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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정 7시간전

홍차와 꽃부리 2화

홍차 이야기

  홍차가 처음으로 깊이 사랑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영리했고, 지혜로웠다. 다연이 종종 떠오를 정도로. 항상 배울 점이 넘쳐 함께 있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


  좀비가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으로서 인정받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배가 고픈 좀비가 사람을 물어 뜯었다는 사례가 하루에도 여러 번 이슈가 됐다. 국회를 비롯해, 여러 방송이나 인터넷 채널, 개인 간 만남에서조차 '좀비와 공생'은 언제나 열띤 토론을 만들어냈다. 좀비를 가족으로 둔 이들을 비롯한 좀비 공생 찬성론자들은 그들도 한 때 사람이었으며, 좀비로서 이성을 잃었을 때를 제하고는 기억과 사고가 온전하니 인간으로 인정해도 된다는 의견을 내세우는 반면, 좀비 공생 반대론자들은 인간을 먹이로 볼 수도 있는 위험성과 좀비를 악용할 수 있는 사례, 공생의 전례가 없어 어떤 위험성이 있을 지 모른다는 것을 근거로 좀비의 멸종 필요성을 주장했다. 


  홍차는 중도의 입장을 지켰다. 좀비가 여전히 살아있어야만 다연과 그 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테니까. 물론 그 날엔 실망이 커서 도망치느라 바빴지만, 4년의 시간은 당시의 감정을 무뎌지게 했고, 다시 한 번 다연과의 오해를 풀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좀비가 된 다연을 마주하면, 다연의 목이 뜯겨나간 순간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홍차는 온전한 인간인 다연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홍차와 만나던 그녀는 어느날 다니던 약학대학과는 무관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함께 대학원에 진학해 좀비 백신을 연구해보자며 그렸던 미래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그녀를 사랑했기에 홍차는 갑작스레 바꿔버린 그녀의 말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이유를 여러차례 물었지만, "그냥, 생각이 바뀌었어."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 명확한 답변은 없었다.


  홍차는 그 날 답답한 마음에 잘 하지 못하는 술이  턱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들이부었다. 비틀거리며 골목을 지나는데,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녀의 다리를 들어올린 채로 숨을 헐떡이는 한 남자가 있었다. 피부가 하얀 그녀보다도 더 하얀 피부였다. 아니, 하얗다기보다는 창백했다. 그것이었다. 홍차는 속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취기에 헛것을 본 것이라 믿고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녀임이 확실해졌다. 그들 앞에서 먹은 모든 것을 개워냈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채로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질렸다는 표정을 하고서는 홍차에게 그녀의 이상성욕을 고백했다. 홍차와의 잠자리는 흥미가 떨어진 지 오래라며, 좀비가 아니면 더이상 관계를 하면서 즐길 수 없게 되었다고. 그래서 더이상 좀비 백신을 연구하고 싶지 않아졌다고.


   그 일 이후 홍차의 목표는 정말이지 좀비 그 자체가 됐다. 좀비를 반드시 세상에서 없애겠다며 이를 부득대며 갈았다. 몇 년 뒤, 홍차는 좀비를 혐오하는, 좀비백신 연구원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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