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나의 생은 아주 규칙적인, 그리고 정형적인 직업인으로서의 시간으로 번쩍번쩍 빛이 났다. 작은 일탈이나 반항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고, 주어진 필요조건에 충분조건을 더해, 누가 봐도 인정하는 완벽한 직장인의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지키고 즐기며 첫 번째 생의 시간을 그윽히 보냈다. 그리하며 두 번째 삶의 시간을 마주하기까지 꼬박 6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내 안에 잠자며 기다리고 있던 일탈의 욕구가 오
늘 드디어 빛을 볼 때가 온 것이다.
챙겨갈 그림 도구 와 감사의 마음을 대신할 그림카드
유럽 배낭여행은 아주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이다.
오랜 꿈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대학교수로 은퇴한 친구 현주, 제주에서 입시학원을 경영했던 동생 양희와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로 의기투합 후, 비행기 티켓팅을 하고 기다린 시간이 바로 코앞이다.
일상을 떠나 또 다른 일상에 도착하는 시간을 하루 남기고 있다.
늦은 밤, 그녀들이 송도 우리 집으로 왔고, 함께 공항으로 가는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걷겠다는 사람들의 배낭이 만만치 않다. 대충 절제해서 가방을 꾸려도 40리터 배낭은 빵빵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나는 그림도구까지 넣으니 무게가 상당했다.
새벽에 달려와 준 현주 친구 영심이의 배려로 드디어 제2터미널 공항에 도착.
10.5 09:05 에어프랑스 타고 출발~
10.5 16:10 파리 도착
비행기 안에서 간간이 그림을 그렸다. 3년 전 퇴직 이후 줄곧 그리기 시작한 그림으로 인해 행복은 높이가 아니라 곁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12시간을 날아 도착한 파리 드골공항.
한도 끝도 없이 뱅글뱅글 돌려 놓은 바리 케트를 나오다 머리가 돌 정도이다. 스마트한 양희 덕분에 우버 택시를 타고 숙소를 향하는 동안 차창 너머 프랑스의 첫인상은 그레이,블랙, 번트 엄버 톤의 도시로 기억될 듯하다.
산티아고를 향해 타박타박 걸으며, 내 한숨을 여행지기 그녀들에게 넉넉히 풀어놓고, 현주와 더불어 양희의 날숨도 함께 느껴 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는데 우리의 여정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