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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n 30. 2024

내 마음에게도 해우소가 필요하다.

도서관 그림책 테라피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며

 작년에 이어 다시 돌아온 도서관 문화행사, 도서관 그림책 테라피 수업이 시작된 어제. 토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 신청을 할까 많이 망설였지만 내 마음은 이미 신청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두 아이를 둔 내게 토요일 수업참여는 그에 따른 자잘한 수고로움이 뒤따른다. 아이들 아침, 두 아이 뒤치다꺼리에 고생할 남편의 간식거리도 준비해놔야 한다. 그런수고에도 불구 참여하고픈 열망이 그 모든 걸 가뿐하게 해내게 만든다.


 열시 반 전까지 정신없이 아침 일과를 마무리하고, 썬크림만 겨우 바른채 머리칼을 흩날리며 언덕배기에 있는 동네 도서관의 5층 문화교실에 도착.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앉아있다. 나는 재빨리 스캔 후 맨 앞자리 비어있는 한 자리에 무사히 안착했다.


 책상위에 가지런히 놓인 오늘 수업 프린트물과 감성적인 표지의 엽서가 내 마음을 안온하게 만들어주었다. 늘 가르치는 입장에서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 되니 마음이 경건해졌다. 그 수업자료들이 나만을 위해 잘 차려진 티세트처럼 느껴졌달까?


 강사님이 출석을 부른 뒤 본격적인 수업의 막이 올랐다. 모둠원 앞에 사진을 늘어놓으시곤 현재의 상태와 닮은 사진을 고르고 모둠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 순간 우리 반 아이들에 빙의해 눈을 반짝이며 고르고 또 골랐다. 거친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간듯 한 바닷물 위에 자잘하게 떠있는 포말 배경 위 작은 물고기 사진.


 요즘 바쁜 일이 지나고 잠시 휴식기인 나와 비슷해보였다. 하지만 다시 또 파도를 맞아야 하는 물고기. 모둠원들에게 나의 현재마음을 사진에 빗대어 이야기 하다보니 마음이 일순 후련해져왔다. 처음 본 이들에게서 느껴진 따스한 눈동자가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도 그 눈동자를 그대로 내 눈에 담아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었다.


 겉으론 모두 평안해보였지만 속내를 듣다보니 나름의 아픈 사연을 품고 있어서 마음이 얼얼해졌다. 이야기가 오가는 짧은 시간동안 공간의 밀도와 습도가 조금씩 변하는게 느껴졌다.


 그 다음은 그림책을 함께 보며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 표지마저 여름의 초목을 닮은 “다 같은 나무인줄 알았어”라는 책. 강사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공간에 울러퍼지자 모두들 천진한 아이의 눈빛을 하고 동화책에 빠져들었다. 누군가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는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였던가? 어린시절 엄마 무릎에 누워 이야기를 듣던 모습을 아련히 떠올리며 그 순간에 오롯이 빠져들었다.


 그림책 한권을 다 읽은 후 강사님은 “최근 내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내가 몰랐던 의외의 모습에 놀랐던 적이 있나요?“ 두 질문을 차례로 물으셨다. 마치 내 마음에 안부를 물어주는 듯 다정한 목소리에 꽁꽁 닫혀있던 마음의 걸쇠가 스르륵 풀렸다. 모두가 같은 마음인지 나를 비롯한 다른 학인들은 연필을 들어 그 질문이 적힌 종이에 진심을 담아 꼭꼭 적어나갔다.


 최근 내 마음을 들여다본 적은? 글쎄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학교 출근에, 집에서는 육아를 배턴이어받기 하듯 빼곡한 삶에 내 시간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거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서야 내 마음에게 안부를 겨우 물어보는 걸. 갑자기 거울을 들어 내 얼굴을 보고 싶어졌다. 오늘따라 화장을 안해서인지 찬찬히 들여다보니 전에 보이지 않던 기미,주근깨, 늘어난 눈가주름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늘 무심히 보아넘기던 내 얼굴도 자세히 보다보니 달라진 점이 눈에 띄었다.


 내 마음도 거울 속 내 얼굴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을 들여 찬찬히 들여다보니 어 이 마음은 언제 생겼지? 요즘 내가 이런 생각을 자주 했구나! 이번주 날 불안하게 만든 건 뭐였지? 보지 못한 내 마음 속 주름 기미 주근깨들이 하나씩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얼굴을 거울로 투명하게 비춰보며 얼굴에 돋아난 것들을 찬찬히 살피듯 내 마음에 자라난 이마음 저마음을 찬찬히 살피니 오히려 마음 속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들이 하나씩 펼쳐지는 느낌이라 속이 개운해졌다. 예쁜 마음이든 미운 마음이든 다 내것이기에. 나는 그 마음들을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했다.

 마지막 발표시간에 한 학인이 그런 말을 했다. 나는 40년 인생을 살아오며 늘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요즘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치밀어오르고 내가 왜이러지?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며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 많아졌다고.

 그말에 강사님은 “나의 삶에서 찌질한 내 모습, 밑바닥을 치는 내 모습마저도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가는 것이 참다운 인생의 모습이예요.그것들을 인정하고 극복해나가는 것이 인생의 과제입니다”

 

 그 말에 모두들 한 마음이 되어 강사님이 남긴 그 한 마디를 곱씹어보는 듯 했다. 수업이 다 마무리된 후 수업 후기를 묻는 질문에 나는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책을 통해서만 누군가의 인생을 엿보고 배운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는 오늘 이자리에서 20개의 눅진한 단편인생에세이를 생생히 들은 것 같아 마음이 풍족해졌습니다”


 강사님은 단편에세이라는 나의 말을 한 번 더 언급하시며 앞으로 이 자리를 통해 자신과 닮은 타인의 마음을 들으며 자신의 마음 치유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수업 마무리멘트를 하셨다.


 수업에서 쓴 프린트물을 품 속에 소중히 안고수업 후 내리막길을 차박차박 내려가는 데 이상하게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옴을 느꼈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딱 떠오르는  순간. 나는 오늘 마음 해우소에서 묵힌 마음을 가뿐히 비우고 왔다. 다음주가 한결 가뿐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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