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 별일 없지? 그저 잠깐씩 다니러 오던 서울 한복판에 서서 40년이 지난 지금, 너의 안부를 슬그머니 물어본다. 종로 네거리에 우뚝 솟아오른 종로타워가 지금의 우리처럼 낯설고 어색해서 마음속이 어지러웠다. 고작 YMCA 건물과 보신각이, 사랑만이 전부였다고 믿었던 그 시절 그 장소였음을 얘기해 줬다.
조계사 맞은편 2층 계단으로 오르는 입구가 좁았던 다방에서 그와 동해 바다로 떠나기 위한 모의가 시작되었다. 1남 5녀 딸부잣집 맏이였던 나는 아버지의 완고한 신념을 꺾기 위해 그럴싸한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했다. 좁고 낡은 나무계단을 발 빠르게 오르던 내 모습이 또렷이 남아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그날의 기억이…. 그 여름날 하루 일탈의 꿈은, 꿈으로 남겨야만 했던 그때 그 다방은 이제 없다. 실수와 어설픔이 오히려 아름다웠던 시절, 눈이 부신 날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모의를 꿈꾸던 다방도 사라지고 우리 삶의 여름날도 흘러가 버렸다.
종로타워 앞에서 목이 메었다. 낯선 곳에서 추억을 끌어올리며 잊었던 아니, 일부러 잊으려 했던 그의 얼굴도 떠올랐다. 왜 헤어진 이후로는 정확하지 않은 것만 생각하게 되는 건지…. 정말로 그 시절 우리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버둥거리게 했었다. 안국동이 직장이었기에 종로 주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 해바라기의 <사랑의 시>를 신청해 듣기 위해 단골 음악다방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억조차 의심스러운 서울풍경 앞에서 그것을 오래 그리워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잃어서 슬픈 것은 그 사람 앞에서만 가능했던 나의 모습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외로움이다.’ -히라도 게이치로-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있었던 슬픔의 색깔이 광통교에 놓인 석물처럼 뒤죽박죽이었다. 청계천 물줄기를 따라 걸으며, 발걸음을 멈춰 서서 자주 뒤를 돌아다봤다. 내가 뒤돌아보지 않았다면 그냥 묻힐 풍경들처럼 다시 꺼내 보는 내 젊은 날의 엉클어진 감정을 다독이었다. 가슴속에 따뜻한 물이 한 뼘씩 차오르는 것 같았다.
봄이 사라져 가는 청계천 변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광교 쪽으로 올라와 한국은행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운 것들과 재회하는 시간이 여유롭다. 퇴직 후 막막할 줄 알았던 삶이 한층 더 즐거워질 거란 예감으로 오늘 깊은 슬픔에서 날 구제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시간은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지만, 암담함보다 더 아름다운 곳으로 가고 있음이 참 다행이었다. 명동을 지나 남대문으로 걸어가는 내내 곳곳을 기웃거리는 나 자신을 만났다. 그 마음 다 안다고 찬찬히 미소 지어 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회현역에서 시작하는 서울 고가도로공원으로 올랐다. 무심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제 볼일 보러 바삐 움직이는 틈에 나는 서 있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 서운한 마음에 당신의 이름을 오물거려 보는 늦봄의 하늘에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변하고 묻혀가지만 앞으로 겪는 낯선 시간이 주접스럽지 않고 담백한 삶이 되기를 기도하며 서울역사 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그대도 부디 별일 없이 잘 지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