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생생한 리스본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대충 아침을 먹고, 13세기 무렵 도둑들이 장물을 거래하며 시작됐다는
재미난 이름의 '여자도둑Ladra시장'으로 향했다.
상 빈센테 드 포라 수도원 인근에서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데
다행히 일정이 맞아 우버를 타고 도착하니 10시쯤 되었다.
9시쯤 시작된다는데 너무 늦게 왔나? 살짝 파장 분위기다.
밤새 비바람이 심했던지 돌바닥 위에는 나뭇잎이 떨어져 어지럽다.
줄곧 내리는 이슬비 때문인지 선뜻한 기운마저 몸속을 스민다.
갖고 나온 물건들을 걷어들이고 챙기느라 분주하며 어수선하다.
우리의 황학동 도깨비시장을 구경하듯 골동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액세사리, 커피잔 세트, 아줄레주 문양 타일, 고서적, 러그, 수공예품, 레코드판
빈티지스러운 병들과 소품들, 오래된 검정 전화기, 케이스가 있는 카메라 군인들이 썼음직한 수통, 공구 등
다양한 물품들. . . . . .그야말로 별의별 물건들이 다 나온 듯하다.
광장을 돌며 느끼는 감정은 물건의 가치를 찾기보다는
오래도록 지니고 있던 물건들을 내다 파는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더구나 자연적으로 소멸될 수 있도록 포장용 종이를 작게 잘라오셨다.
뽁뽁이, 비닐 백 등도 생분해 아니면 저항하는 정신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친구는 유난히 싸고 예쁜 물건들을 잘 찾아낸다.
특히 강아지 그림이 들어가 있는 모든 물건에 관심이 집중된다.
친구의 집에는 이미 강아지 아이템으로 집결되는 물건들이 상당하다.
오히려 약간은 촌스러운 물건도 친구의 손에서는 반짝반짝 빛나고 값어치를 발하는 물건이 된다.
그 여행이 좋았던 그 순간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 중에
이쁜 물건을 찾아 헤매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 추억도 한몫하지 않을까?
이 추억은 아무리 꺼내어도 잔고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친구는 알고 있다.
여행 중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귀엽고 작은 강아지 모양 커피잔 하나에도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 들려줄 걸 알기에
우리는 골목 구석구석 내 눈을 사로잡았던 모든 것들을 기억할 것처럼 탐욕스럽게 보고 또 보고......
천주교 신자인 후배에게 줄 선물과 초분침이 만져지는 나무시계와
한 송이 꽃을 꽂을 수 있는 꽃병을 구입했다.
쏟아져 내리는 비를 피해 포카치아 빵 대신 종류별 햄버거로 점심을 배부르게 먹는다.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오늘은 낡은 28번 트램(Tram 28)을 꼭 타야 한다.
엄청나게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트램 탑승 순서를 기다린다.
긴 줄 대열에 서서 바라보는 리스본의 풍경은 오가는 사람들의 활력이 보태어져
지루하지 않게 기다린지 1시간이 지난 후에 정원을 꽉 채우고 트램은 서서히 달리기 시작한다.
덜컹덜컹 쇳소리를 내며 끽 소리와 함께 코너를 돌 때마다 트램도 흔들리고 승객들도 흔들린다.
빛바랜 건물 사이를 닿을락 말락 연노란색 낡은 전차가 땡땡거리며 좁을 골목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난다.
1755년 대지진으로 화려했던 도시 대부분이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갔지만
피해를 받지 않아 대부분의 민가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
빈티지한 골목 안으로 애절한 파두 가락이 흐르는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알파마 지구 비탈길을 오르내린다.
알록달록 건물들 사이로 빨래가 정겹게 나부끼는 소소한 풍경에 눈길을 주고
반질반질한 나무의자에 앉은 승객들의 즐거운 대화와 웃음소리가 끝이 없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도시의 골목에는 먹고 보고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넓은 광장 한 귀퉁이에 앉아 잠시 쉬어가도 좋은 곳, 코메르시우 광장을 지난다.
보랏빛 석양이 퍼져갈 무렵 길거리 버스킹에 귀 기울이고 테주 강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도 좋을 곳
광장의 중앙에는 대지진 때 폐허가 된 리스본을 재건한 왕 호세 1세의 동상이 있다.
어둑해진 날씨로 동상의 크기가 더욱 거대하게 보인다.
광장 주변으로 관광객과 어우러진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야시장이 불야성이다.
파인애플을 잘라 키위를 갈아 넣은 주스를 한 모금씩 하면서 잠시 여유를 갖는다.
그동안의 빵 위주의 식사를 했던 우리들을 위해 동생의 친절한 검색 덕분에
동방초시 즉 아시안 푸드코드 건물을 찾아 들어갔다.
한식 코너에 자리를 잡고 돌솥비빔밥 순두부,
추가로 뜨끈한 국물의 쌀국수를 시켜 오랜만에 한식으로 저녁을 했다.
환승이 가능한 일일 교통권으로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색다르고 이색적인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난다.
리스본 여정이 끝나면 파리로 돌아가 예약돼 있는 미술관, 몽셀미셀투어 후
남프랑스 일정을 추가로 진행할지에 대한 논의를 했다.
친구들은 다녀오고 나는 가 본 적 없는 남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으나
귀국 일정이 빠듯한 가운데 여정을 늘리기 보다는
매력적인 도시 포르투 포즈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선물로 리스본의 그림 같은 풍경을 가슴에 담고
소소하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은 행복을 담으러 또다시 포르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