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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an 02. 2023

단 30분,광안리에서 혼자보낸 밤이 내게 준 힘

힘든 하루 끝,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광안리의 밤

"아우,얘진짜 왜이래"

오늘 하루. 내입에서 수백번도 더 나온 말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삼일내내 꿀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둘째 손녀딸을 바라본 외할머니입에서 헤어지기 한시간전

"우리 손녀 좀 맞아야겠네"라는 말이 떨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집 둘째딸은 요즘 욕나온다는 십팔개월의 존재를 강하게 내뿜고 있는 중이다. 마음대로 안되면 냅다 바닥에 드러눕기, 어떤 회유의 말에도 고개 절레절레 시전, 화나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데시벨로 울어버리기..

통제가 어려운 밖에선 그 강도가 더욱 심해진다.

 거기다 내 껌딱지가 되어 고목나무의 매미붙듯 찰싹 붙어 기장의 바다뷰 핫플카페에서도 독사진을 한장도 못건졌더랬다.

 그런 둘째에 비해 양반이지만 사사건건 짜증불만요구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며 정신적으로 고되게 한 우리집 첫째 아들. 두 남매의 육체적 정신적 괴롭힘의 콜라보로 녹초가 된 채 호텔로 겨우 몸을 안착시켰다.

 그때 호텔 통창을 통해 한눈에 쏟아져들어오는 광안리드넓은 바다. 1년만에 재회한 광안리의 밤야경에 바닥난 체력이 일순 1프로정도 충전이 되는 듯했다. 객실로 들어가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8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혼자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남편에게 "나 좀 걷고 올게" 한마디를 던지고선 잠옷원피스 밑에 스타킹을 올려신고, 롱패딩으로 누추함을 한번에 무장한채 밖을 나섰다. 아무리 숏패딩이 유행이라지만(사실 오기전 아울렛에서 살까말까 고민한건 안비밀) 롱패딩만큼 편하고 따수운게 없다.

 덜 말린 머리칼,채 가려지지 못한 롱패딩 아래로 슬쩍 보이는 꽃무늬 잠옷 밑단을 애써 감추며 길건너 광안리바다로 뛰어갔다. 그런 모습따위 신경쓰이지 않을정도로 행복감이 솟구쳐 올랐다. 확트인 바다광경.광안대교의 휘황한 불빛.나를 향해 다가오는 잔잔한 파도. 깊은 숨을 후 내쉬는 순간 숨에 딸린 피로감도 그 파도가 낚아채간 듯 후련해졌다.

 광안대교의 야경을 놓칠세라 빠른 손놀림으로 셔터를 눌러 사진첩에 가득 담고 골목 구석구석을 돌았다. 작은 기념품가게를 1분안에 스캔하고, 빵순이답게 빵집 두곳을 들러 파이하나를 손에 집고 한입먹으며 예쁜 조명의 가게들도 재빨리 눈으로 훑고 들어왔다. 골목가게마다 술마시며 화기애애한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바닷가에서 사진찍는 사람들을 보며 외로움이 살짝쿵 올라왔지만 지금 이순간 그 외로움도 사치일뿐.

 생각해보면 외로움을 사치로 느끼는 이유도, 저 호텔방에서 투닥하고 있을 두 남매와 남편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 순간이,온몸의 촉수로 흡수하고 싶을 만큼 값지다. 8시간가까이 사투한 힘든 시간도 지금의 30분으로 달콤하게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역시 정신없이 시달린 하루엔 혼자만의 시간이 5분이라도 있어야 하며 그것이 숨통이 되어 힘을 내게 한다.

돌아가는 길엔, 우연히 마주한 새해소원쪽지에 우리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글귀를 힘주어 꼭꼭 눌러쓰고 다시 호텔방으로..50프로 정도 충전되었으니 이 기력으로 남은 날동안 가족들과 쓰고 단 추억 잘 만들고 잘버티다 올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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