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두려운 새학기 첫날. 이런 마음가짐으로 보내는 건 어떨까?
최근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 받다 새학기 첫날 이야기가 나오던 중 나도 모르게 "새학기 첫날 초조하고 두려워."라는 말을 흘린 적이 있다. 친한 지인 한 명이 "아니 선생님들도 그래? 우리 애도 지금 그렇다는데." 라고 놀라며 답을 해온 적이 있다. 그렇다. 개학은 아이들도 두렵지만 선생님도 매 한가지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조금 있으면 새학기 첫날, 내가 가장 두려워마지않는 개학날이다. 벌써 13번째 맞이하는 새학기 첫날이지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다. 아직까지 내 마음 속엔 작년 아이들과 켜켜이 쌓아올린 추억들이 한가득 들어차있는데 그것들을 한 순간에 매몰차게 몰아내고 새로운 아이들을 마음에 담으려니 조금 버거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매년 새로운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맞이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물론 매해 선물처럼 주어지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있지만, 첫 한달간은 아이들의 성향이 어떤 지 살펴야 하고 그 성향에 맞게 지도방식도 달리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학부모님들과 맞닥뜨릴 때 오해도 생겨나는 등 어려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최근 개학을 앞둔 아이와 읽은 그림책 헉 오늘이 그날이래. 에서도 이런 선생님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그림책 말미에 여실히 드러나있다.
“밀려드는 걱정 때문에 끙끙 앓고 있네. 제멋대로 구는 아이들이 걱정일까?, 아니면 이것저것 해 달라는 어른들이 더 걱정일까. “
이 세 문장이 아마 새학기를 앞둔 교사들의 마음을 응축한 정수같은 문장이 아닐까싶다. 다. 곧 있으면 학생 26명에 학부모님 52명 도합 80명에 가까운 새로운 만남이 나를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일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든다.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학교오는 걸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유독 낯가림이 심하고 새학기 울렁증이 있던 나는 개학날이 다가오면 늘 복통에 시달리곤 했는데 사르르 아픈 배를 움켜지고 낯선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면 늘 여유로운 표정으로 맞이하던 담임선생님들. 그분들을 마치 딴 세상 사람 쳐다보듯 신기한 눈길로 쳐다보곤 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들처럼 학교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그 비법을 꼬치꼬치 캐묻고 싶을 정도였다.
수년이 흘러 내가 그 선생님이 되어보니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던 당시의 내 자신에게 피식 웃음이 났다. 개학 첫날, 누구보다 옷장 속에 숨고 싶고 엄살을 부려가며 학교에 안가려 안달복달하는 사람은 바로 선생님이었다는 사실. 그 기밀을 뒤늦게 알고 그제서야 선생님들의 고충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림책 속 선생님처럼 내가 새학기 첫날이 두려운 이유는 바로,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과의 첫대면, 그리고 그 모두를 만족시킬 학급경영을 잘 할 수 있을까 이 두가지다. 한 해 농사를 잘 마치고 다시 밭을 일구어 씨를 뿌리는 농부의 심정이 딱 이럴까? 아무리 밭을 잘 일구어놓고 씨를 골고루 잘 뿌려놓아도 예기치 못한 기상상황과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계획한 대로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할 수도 있으니 늘 마음이 편치는 않을 터.
아마 한해동안 내가 맡아 지도할 아이들도 마찬가지일테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도 마음처럼 안따라주는 아이들도 몇 있을테고.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나의 지도방식에 반기를 들거나 아이를 훈계하는 과정에서 피치못하게 빚어지는 오해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님들도 있을 것. 매해 반복되는 일을 하다보니 앞으로 내가 걸어가는 길에 예상치 못하게 닥쳐올 비바람과 폭풍우가 불보듯 뻔히 그려지기에 새학기를 앞둔 내 마음가짐이 묵직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얼마 전, 기한이 얼마남지 않아 꼭 가야만 하는 기구필라테스 운동을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꾸역꾸역 간 적이 있다. 가기 전 발걸음은 마치 쇳덩이를 올려놓은 것 처럼 무거웠지만 막상 도착해서 긴장으로 굳어진 온몸을 풀어내고 강사님의 안내에 따라 이리저리 근육을 쓰다보니 생각보다 몸이 개운했다. 오기 전에는 그렇게나 온몸이 거부하던 운동을 다 마치고 나서는. 생각보다 괜찮네. 가기 싫은 맘을 꾹 누르고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나온 나 자신 칭찬해. 잘했어.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기 싫은 운동을 가서 온 힘을 다해 집중하고 나와 더 뿌듯했던 기억을 곰곰 더듬으며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학 첫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고. 실체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괜히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기에 그 날이 더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건가 싶다. 개학 첫날이든, 새로운 시작이든 늘 제자리에 머물러있고 싶은 뇌의 관성으로 인해 당연히 그 날이 싫고 두려운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그 관성을 이겨내고 그 하루를 보람차게 잘 보내고 나면 생각보다 괜찮네.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희망의 불씨가 불끈 솟아오르지 않을까?
가기싫은 운동을 다녀와서 그 성취감과 뿌듯함이 극에 달한 것 처럼, 개학 첫날. 무거운 발걸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무거운 발걸음을 교실에 한 발짝 들여놓는 순간. 나를 맞이하는 24개의 밝은 햇살에 발등위에 놓인 무거운 돌들이 어느새 사라져있지 않을까? 두렵고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이겨내고 교실에 발을 들여놓은 만큼 그날 하루를 보내고 난 뒤의 마음은 그 어디에도 비할 바 없이 충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와본다. 학교가 가기 싫어 누군가는 옷장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강아지 집에서 발견되기도 하며 원인 모를 병에 걸린 것 같다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줄줄이 나온다. 나만큼이나 아이들도 새로운 교실환경과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이 교실에 왔다는 사실. 그 사실을 가슴 깊이 인지하고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다는 동질감으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는 의지가 솟아오른다.
그림책을 읽고 나니 여태껏 나의 양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짐이 조금은 덜어진 듯 가벼워졌다. 그리고 개학 첫날 첫 시간 매해 쳇바퀴 돌듯 반복하던 자기 소개와 선생님 소개 시간 이전에 이 활동을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헉 오늘이 그날이래 책을 함께 읽고 개학 첫 날 소감을 나누며 서로의 가슴 속에 눈덩이처럼 부풀린 걱정을 녹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그 과정에서 처음 보는 사이지만 서로의 마음은 닮아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인지하면 한 해의 시작이 좀 더 가뿐하지 않을까?
"빠드린 것 없죠. 걱정 말고 학교 가세요" 그림책 마지막 딸아이가 선생님인 엄마의 등을 떠밀며 말한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아들에게 문득 조언을 구한다. 엄마 새학기 첫날이 두려운 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면 좋을까?
돌아온 아들의 대답.
"엄마 휴가 쓰면 되겠네. 너무 힘들면 쉬엄쉬엄해"
역시 아들의 대답은 명쾌하다.
나는 뾰죽이 입을 내밀며
"엄마가 안가면 학생들이 기다리는데?"
반문하자 다시 돌아온 아들의 답
"엄마 신나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가. 나도 2학년 친구들이랑 선생님 궁금한 마음으로 얼른 학교 가고 싶어"
그래 그거다. 신나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가보자.
새학기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