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낡은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by 정인

26살인 지금에서야 가난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지 모를 수 있구나 이해한다. 정말 많은 경제적 위치가 존재하고, 그 위치마다 공감대가 다르다는 것. 어린 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이치였다. 중학생때 담임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사실 그 말이 모든 것을 압축시킨 말이었다. 통찰이라고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비관적이 이유로 그 문장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말인 즉, ‘지금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벗어나는 순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거다.‘라는 말씀이었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에게 조언이랍시고 내뱉은 말이었다.


참 다행이라고 느끼는 건 MZ세대라는 말이 널려있는 요즘 개인의 기술력과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그만큼 존중받고 존경받는 경우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라떼까지만 해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차별적인 언어 폭력을 당했는지 모른다. 사랑의 매는 초등학생때 끊겨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도 남자인간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고등학생까지도 맞았다고 했다.) 아무튼 그 말을 들은 나에게 점차 의문이 생겼다. ‘그래, 공부나 가능성은 교복을 벗어야 그 차이가 명확해지겠지만, 가난은 교복을 입어도 투영되는 걸?’ 같은 교복 위에 걸치는 겉옷, 가방, 운동화는 그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당연히 옷이 두꺼워질수록 자연스럽게 더 선명히 보여졌고, 그래서 나는 내가 겨울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비싼 패딩을 살 수 없어서.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차가워지는 사물들이 소름돋게 춥고, 두껍기만 한 옷들이 나의 몸에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알고 나서야 ‘아, 나는 겨울을 이래서 싫어한거구나.’ 깨달았다. ‘선생님, 가난은 같은 옷을 입는 지금도 다 티가 나는데요. 그럼 가난한 사람은 망한 사람인건가요?’ 묻고 싶어서 늘 되새겼다. 같은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가난은 그럼 큰 죄악인건가. 사실 아무것도 맡는게 없다. 같은 옷을 벗으면 위치가 들어난다는 말도 다 개소리다. 가난과 지위를 숨기려고 교복을 만들었다면 난 사회 시스템을 경멸하고 욕할 것이다. 군인도 경찰도 의사들도 같은 옷을 입는 이유는 소속감, 공동체 의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소속마다 같은 옷도 다른 색과 문양을 사용하겠냐며 당당히 외칠 것이다.


사실 옷까지만 하더라도 센스있게 나의 가난을 숨길 정도의 능력은 나이가 먹을수록 갖출 수 있다. 아니면 그 정도까지는 커버가 가능한 가난이었던가. 간간이 들어오는 용돈을 헛되게 사용하지 않고 모아 내가 직접 옷과 가방과 신발을 사면 그만이었고, 중요한건 살 때 제대로 된 제품을 사서 오래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양과 컨디션이 A급이 아니더라도. 그래서 학생 때는 옷을 못 입는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속으로 ‘못 입는게 아니야. 머릿 속에 상상으로 그려본 스타일들은 다 멋쟁이라고. 옷이 없어서 그렇지.’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도움이 안되는 부류의 아이들은 “왜 매일 같은 패딩이야? 옷이 그거 밖에 없어?”라고 묻거나, “옷이 왜그래 ㅋㅋㅋㅋㅋ”라며 놀리듯 웃는 아이들.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인 콧소리가 나오며 말한다. 그리고 꼭 그런 애들이 잘 살더라. 재수없었다.


사춘기를 거나하게 겪던 시기에 가난은 창피였고, 겉모습이 전부던 시절이라 얼추 비슷하게 흉내만 내면 따돌림 받지 않는다는 경험을 통해 열심히 나의 모습은 돌 깎듯이 깎아냈다. 하고 싶은 말도 참고, 화가 나도 참고, 구질구질 구차해도 참고 상처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그렇게 밖에서 보이는 내 모습을 감췄고, 안은 곪아가고 있었다. 섞은 이처럼.


왼쪽 윗니가 많이 아팠다. 땜빵을 했던 곳이 떼어져서 그대로 냅뒀다. 어느 날 치아가 부러져 뱉어냈다. 또 그대로 냅뒀다. 양치만 잘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미칠듯한 고통에 잠도 못 자고, 방 모서리에 쭈구려 앉아 입을 옷에 파묻히고 입김을 불며, 따뜻한 바람으로 고통을 달랬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나니 통증이 사라졌고, 그대로 또 한참을 지냈다. 우연히 다른 이빨의 세균을 떼우기 위해 간 치과에서 신경이 죽은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빨을 찍어봐야겠다고 의심이 가는 아랫니와 함께 CT를 찍었다. 나를 고통에 밤잠 못 이루게 한 이빨은 이미 신경이 다 죽었고,(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경치료를 진행해도 통증이 없을테니) 아랫니는 조금 남아있어서, 신경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직 어려서 임플란트는 그렇고 이빨의 뼈대를 남기고 그 위에 이빨 모형을 씌우자는 선생님의 진단을 받았다. 금액이 컸다. 그렇게 두 달이 넘는 치과 생활을 했다. 그 경험으로 치과를 무서워하지 않게 됐다. 언젠가는 임플란트를 해야하는 두 개의 치아가 나는 있다. 아빠는 왜 여지껏 말하지 않았냐고 했지만, 나는 짜증을 섞어 말했다. 계속 말했다고, 땜빵이 떼어졌을 때도, 이빨이 부러져 나갔을 때도 말했다고, 방치한 건 엄마 아빠라고. 엄마 아빠는 한동안 아무 말을 안했다. 아니 못했다. 부모님도 그때 무언가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죄책감이거나 자괴감이겠지. 한풀이 하듯 내뱉은 나의 말에 엄마 아빠는 자존심이 상했겠지.

시간이 조금 흘러 치료가 끝날 때쯤 아빠는 나의 같은 대답에 말했다. “너의 몸을 스스로 잘 챙기는 것도 너의 몫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치료 내내 금전적인 문제로 다투던 엄마 아빠는 나에게 탓을 돌려야 본인들이 편했을거였다. 왜 자식을 잘 챙기지 못했냐는 책임을 전가했을 거였고, 다툼의 이유가 됐을거다. 그때 나는 둘 다 잘못했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끝끝내 나에게 조언을 하던 아빠의 말은 결국 핑계였다. 나는 아직 만19세가 넘지 않은 보호자의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자였으니까.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이런게 가난이지.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