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인의 낯선 1.5년차 서울살이에 대한 감상
그림 그리기가 취미인 나는 보통 주변에서 접하는 환경에서 영감과 소재를 얻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는 줄곧 그림을 그리기를 사랑해왔다. 숨만 쉬어도 그릴 것들이 넘쳐나는 환경에 언제나 열의와 창의를 얻었고, 그 덕에 그림에 소질이 없었던 나는 그래도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림을 잘 그리는 편에 속하게 되었다. 그런 내가 가장 그림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는 곳은 본가 근처 산책길이었다. 꼭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마저 나에게는 소재거리가 되었다.
다행히 작년에 살던 곳 근처는 산책로가 있었다. 사람들이 잡초보다 많아보이기는 해도 자연이 가까워 좋았다. 무엇보다 행복하게 산책하는 강아지들과 자유로이 길가를 거니는 고양이들을 보고나면 마음이 진정됨과 동시에 어떤 것을 그리고 싶은지가 떠오르고는 했다.
올해 5월, 나는 조금 더 도시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집 근처 산책로는 없었고 자고 일어나면 폭발하는 경적소리와 수많은 바퀴들의 마찰음, 끝도없이 쏟아지는 엔진소리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출퇴근이 반복되면서 보게되는 환경은 모두 잘 차려입은 사람들과 제시간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지하철, 그리고 그것들이 향하는 건물들 뿐이었다. 산책에 행복해하는 강아지도, 길고양이도 흔치 않았다. 서울의 밥집이라는 곳들은 전부 이해를 할 수 없는 가격의 디저트 카페 혹은 술집 뿐이었고, 카페에서는 셔터음이, 술집에서는 담배냄새가 내가 한국의 도시에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물론 내가 살던 지역이 아주 시골은 아니어서 그런 광경이 낯설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정말 쉴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런 곳들은 내게 유독 멀게 느껴졌다. 인위적인 향수냄새와 요란하게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지나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들을 거쳐 도심 속 자연에서 쉼을 경험하고 온다고 하더라도 결국 돌아오는 길은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나는 쉼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쉬기 위해서는 '쉼'을 주제로하는 전시를 가거나, 사람이 적다는 곳을 인터넷에 검색해 눈이 벌게질 때까지 찾아헤맸다. 그리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나를 내려다보는 건물들을 없다시피 무시하며 자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니 나는 그림이 귀찮아졌다. 누군가는 핑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영감이 오지 않음은 곧 그림을 그리지 못함을 의미했다. 모작이 아닌 창작을 하고싶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길가에 가득 널린 담배꽁초 혹은 침자국만 못했다.
인생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즐겁지 않아졌고, 오히려 일이 됐다. 그나마 매주 연재하던 인스타툰을 놓아버린 뒤부터는 거의 낙서조차 하지않았다. 내 정체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보다 좋은 취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해도 그다지 즐겁지 못했다.
점점 도시가 미워졌다. 회피성일지도 모르겠다. 대학 생활까지 포함하면 본가를 떠나 산 지가 벌써 6년차인데 처음으로 본가가 그리워졌다. 코로나시기에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산책을 했던 그 때가 오히려 가장 숨통이 트이던 때가 아닌가 싶어졌다. 억지로 그림을 그리려할수록 그림은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이대로 내 인생의 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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