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장을 정리하다보면, 약을 타갈 때가 되었는데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된다. 특히 70세 이상의 노인 환자의 경우 이렇게 몇 달을 오지 않으면... 그 끝은 사망인 경우가 대부분임을 깨닫는다. 차라리 이사를 간 환자라면 다행이지만, 돌아가셔서 더 이상 오지 않는 걸 알게 되면... 참 여러가지로 마음이 씁쓸하다.
몇 년 전 할머니 한분이 약국에 오셔서 참 많이도 힘들게 했다. 본인이 받는 약은 특별한 약이라 절대 아무 약국에서나 조제할 수 없다며, 굳이 오시는 분이였다. 혈압 조절하는 약과 고지혈증 치료제, 그리고 치매 관련한 약들이 조합된 그런 처방전이었다. 뭐 그리 특별한 약은 아니었지만, 병원에서 할머니가 약을 제대로 복용하도록 하기 위한 말에, 특별한 약이라고 믿었던 할머니는 그나마 그 약을 꼬박꼬박 복용했다.
어쩌다 그 할머니가 우리 약국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자식들이 우리 약국에서 조제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어느 자식도 할머니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 같다. 유난히도 시집살이를 심하게 시켰던 탓에, 그 어떤 며느리도 같이 사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 약국에 와서도 유별나게 사람을 참 많이 괴롭히던 할머니였다.
이건 이 약이 아니자나, 다시 지어와!
매번 똑같은 약을 조제하는데, 매번 아니라 하는 할머니를 보니 참 많이도 답답했다. 치매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데, 이 할머니는 점점 난폭하고, 의심이 심해졌으며... 욕도 참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자기 같이 순하고 착한 할매는 없을 거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약국에 오는 날마다 전쟁터를 만들어놓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저 할머니가 다시 이 약국에 오지 않기를 바란 적도 여러번이다. 치매 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지옥과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잠깐도 힘든데 하루 종일 있으려면 얼마나 힘든 걸까? 간병하다가 간병하는 사람이 먼저 간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할머니가 더 이상 약국에 오지 않음을 깨달은 건... 할머니의 마지막 방문 후 2달 반 정도 흘러서였다. 아마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이 할머니가 없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는지도. 큰 아들에게 연락을 해 보니, 치매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한 요양병원으로 모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통화를 하고 난 후 한달... 그 할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가 버렸다.
그렇게 일년에 몇 명씩 더 이상 볼 수 없는 환자들이 생긴다. 그리고 더 이상 오지 않는 환자들을 기다리는 약들을 정리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홀로 남겨진 삶을 감당해야 하는 노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니, 간병인이 있어도 거의 거동을 할 수 없는 채 수년간 약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그 기간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약국에 덩그러니 남아 더 이상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약이 더없이 쓸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