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 이야기
번쩍. 눈이 트이는 기분과 함께 백영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지독히도 비린 냄새가 자신의 입으로부터 풍겼다. 손을 바라보니 말캉이는 감촉의 핏덩이들을 쥐고 있었다. 온몸의 솜털이 삐죽 서는 것만 같은 소름 끼침을 느꼈다. 쥐었던 것을 땅바닥에 던져버리고, 이 사이로 피가 흐르는 입을 연신 닦아가며 집을 향해 달렸다. 부모와 연을 끊고 산 지 오래되어, 집에 돌아가도 놀랄 사람이 없다는 점이 그나마 안도감을 줬다. 백영은 달리다가 -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창백해진 피부, 흐리멍덩한 눈과 그에 대비되는 핏자국들.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 돌을 던져 내쫓았던 그것과 너무 닮아있었다. 그제야 백영의 눈에 길가의 풍경이 보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해 보이는 그것들이 보였다. 한 건물의 전광판이 빨간 바탕의 '긴급속보'를 띄우고 있었다.
[국내 좀비 동시 회복 중, 정부 현황 파악에 나서...]
백영이 발 딛고 있는 지역 외에도, 국내에 있던 모든 그것들이 일시에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다. 정부는 급해졌다. 비록 좀비였던 인간이 좀비였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며, 인간처럼 행동한다지만, 그들이 언제 다시 돌변해 그 옆에 있던 이를 물어뜯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국회뿐 아니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좀비였던 인간은 이제 '좀비인간'으로 불렸다. 좀비인간은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여전히 배가 심히 고파질 때에는 이성을 잃었다. 위험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인간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좀비인간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생산성과 경제력을 잃었다. 몇 년 간 진행됐던 좀비사태가 만들어낸 좀비 인간의 수는 결코 적지 않았다. 정부는 모든 좀비인간에게 '정신장애' 판정을 내리도록 결정하며 좀비 비상사태 종료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시민들은 속칭 '좀비장애'라 불렀다. 정부는 모든 기업에 채용절차에서 그들을 차별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 당연하게도 거의 모든 기업이 좀비장애를 가진 이들을 고용하려 하지 않았다. 설사 좀비장애인을 강제한다고 해도, 차라리 벌금을 내고 말겠다는 태도였다.
좀비장애인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돈을 벌지 못해 끼니를 때우지 못한 좀비장애인들이 길가의 시민을 물어뜯는 일이 허다해져 뉴스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저 좀비 물림 피해자 수만 카운팅 될 뿐이었다. 정부는 대책이 필요했다. 그 무렵, 조금 규모가 있는 커뮤니티에서 좀비 성매매에 대한 글이 화제가 됐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가졌던 이상성욕을 실현할 수 있는 환상의 세계라며 극찬을 하는 글이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그를 경멸했지만, 한 편으로 궁금해했다. 그 글을 기점으로 좀비 성매매 업소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그 덕에 많은 좀비들이 성매매의 길로 들어섰다. 소비와 공급이 동시에 늘었다. 호기심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생겨난다. 정치인을 봤다는 일명 '간증글'도 커뮤니티에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점진적으로 '좀비 물림 사건'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정부는 결국 좀비장애인에 한정해 성매매를 일시 허용할 것을 공표했다.
백영도 여느 좀비와 다르지 않았다. 인격을 잃고 사람을 물어뜯고 싶지 않았던 그는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인 성매매를 택했다. 인간이었을 때, 아니, 좀비장애인이 되기 이전에도 멀끔한 외모를 가졌던 그는 좀비장애인이 되어서도 인기가 좋았다. 수많은 고객들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는 인간이었다. 인격을 잃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 이하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이들 중 한 명이 홍차의 연인이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