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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선 Jul 22. 2024

리스보아 -여왕의 마을을 가다

오전 11시 30분, 시간 맞춰 리스보아행 버스가 도착했다. 

짐칸에 일렬로 짐을 넣어 두고 자리에 앉으니

승차권 체크하던 승무원이 승객들을 향해 오부리가도~를 외친다.

이어서 승객들이 합창하듯 오부리가도~를 되받아 외친다. 

정감이 오가는 순간이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밤새 많은 양의 비가 내려서인가 차창가에 부딪치는 비의 세기가 약해졌다.

창밖 풍경이 휙휙 빠르게 지나가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사이 

영어로 리스본, 포르투갈어로 리스보아 '좋은 항구'라는 뜻을 가진 도시에 도착했다.

숙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숙소와 멀찍이 떨어진 관리 사무실에서 키를 받아야 했다.

20여 분을 오가는 택시 안에서 빠르게 리스본 거리를 익힌다. 

숙소에 안착 후 히베리아(riverside) 마켓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찾아 나섰다.

재래시장처럼 다양한 종류의 과일과 야채, 생선등을 팔고 있는데

오전만 문을 열어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파장 분위기라 아쉬웠다.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또 다른 매력은  '타임아웃' 때문이다.

리스본의 유명 맛집이 모두 모여 있어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중앙으로 대형 탁자가 길게 자리해서 다른 이들과  합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눈치껏 자리를 잡았지만 음식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엉겁결에 저녁을 먹고 어둑해지는 거리로 나왔다.

숙소까지 한 시간여의 거리라 걷기로 한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고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벽에 바짝 붙어야 할 것 같은 공간으로

노란 불빛을 비추며 귀여운 트램이 지난다. 그래, 여긴 리스본이야.

낯선 골목 가득 즐거운 웃음이 번진다.

우리는 각자의 여행에 심취해 하며 부산했던 리스본에서의 첫 밤을 보낸다.


오비두스를 방문하는 날이다.

우버를 부르고 기다림 없이 오비두스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천천히 터미널을 출발해서 리스본 시내를 빠져나간 버스는

정확하게 한 시간을 달린 후 오비두스에 도착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고 오비두스 사람들을 위한 식수를 운반했다는 

'우세이라 수로'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준다.



13세기 오비두스의 아름다움에 반한 이사벨 왕비에게 

디니스 왕이 결혼 선물을 준 이래 

역대 왕들이 왕비에게 이 성을 선물로 바친 전통이 이어져 '여왕의 도시'란 명칭을 얻었다.

요새를 뜻하는 라틴어 '오피둠 Oppiidum'에서 이름을 딴 오비두스는

성곽을 요새처럼 두른 성곽도시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높다란 성벽 위에는 깃발이 휘날리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묘사한 1740년에 만들어진 코발트블루의 아줄레주가 

성문 초입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최고의 아름다운 예술작품, 아줄레주를 보는 내내 행복한 미소를 감출 수 없다.

특이하게 발코니가 있는 성벽 아래에 긴 머리의 여인이 심취한 듯 연주에 몰두하고 있다.

비행접시처럼 생긴 '핸드팬'이라는 악기를 통해  

단조로운 리듬 속에 우수와 낭만이 담긴 연주곡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치형 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서니 두 갈래의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마을이 나타난다.

시간 여행을 온 듯 중세 시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광에 심장이 간질거릴 지경이다.

힌두교를 믿는 무어인들은 집안에 다른 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문과 집 가장자리를 노랑, 파랑색으로 칠했다는데

집집마다 하얀 바탕에 노란색과 파랑색으로 띠를 두른 집들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난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하얀 집 담벼락 위에는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만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분홍색

부겐빌레아 꽃이 풍성한 자태로 늘어진 채 아름답게 피어있다. 

이곳이 바로 '별유천지비인간' 세상 아닐까.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하얀 집들은 

작은 갤러리, 책방이 줄지어 있고 대부분 소품숍으로 이용하고 있다.

동화 속 마을 같은 오비두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들은

초콜릿, 진자와 더불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도자기들이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어 여행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림엽서 같은 건물마다 예쁜 제라늄 화분이 걸려있고

온갖 진부한 표현을 갖다 붙여도 스스로 특별하게 빛나는 마법 같은 도시이다.

짧은 여행이지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마을,

여행의 속도를 늦춰야 하는 이유이다. 


짧은 여행의 마무리는 달콤한 술 '진자(Ginja)'로 하기로 하고

성문 입구에 늘어서 있던 진자주 판매점에 자리를 잡았다.

오비두스의 특산품인 체리주는 

체리와 설탕을 리큐어에 담가 만들어  '진자'를 앙증맞은 초콜릿 잔에 담아 준다.

한 입에 톡 털어 넣으니 달콤 쌉쌀한 맛이 매혹적이다. 

여행의 피로는 사라지고 행복감만이 침전한다.





비는 멈췄건만 엄청난 세기의 바람으로 

성곽 위를 걷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며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실내 등이 꺼지고 의자 깊숙이 몸을 접고 쉬노라니 낯익은 팝 뮤직이 흐른다.

기사님 취향인가, 라디오인가,

익숙한 팝뮤직이 흐르니 심신이 편안해진다.

행복을 부르는 체리주 덕분에

천천히 달리는 버스에서 달콤한 가 수면 상태로  빠져든다.


                      예쁜 마을에서 최고로 아름다웠던 친구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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