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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rn 민주 Apr 12. 2023

소띠.. 5월생입니다

'노동'

난 소띠로 음력 5월에 태어났다.


점을 한창 보고 다닐 때가 있었다. 그때 사주를 보시는 분이나 신점을 보시는 분이 소가 음력 5월에 태어났으니 일복은 타고났다 했다. 웃기는 건 소가 집안에서는 일을 안 해서인지 난 이 나이까지 집안일은 할 줄도 모르고 해 본 적도 없이 살아왔다. 흔한 말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아온 인생이다. 곱게 자라거나 부유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살아온 환경이 그렇게 흘러왔다. 진짜 팔자는 있는 건지 난 그분들 말처럼 밖에서 일복 하나는 넘쳐났다.


20대부터 영업을 고 남다른 승부욕과 타고난 근성 덕에 난 늘 일에서 만큼은 주목받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일에 대한 욕심도 많았고 또 지극히 물질 지상주의자인 나는 일에 대한 열정이 남들보다 많았다. 매일 새벽에 나가 일을 준비하고 밥 챙겨 먹을 시간에 조금 더 움직이기 바빴고, 늘 차로 움직이다 보니 잠자는 시간보다 운전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돈 버는 것도 좋았지만 인정받고 남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걸 즐겼다. 영업조직은 매출이 벼슬이고 힘이다. 경력이나 조직 안에서의 태도 따위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항상 순위가 매겨지고 숫자로 하루를 시작하는 곳이다. 매일 마감하고 주마다, 월마다 마감을 한다. 그렇게 수 없는 마감에 마감을 하다 보면 정신없이 한 해가 지나간다. 그렇게 나는 20년을 넘게 내 몸을 갈아가며 일을 했었다.


일을 잘하다 보니 여기저기 강의도 많이 했고, 관종 끼가 있는 건지 아무리 바빠도 강의하는 걸 좋아했다. 주로 이제 영업을 시작하는 신입들 대상으로 강의할 때가 많았는데 난 그때 참으로 뻔뻔하게 내가 정답인 양 떠들어댔었다. '영업하고 처음 1년은 잠도 자지 말고 밥도 굶어가며 일해라. 인생에 1년 정도는 내일을 위해 깡그리 갈아 넣어도 되지 않느냐' '영업만큼 정직한 건 없다. 뿌린 대로 거둔다'... 이런 말들을 쏟아내며 내가 일하는 방식을 아낌없이 준다는 우쭐함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깔아준 멍석에서 칼춤을 춘 것이다. 그 칼에 내가 다치고 또 다른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다란 생각은 못 했었다.



스스로 쉼을 주지 않아서였을까?


20년을 넘게 그렇게 쉼 없이 남들보다 빠르게 흘렀던 나의 시간은 2020년 5월에 강제로 멈춰졌다.

다친 적도 없는데 갈비뼈가 부러졌다. 정형외과 의사는 피로골절이라며 너무 몸을 혹사시키고 일하다 보면 여자들은 갈비뼈가 얇아서 잘 부러지기도 한다고 했다. 더욱이 골프를 자주 치니 드문 일이 아니라며 일 좀 줄이고 쉬면 갈비뼈는 절로 붙는다 했다. 하지만 나의 갈비뼈는 그걸 시작으로 두 달 사이 5개까지 절로 부러지고 금이갔다.


지금 생각하면 무식해도 어쩜 그리 무식했을까 싶지만 뼈가 부러진 후 통증 외에는 다른 증상이 있었다거나 이상신호도 없었다.

무엇보다 정형외과를 세 군데나 갔지만 다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 달 이상을 복대를 하고 운전을 하며 적지 않은 일정들을 소화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바닥에 떨어진 볼펜을 주우려고 구부리는데 내 귀에 들렸던 건지 몸으로 느꼈던 건지 날개 아래 뼈가 부러지는 걸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무언가 내게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느꼈다.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으니 날개 아래 정확하게 새로운 골절이 발견됐지만 의사는 또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내가 요청하여 정밀 CT를 찍었고 당황한 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다음날 대학병원으로 갔다.

그렇게 또 3주간의 수없이 반복되는 검사들의 결과로 

 난 림프암 4기라는 진단을 받고 뼈까지 전이된 암세포들로 갈비뼈가 6개나 부러진 혈액암 환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시간은
1년에 4만 킬로씩 달렸던 나의 차와 함께 멈춰 버렸다.


영업은 육체적인 노동보단 감정노동이라 하지만 사실 영업을 잘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육체적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농사처럼 내가 활동한 만큼 대가가 주워지는 일이다 보니 어디까지, 언제까지가 없는 일이고 또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감정노동 또한 쉼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몸이 힘든지 자각하지 못했고 2년 전부터 대상포진과 요로결석으로 응급실을 몇 번을 실려갔지만 그것이 경고라고도 느끼질 못했다.

강제적인 멈춤을 당하고 난 뒤 비로소 나는 많은 걸 느끼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의 나는 아프기 전과는 다른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같은 영업을 하고 같은 대상으로 강의를 하지만 나를 아끼는 활동을 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라는 헛소리가 아닌 오늘을 제대로 잘 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야 행복한 노동을 오래 할 수 있다고...


암 진단 그것도 4기란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든 생각은 '일만 하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만약 같은 소리를 듣는다 해도 그때처럼 억울하진 않을 거 같다. 일을 하고 그 일에서 크고 작은 성공을 하는 성취욕이 사람에게 큰 행복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또 많은 행복의 종류 중에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행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를 지키지 못하는 행복은 의미가 없고 오늘이 없는 내일만을 위한 노동 또한 의미가 없다는 걸 난 독하디 독한 여덟 번의 항암을 통해 깨달았다. 일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내가 선택하고 내가 핸들링할 수 있다면 그건 노동이라기보단 매우 특별한  행복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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