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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rn 민주 Jul 18. 2023

맷집


 험한 욕을 하는 남자 목소리와 무언가 던지는 소리, 우는 소리
 아빠가 맞고 있었다.


어린 날의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다. 그날도 그랬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날씨가 뜨겁고 화창했던 기억으로 보아 여름이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집은 눈부시게 환한 날에도 불을 켜야만 하는 지하에 살았었다.

대문을 지나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험한 욕을 하는 남자 목소리와 무언가 던지는 소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서웠지만 본능적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어떤 아저씨에게 아빠가 맞고 있었다.

엄마와 동생은 말리지도 못하고 울고 있었다.

나는 순간 눈이 뒤집혔다. 현관 앞에 휴지통을 냅다 들어 아저씨를 향해 던지고 다시 집어 들어 내리쳤다.

휴지통에 머리를 맞은 아저씨는 나를 향해 손을 들었지만 차마 초등학생 계집아이를 때리지는 못했다. 나는 계속 욕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대들었다. 그 아저씨는 험한 말을 하며 집을 나갔다.

집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그 안에서 아빠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른에게 대들고 물건을 던진 딸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날 이후에도 아빠는 그 일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나를 빚쟁이한테 당하는 자신을 구한 딸이라며 자랑삼아 이야기하셨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온통 빨간딱지들이 붙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나 잘살았었다.

아빠는 건축업을 하셨고 기사가 운전하는 큰 차를 타고 다니셨다.

엄마가 7남매의 맏딸이라 어린 시절엔 이모나 삼촌들이 항상 우리 집에 함께 살거나 머물거나 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복작복작 행복했었다.


그날도 하굣길에 쭈쭈바를 사서 먹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얼마 전부터 온통 빨간딱지들이 붙어있었지만 그날 빨간딱지의 의미를 알았던 거 같다. 들어내는 피아노를 보며 언니와 엄마가 울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어린 시절은 하루아침에 캄캄한 지하로 들어가 어두워졌다.

아빠의 사업이 망했다. 그것도 완전 폭삭 망했다.

우리는 지하에서 지하로 이사 다니며 내가 고등학생이 돼서야 간신히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3년 내내 나의 방황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매일 엄마는 빚 독촉에 시달렸고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아빠는 경제사범으로 교도소까지 갔었다.

빚쟁이들을 피해 여관에서 잠을 잔 적도 있었고 집에만 있던 엄마는 애들 넷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식당으로 일을 다녔다.

착했던 언니랑 동생들은 철이 일찍 들어 엄마 속을 안 이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말도 잘 들었다.

하지만 나는 반대였다. 엄마한테 돈 달라고 악을 쓰며 받아냈다. 집에 들어가면 말을 안 하거나 소리를 질러댔다

잘 사는 친구와 비교하며 점점 더 삐뚤어지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나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은 사실 나만 불행했던 게 아니었다. 심하게 방황하는 나로 인해 가족들도 분명 힘들고 불행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엄마는 늘 나의 눈치를 보느라 더 힘들어했 딸 넷이 모두 한방에서 자다 보니 언니와 동생들도 고슴도치처럼 세운 나의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고 조심했다.

아빠의 사업은 그 뒤로도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내렸지만, 전처럼 치고 올라가진 못했다.

타고나기를 초 긍정적이고 사업으로 늘 한 방을 노리는 아빠 옆에서 엄마는 늘 생활비와 딸들의 학비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었다.

그래도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고 과외까지 하여 생활비를 보태는 언니 덕에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다.

불행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빛이 안 들어오는 지층 집

외부로 나가야 하는 화장실

음식을 하는 곳과 씻는 곳이 같은 공간인 집에서 나는 성장했다.

아빠의 사업이 잘돼 조금 숨 쉴만했다가도 다시 무너지기를 수차례를 반복했었다.

그때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이 불행했던 게 맞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시간임은 확실하다.

남들이 보는 현재의 나는 매우 단단하고 그래도 성공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아빠를 닮아 긍정적이고 엄마를 닮아 참고 인내하는 걸 남들보다 잘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아빠 사업으로 정신없이 탔던 롤러코스터 덕으로 나는 큰일 앞에 담담하고,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내공을 키울 수 있었다.

3년 전 림프암 4기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 앞에 담담할 수 있었고 매우 긍정적으로 묵묵히 치료를 끝낼 수 있었던 것도 어릴 때부터 키워온 맷집 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불행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란 걸 나는 이미 조기교육을 통해 배웠기에 지금은 그 시간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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