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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선 Jul 26. 2024

신트라, 호카곶 대서양 넘어 푸른 꿈을 전하다

어제 마셨던 커피 석 잔의 괴력으로 하얗게 밤을 보냈다. 

이참에 어제 그림에 색을 입히는 작업을 재빨리 마무리했다.

오늘의 여행지 신트라, 호카곶을 가기 위해 우버를 불러 호시우(Rossio)기차역에 도착했다.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역사 안으로 올라가니 신트라를 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이 없다.

자동발매기를 이용하려는 줄과 역무원에게 표를 구입하려는 줄 중에

기계보다 사람 손이 빠름을 판단하고 1일권을 구입하여 신트라행 직통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안은 이미 많은 여행객들로 공간이 빽빽하다.

40분 정도 걸린다니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여행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인 모녀가 정답게 대화를 소곤거리고

중년 외국인 부부는  밝은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가족에게 보내는 엽서를 작성중인듯 싶다. 

부인이 엽서의 반 정도를 채우고 남편이 남은 반을 채운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음을 보여주며 겸연쩍어하는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부부에게 시선이 멈춘다.

마른 몸매의 남편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부인이 약통을 꺼내 캡슐 알약 하나를 남편의 혀 아래 넣어 준다.

혀 밑에 약을 넣은 후 또다시 지그시 눈을 감고 약이 녹기를 기다리는 듯, 그 모습이  고요하다. 

힘겨워 하는 남편을 위해 귓속말로 대화를 하며 두 손을 다시 잡는 부부 

무슨 사연일까, 소설을 쓰자면 아픈 남편의 손을 잡고 여행길에 오른 부인의 애틋함이 오롯이 전달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에덴의 동산이라고 예찬한 신트라에 도착했다.

주요 관광지인 무어 성과 페나 성 순환노선  434번 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상황 파악에 빠른 친구들의 민첩함으로 현금결제 후 버스에 올랐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와 한기가 느껴질 정도인데  비까지 온다. 

버스는 승객을 가득 태우고 출발, 우리는 무어 성 입구에 내렸다.

또다시 줄을 서서 입장권을 예매하는 동안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울울창창한 고목들을 지나 무어 성에 도착했다.

산등성이 따라 누워 있는 듯한 용 모양새의 구불구불한 성곽에 오르니 

바람의 세기는 더욱 거세지고 사람까지도 날려버릴 기세다.


성벽 위에서 보니 아래로는 신트라 왕궁이, 위로는 동화 속에 나올 듯한 원색의 페나 성이 한눈에 담긴다.

화려한 페나 성과 판이하게 다른 짙은 회색의 무어 성은 

그야말로 무어인이 산 위에 방어용으로 세운 요새이다. 

쉽게 오를 수 있는 무어 성곽에서 멋진 경치를 감상하고 싶지만 

오싹할 정도로 불어오는 바람이 몸과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바람이 괴로운 나는 무어 성곽에서 일찍 내려와 바람이 잦아든 장소에서 일행을 기다린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낭만주의 건축의 결정판인 

페나 성은 아쉽게도 관람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린 많은 관광객들로 더 이상의 성곽 투어를 포기한다. 

어제 저녁 한숨도 못 잔 탓과 사람들과 차들이 얽혀 있는 도로에서 피곤이 가중 되었다.


피자로 요기를 하고 택시를 불러 호카곶으로 이동한다. 

호카곶은 우리나라와 위도가 비슷해서 우리나라 서쪽으로 쭉 오면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신기하다.

밭과 농가를 지나 푸른 대서양이 펼쳐진 낭떠러지를 향하여 걸어간다.

아찔한 절벽 위에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본다.

엄청난 바람을 견디는 것은 짧은 잡초와 흙과 돌 뿐인 이곳 

세찬 파도로 침식돼 지금과 같은 단애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기에 역부족인 이곳은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 카보 다 호카, 호카곶이다.



검은 구름으로 회색빛인 하늘, 야성적인 파도 소리와 그 위를 날아오르는 물새들 가늘게 내리는 비, 

사색하기 좋은 이곳에서 십자가가 달린 기념비 위에 새겨진 

포르투갈의 위대한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시 한 구절을 들여다본다.


여기,

땅이 끝나는 곳,

그리고 다시 바다가 시작되는 곳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D MAR COMECA


바다가 시작되는 곳, 새로운 시작일테지.




후드둑 비가 쏟아져 내린다.

온 사방은 광활하고 우리는 작아서 비를 피하기보다는 온전히 자연을 즐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운 좋게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던 카스카이스(cascais)행 버스에 탑승했다.

부촌답게 화려한 건물과 많은 기념품 가게, 식당 카페테리아가 즐비하다.

현대적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으면서도 아기자기한 항구의 분위기를 잃지 않은 곳으로 

1년 내내 맑은 햇살이 반짝이는 어촌으로 포르투갈 왕가의 거주지이며 휴양지였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빨간 지붕의 하얀 집, 알록달록한 고기잡이배와 

보트와 요트가 정박돼 있는 항구의 분위기는 한 장의 그림엽서이다.

깎아지른 듯한 거친 절벽이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절벽 밑으로 파도가 몰아치는 절경을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노을이 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데 흐린 날이라 아쉬움이 크다.


동네를 산책하며 화려한 소품으로 인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카페에서 

오렌지, 진저, 당근으로 만든 스를 시켜놓고 실내 드로잉을 빠르게 그려본다.

오늘도 쉬지 않고 일일 일점 드로잉 완수~~~~

어둑해진 카페를 나와 우버를 이용해 신트라 역에서 리스보아행 야간 열차에 몸을 싣는다.

내일은 낡은 28번 트램을 타고 산타클라라 광장, 도둑 시장에서 건져올릴 엔틱한 물건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단함도 잊고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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