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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rn 민주 Apr 12. 2023

굵고 짧았던 중독의 시간


짚으로 만든 가마니를 뒤집어쓰고 흙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앉으무당은 팥인지 무엇인가나를 향해 매우 세게 한참을 내리쳤다. 30분을 넘게 굿판을 벌인후 그렇게 산바닥에 앉아 무언가 실컷 얻어맞고 나니 끝이 났다. 자궁각임신으로 네다섯 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다.




축복받지 못한 임신


부모가 된다는 게 덜컥 겁이 났던 남편은 나의 임신 소식에 기쁨보단 두려워했고, 그런 아들이 안쓰럽던 시어머니는 말씀이 아닌 분위기로 아이를 지우기를 바라셨다. 입덧이 심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괴로움보다 처녀가 임신을 한 것도 아닌데 눈치를 봐야 하는 숨 막히는 공기가 나를 바닥으로 꺼지게 했다.


결국 아이를 지우기로 결정하고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병원을 갔다. 중절수술을 위해 검사를 하던 의사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변했다. 아기가 자궁벽으로 올라와 있고 이미 너무 얇아진 자궁벽을 뚫고 올라오면 큰일 나니 오늘 밤에라도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주에 혼자 병원에 왔을 때까지도 가운데 잘 자리 잡고 있었는데, 자기를 반기는 사람이 없다는 걸 나의 한숨을 통해 전달되었다 생각하니 벌을 받는 거 같았다. 


다음날 수술을 앞두고, 큰 수술에 겁이 나기도 했지만 자궁을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겁이 나 울고 있는 내게 시어머니는 남편이 나를 살린 거라며 평생 은인으로 알고 살라고 하셨다. 그날 그렇게 병원을 안 왔으면 자궁파열로 응급차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는 소리였다.


다행히 아이가 없었 나를 생각해서 의사 선생님은 자궁은 살려주셨지만 시댁 연줄로 급하게 갔던 병원이다 보니 담당의는 내가 아닌 시어머니께 앞으로 임신은 힘들거라 했다한다.나는 시어머니의 그 말만 믿고 다른 병원에 가서 알아볼 생각도 못 한 채 세상 찌질한 모질이가 되어갔다.

몇년후 알았지만 난 임신이 불가능한게 아니었었다.

하지만 내게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따져 묻진 못했었다.



모질이가 되가다


남편이 아이를 지우려 했던 사실은 없어졌고 비정상적인 임신으로 아이를 못 낳게 되는 현실로 각인되며 점점 나는 작아지다 못해 없어지고 있었다. 수술 후 병원에 8일을 있었고 3일째 밤, 시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원망을 쏟아 셨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지키지 못한 부실한 며느리로 다시 태어났다.


퇴원후 집으로 왔지만 남편은 거의 한 동네나 다름없는 시댁에서 한 달째 들어오지 않았고 시댁에서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때의 나를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한심함의 극치였다. 그때 나에게 제일 가혹하고 못됐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 나를 지키지는 못할망정 타인들과 함께 나를 학대하고 몰아붙였다. 자존심에 친정식구나 친구들한테도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했고 남편에게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도, 시어머니에게 남편을 보내란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려는 용기도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7개의 점집을 찾아다녔고 3번의 굿을 했으니 그야말로 미친년 널뛰듯이 넋이 나가 뭐에 홀린 듯이 미신에 매달렸었다. 아이를 다시 갖기 위해 병원 대신 점집을 찾았고 남편을 집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노력도 못했지만 그 노력을 귀신이라도 대신해 주길 바랐었다.


현실을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없었고 갈등을 풀어낼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게 두렵고 모든 게 찌질했다.

점집에 가서 내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그 시간은 숨이 트였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비법처럼 내려주는 처방은 내게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너무 짧았고 이내 다시 불안하고 조급해져 더 용한 점집을 찾아댔다. 돼지를 통으로 올리는 굿판부터 집에 액을 빼내야 한다며 무당이 직접 우리 집으로 출장까지 왔으니 한 달 동안 넋이 나가 뿌린 돈이 수천이었다.




굴고 짧았던 중독의 시간


그때는 그런 곳이라도 안 찾고는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고 불안해서 잠도 못 잤었다. 누구는 그때의 나를 보면 미쳤다고 할 수도 있고 한심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래도 그 시간을 거기에라도 풀어내고 의지했기에 지나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독이란 사전적 의미를 보면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나온다.

그 시간의 나한테 정말 딱 맞는 말이다.


그래도 끝없이 미련하진 않아서 비교적 짧고 굵게 나의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 시간 또한 후회하진 않는다. 살면서 답이 없고 세상에 나 혼자인 거 같을 때 나쁜 생각을 하는 것보단 그래도 어딘가 풀고 의지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한 일이었다. 지나와 생각해 보면 굿해서 해결된 것도 없고 거기서 해준 말대로 된 것도 거의 없지만 그 와중에 신기한 경험도 있었기에 매년 연초가 되면 나는 꼭 점집을 예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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