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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rn 민주 Apr 12. 2023

마음은 늙지를 않는다.

보름달이 뜰 때마다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던 적이 있다.
어림잡아 5년 정도는 그랬었던 것 같다.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간절히 원했던 건 그 사람과의 결혼이었다.


난 학창 시절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하게 모범생인 언니와 아주 착한 여동생 둘이 있었던 난 공부보다는 노는 게 좋았다. 우리 집 딸들을 기준으로 보면 평균을 한참 떨어뜨리는 문제아였다. 고2 겨울 방학 때는 옷을 사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신촌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그를 처음 만났다. 키가 크고 금성무를 닮은 그는 멋진 차까지 가지고 다녔다.


30년 전 내 눈에 운전하는 금성무는 지금까지 봐왔던 고딩들과는 끕이 달랐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눈동자가 방향을 잃고 마음과 함께 요동을 쳤다. 나에게 마음이 있던 그의 친구 덕에 두 번 정도 술자리를 가졌지만, 겨울방학이 끝날 때쯤 호프집 알바와 함께 나의 금성무도 끝이 났다.

그때는 핸드폰은 물론 삐삐도 없을 때다. 전화번호를 물어오면 집 번호를 줄 수밖에 없던 시절이라 고등학생인 내가 집 번호를 가르쳐 주면... 낮에 나를 찾는 남자한테 엄마는 학교 갔다 할 테니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를 한겨울의 설레는 기억으로 남기고 3학년이 되었다. 나는 반 친구들에게 이야기 할머니가 되어 금성무와의 짧은 로맨스를 영웅담처럼 풀어놨었다. 그때 우리는 하이틴 로맨스 같은 책을 보며 사랑을 읽고 설레던 때라 책을 덮고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내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로맨스라 해도 손도 잡아보지 못한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관객들을 위해 약간의 손 스킨십 정도는 그려 넣었다.


그렇게 1학기를 보내고 고3 여름방학. 나는 엄마한테 친구네 시골집에 놀러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난생처음 친구 둘과 경포대로 놀러 갔다.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숙박집 호객이 시작됐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방을 전부 보고 예약하지만 그땐 그런 게 있지도 않았기에 고등학생인 우리에겐 모든 게 모험이었다.


돈이 많지 않던 우린 당시에 살림집을 민박으로 준다는 아주머니를 따라 아주 오래된 열 평 남짓한 연립주택 하나를 독채로 빌렸다. 허름해도 좋았고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게 더 좋았다. 짐을 풀고 들떠서 바다를 보러 나갔다. 숙소에서 바닷가까지 가는 길은 코로는 바다 냄새가 나고 땅은 펄펄 끓고 있었다. 양쪽으로 여름용품을 파는 가게들과 횟집에서는 적극적인 호객에 정신이 없었다.




믿기지 않은 일이 일어난 건 그 길 중간쯤 가고 있을 때였다.


고2 겨울방학에 신촌에서 봤던 그 멋진 차가 우리 옆에 섰다. 운전석에는 나의 소설 속 금성무가 있었고 조수석엔 금성무에게 빠지지 않는 친구도 있었다.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그 뒤로도 말도 안 되는 우연들이 우리를 서로의 앞에 데려다 놓았으니 운명이라 믿을 수밖에... 무튼 그렇게 우린 여행지에서 운명 같은 우연으로 남자 셋 여자 셋이 되어 2박 3일을 그야말로 신나게 놀았다. 살면서 그 어떤 여행을 다녀도 그때만큼 순수하고 신나는 여행은 다신 없었다. 나이를 속였던 터라 우리가 학생인지 몰랐던 그들은 우리를 술집으로도 데리고 갔지만 질척이거나 매너 없이 들이대는 일도 없었다.


내가 고등학생인 걸 들킨 건 3개월쯤 뒤 가방에서 고3 교과서가 떨어지고 나서였다.

무튼 살짝은 두려웠던 우리들의 첫 여행에 그들은 세상 듬직한 오빠들이 돼줬다. 그래서인지 내 친구와 조수석의 금성무 뺨치는 그의 친구는 서울로 올라온 후 부러운 커플이 되었다. 둘 덕분에 나도 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나를 마음에 둔 그의 친구가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에게는 사귄 지 5개월 된 무용과 여자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끌림은 어쩔 수 없었고 하늘은 나의 편이었는지 그는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여름밤의 꿈으로 끝날 것 같았던 나의 로맨스는 사랑으로 피어났고 그렇게 우리는 12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그 시간 속에 수차례의 이별과 그 이별만큼의 운명 같은 우연한 만남도 있었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그 사람과의 사랑을 빼면 무엇이 남지?'란 생각이 들 만큼 내 인생이 온통 그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갔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그렇게 가장 빛나는 시간을 함께 오면서 많이 행복했고 울 일도 많았었다.

이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시간들.. 나보다 이 사람의 시간이 더 소중했던 시간들을 함께했지만 연애가 길어지면서 결혼은 불안해졌다. 난 이 사람 아니면 결혼도 없고 내 인생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알람을 맞추고 달에게 소원을 빌기 시작했고, 5년쯤 뒤 난 금성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결혼만이 그 사람과의 완성이란 생각을 했고 결혼만 하면 무조건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10년을 넘게 연애할 땐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결혼 후 보이고 들리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렇게 드러나는 현실은 내 인생 최고의 결실, 사랑을 자꾸 걸어 넘어뜨렸다.


결혼은 지구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것만큼 힘들다더니... 사랑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선보고 결혼해서 큰 사랑 없이도 잘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진짜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결혼하지 말란 말도 맞는 거 같았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노래도 있는데 무너지는 현실 앞에 사랑은 한없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결혼 10년 만에 5년을 간절히 빌어서 결혼한 남자와 이혼을 했다.


처음엔 '우리가 진짜 사랑한 건 맞았을까?'라는 생각도 들 만큼 혼란스러웠지만 이혼으로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진 않았다. 내 사랑에 충실했고 바닥까지 다 보여주고 헤어지는 그런 이별이 아님에 감사했다. '내가 또다시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해도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라며 나 혼자만의 다짐도 했었지만 이혼 후 10년이란 시간 동안 나이는 먹었지만 마음은 나이만큼 늙지가 않는다.

그래서 난 지금도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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