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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rn 민주 Jul 25. 2023

상상을 말로 하면 우주가 돕는다


깜빡이도 안 켜고 갑자기 앞으로 끼어드는 차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실 엄청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운전석에만 앉으면 입이 험해진다.

“저 새끼 미친 거 아냐?” 하며 열을 내는 나에게 다연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똥 마려운가 보네~”

그 말 한마디에 나의 열은 한순간 식다 못해 푸하하 하고 웃음이 터졌다.

언니의 그 한마디는 방금까지 나를 열받게 한 운전자를 이해하고 짠한 마음까지 갖게 했다.

내가 서른 살에 언니를 만났으니 벌써 20년을 넘게 보며 살고 있다.

20년의 세월은 신기하게 나만 요동을 치며 달려왔고 언니는 늘 내 시각에선 평화로워 보였다.

내가 서른여섯 때 사업을 한다며 중국으로 갈 때 모두가 걱정해도 언니는 멋지다며 응원을 해줬었다

내가 서른아홉에 모든 걸 잃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언니는 매일 나와 함께 걸어줬었다.

이혼을 할 때도 잘했다고 박수를 쳐줬고, 암 진단을 받고 무너지는 나에게 몇 번이고 달려와 줬었다.

내 인생은 힘쓸 일이 많았었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언니는 내 앞에 장벽이 가볍게 느껴지도록 힘을 주었다.


혼자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고 겁나는 상황도
언니와 이야기하다 보면 별일 아닌 것처럼 다가왔다.

그럼 진짜 가슴속에 뜨거운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 움츠렸던 몸이 펴지기도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다면 내가 현재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 다섯 명을 추려서 그들의 평균을 내보면 된다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떠올랐던 게 나는 다연 언니를 포함해 너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다.

살면서 넘어진 적도 많고 그때마다 힘쓸 일도 많았지만, 주변에 나를 소리 없이 지탱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잘될 때 시샘하는 사람도 있고, 넘어졌을 때 뒤에서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나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중국 사업이 망해서 돌아왔을 때 갚아야 할 돈은 산더미였고 자존심에 지인들에게 한국에 돌아왔다는 연락도 못 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아무 자신도 없었다. 그때 언니는 거의 매일같이 체력이 바닥이었던 나를 데리고 성북동 둘레길을 함께 걸어줬었다.

어떤 날은 힘에 부치는 나에게 지팡이를 쥐여줬고 산책길 정상에선 오이를 꺼내주기도 했었다.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시작될 때라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였다.

성북동에서 삼청동으로 두어 시간씩 걸으며 내내 이야기를 나눴고, 다리가 아플 때쯤 꼭 카페에 들어가 수다를 이어갔다.

그때 언니는 건물주가 될 거라고 했고 나도 1년 안에 빚을 다 갚고 좋은 차를 사겠다며 이야기했었다.

사실 그때의 상황으로는 언니도 나도 실현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었고 그렇게 입 밖으로 나온 말에는 힘이 더해졌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우린 1년 조금 지나서 언니의 건물 옥상에서 내가 다음 달이면 빚을 다 갚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이미 내게는 할부였지만 좋은 차도 있었다.



긍정과 부정은
입 밖으로 나오면서 현실을 지배하는 힘을 만든다.


늘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결국은 잘될 수밖에 없고  부정적인 말이 앞서는 사람에겐 상황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게 당연한 것 같다.

우리가 1년여 만에 이룬 기적 같은 소망도 입 밖으로 나오면서 시작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린 지금도 늘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미래를 이야기하며 나의 퇴근길 내내 전화로 입이 아프게 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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