, 한겨울 찬 바람에 두 뺨이 얼어 버린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엄마에게 전하는 글을 쓰는 지금 푸르스름하던 창밖 풍경이 바뀌며 불그스레한 하늘에서는 아침 해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밤을 밝히던 가로등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3시에 깨어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무더위 속에 지칠 만도 한데 운동량에 비해 수면의 질이 안 좋은 요즈음입니다. 여섯 형제 중 엄마를 많이 닮은 나는 부지런함과 역마살이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다만 급작스러운 엄마의 부재는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굳건할 것 같았던 삶이 균열이 생길 때 다시금 영원한 건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바로 지금, 지금 밖에 없다고 부르짖으며 불안한 오늘을 알뜰하고 값지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엄마,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엄마를 추억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기억이 고장이 난 듯 엄마를 평생 잊지 못하면서 살 것만 같았던 마음속 화인은 점점 희미하게 변해가고 있나 봅니다. 꿈속에서 조차 만날 수 없는 엄마를 추억해 내는 일이 쉽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이 나를 놀라게 합니다. 고백하건대 한동안 엄마를 잊고 살았습니다.
탁자 위의 한편에서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봅니다. 함께 그날의 공기를 마시며 기분 좋게 웃는 순간을 기억하니 맘이 따사해집니다. 많은 식구를 건사하느라 엄마의 노고 가 많았던 봉천동 주택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 종종걸음으로 드나들던 현관, 부엌, 먹이를 챙겨주던 진돌이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잊히지 않고 되살아나는 추억도 있습니다. 엄마 긴 여행 떠나시고 일 년쯤 지났을 때 넷째 동생 부부와 제주로 향했습니다. 차귀도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숙소도 같은 곳으로 정해 엄마와의 흔적을 고스란히 반복했습니다. 마음은 설렘과 씁쓸함이 반반이었던 듯싶습니다. 엄마 안 계신 현실이 슬퍼 가슴이 먹먹하지만, 기억의 힘으로 현재를 살아갈 수 있으니, 추억은 사랑입니다.
하늘에는 흰 구름 한 뭉치가 천천히 흐르고, 열린 창문 틈으로 한여름 열기가 느껴집니다. 엄마는 어디쯤에서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을지 상상해 봅니다. 가끔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조차 못 할 만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을 때 “오늘 있잖아...”라는 말로 수다를 받아 줄 엄마가 필요한 날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붉게 떠오르던 아침 해가 세상을 환히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 라디오에서는 간밤의 소식을 전하는 아침 뉴스가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함을 알리고 있습니다. 저도 엄마랑 함께 마시던 향 좋은 커피를 준비합니다. 원두를 갈고 거름종이를 올려 커피를 내립니다. 커피를 줄이겠다던 다짐은 향기 좋은 커피 향에 엄마의 추억이 담겨 마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 시작하는 오늘 엄마와 함께여서 행복한 날입니다.
진한 보고픔으로 가슴 한쪽에는 뻐근한 그리움이 엉켜오지만 가끔은 세월을 반추하고 가끔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생활은 언제나 슬프고 괴로운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니”라는 푸시킨의 시구절처럼 지나간 그 시절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그만큼 세월이 흘러버린 탓이지만 언제든 엄마와 함께 여행하듯 삶을 살기로 합니다.
함께한 시간이 한순간에 끝났다는 허무함으로 힘든 시간은 잊기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