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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an 05. 2023

십일간의 아이들 방학이 내게 준 깨달음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순간이 모두 빛이었다.

 십년같던 십일간의 방학이 끝나고 두아이가 드디어 등원을 했다. 조금 극단적이나 방학기간은 마치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같았다.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은 보이는 데 도무지 내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여정..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려면 그것을 정면 응시하고, 내 몸이 그것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빛을 움켜쥘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방학이라는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고군분투해서 버텨야만 등원이라는 빛을 움켜질 수 있다는 것.


 이번 방학은 10일중 7일은 밖에 나와있었다. 키즈카페,온양온천랜드,친정,동성로스파크랜드,부산에 이르는 긴여정. 방학 중 첫째아이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언제 도착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엄마 이거 사줘" 였고, 말못하는 둘째는 울기,떼부림,징징거림으로 감정표현을 대신했다.


 우리는 그들을 때론 달래고,때론 다그치며 일정을 겨우 소화해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부산에 도착했을 땐 설렘보다 막막함이 앞섰다. 그 전 일정들에 이미 체력이 소진되었기 때문.


"힘든데 왜 그렇게 무리해서 나가?"라고 누가 질문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집에 있으면 1분이 1년같으니까" 이유인즉슨 어지르고 치우고 반복, 심심하다 징징거림, 하루종일 틀어져있는 티비에 층간소음까지..생각만 해도 고개가 저어진다. 그나마 나와있으면 힘들긴해도 시간은 순삭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체력을 맞바꾸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바다보며 폴짝 뛰며 꾸밈없이 좋아하는 표현을 맘껏 내는 둘째,꽤 먼길을 걸어가는 길에 힘들다고 투덜대도 끝까지 걸어가는 첫째가 기특한 순간이 있었다. 한번은 카페를 가는 길에,첫째가"얼마나 가야해? 다리아파 못가겠어"라고 한 투덜거림에

"빨리 도착하려면 힘들어도 버티며 니 발로 걸어가야만 해, 힘들다고 징징대기만 하면 영영거기로 갈 수 없단다"


 첫째에게 한 말이지만 나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여행이 고되고 힘들지만 징징거림으로 힘을 빼는 대신, 그 힘을 내 발에 실어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만 원하는 곳에 도착해서 쉴 수 있다는 것.

 아이들때문에 힘들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어리고 나약한 그들도 빡센 일정을 소화하느라 쉽지 않았을 것. 그정도의 투정과 울음정도라 다행인건가 생각이든다.


 서로 부대끼며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짜증이 뒤섞인 한숨을 쉬기도 했지만 넷이 한 배를 타고 이 여정을 소화해 낸 기쁨도 크다. 해변열차를 타고 눈이 휘둥그레지던 둘째의 옆얼굴, 바다에 도착해 드넓은 해안을 보며 마구 뛰어가던 첫째의 신난 뒷모습. 잊지못할 추억들로 가슴 한켠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힘들어도 걸어가야만 힘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30분 정도거리를 잘 걸음)과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첫째(아쿠아리움에서 3만원 짜리 상어인형, 편의점에서 2만원짜리 공룡초코렛 포기)가 많은 것을 깨달은 여행이었기를 바래본다.

 

 또 방학이 아니었다면 네가족이 살을 부대낄 일이 크게 없었을 것. 그러면서 온갖 감정들을 드러내고 받으며 그 속에서 맞추고 견디어내며더 단단해졌다고나 할까? 그 속에 있을 땐 너무도 힘겨웠던 시간이지만 거기서 빠져나오는 순간.

그 시간들이 찬란한 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빠져나오고 보니 순간순간이 빛이었다. 방학 첫 시작순간에 저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빛은 바로 우리가 함께한 순간순간에 있었음을. 그것이 힘든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빛은 빛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혼자있는 시간도 너무 소중하지만 아이들과 오롯이 부대끼며 버티어내는 시간도 참 소중한 것 같다. 이제 크면 우리를 찾지도 않을테니 뭐... 길것 같지만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부산여행 중 "이모,나이들면 낙이 뭐예요? 라는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팔순을 이년정도 앞둔 이모의 대답이 새삼 떠오른다.

"도시락 하루에 네개씩 쌌어도 지나고 보니 애들 키울때가 좋았다"

 그래, 지금은 어둠같은 육아의 터널속에 머물러 있어 모르지만 나도 이모 나이가 되면 저런 답을 누군가에게 내놓겠지? 라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너희들과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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