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탕. 바쁜 당신이 고장난 시계가 되고 싶은 순간?

나사빠진 시계처럼 휴식과 충전은 앞으로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

by 이유미

“엄마는 가끔 고장이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죠

그럴 땐 나사 몇 개를 풀어줘야합니다“



내겐 사라진 저녁이라는 그림책으로 마음 속에 각인된 권정민 작가의 신작 “시계탕 맨 뒷페이지에 나오는 작가의 말 중 일부이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시계처럼 바쁜 나날을 보내는 내게 권정민 작가의 저 말 한 마디가 내 마음 속 어딘가를 툭 건드렸고 오래 진동케했다.


아침마다 두 아이를 등원 등교하며 출근한지도 어언 3년차, 한 번 무언가를 시작하면 열과 성을 다하는 어린시절부터 장착된 특유의 성실함으로 맹세컨데 학교에서도 단 하루하도 힘을 빼고 지낸 적이 없었다.


퇴근해서는 어떤가. 학교에서는 수업에 진을 다 빼느라 자기계발할 시간이 없단 생각에 바쁜 저녁 시간을 조각내어 책을 읽고 브런치나 글쓰기 밴드에서 글 한쪼가리씩이라도 꼭 쓰고, 블로그 일상기록도 틈틈이 해내었다. 운동도 해야한다는 생각에 새벽6시에 일어나 집앞 산도 산책하고 23층 계단도 걸어올라오며 운동할당량도 채웠다. (아차 일주일 한 두번 아이의 단원평가, 받아쓰기 지도도 내 스케쥴에 고정되어 있구나)


주말에는 또 어떤가. 평일에 두 아이들과 온전한 시간을 보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그리고 평일에 즐길 수 없다는 조급함에 놀이동산, 공원, 박물관, 쇼핑몰 등 집에서 한두시간 거리는 너끈하게 다녔다. 피로에 절은 몸으로 어찌저찌 버티다 오면 주말은 쏜살같이 지나가고야 만다.

학교에서 내가 맡은 업무도 여러개. 주중 2회는 영어부진아를 위한 지도로 두어시간을 헌납하고, 토요일 오전엔 영재수업으로 네시간을 고스란히 바치고 돌아오기도 하는 등 내게 시간은 분초를 다투는 무언가처럼 허투루 쓰지 않아야 할 무언가로 내 양어깨를 압박해오고 있다.


이런 나의 매일 하루는 조금 과장하면 수능을 앞둔 수험생같달까. 매 분 매 초 시간을 그저 허망히 흘려보내는 것이 내겐 용인되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 아침에 동료선생님들 아침간식으로 드릴 군고구마를 구워 간적이 있었는데 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어쩜 그리 부지런해 아침에 눈뜨기도 버거운 시간인데. 대단하다 정말. 이건 시간을 잘개 조각내어 써야만 가능한 일이거늘”


정말 그랬다. 나는 시간을 잘게 잘게 조각내어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자주 듣는 말은 ”늘 바빠보인다. 하루에 숨쉴틈은 있어? 주말마다 나가는 거 안피곤해?. 너랑 만나려 약속 잡을래도 왠지 시간 없을 것 같아 망설이게 돼“


예전같았으면 내 생활에 폭 빠져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랐을텐데 최근 내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늘 규칙적이던 그 날이 갑자기 멈춘 것. 몸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아선지 늘 피로감에 휩싸이고 마음은 초조하고 평소와 다르게 무기력한 나날이 반복되었다. 새벽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무서운 병을 검색하다 날을 새기도 하고, 산부인과 병원을 몇 번이나 전전하며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었다.


나는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는데,시간을 알차게 쓰며 성취감을 느끼는 하루를 만족하며 지냈는데 내 몸은 아니었나보다. 남들보다 1.5배는 빨리 돌아가는 시계와 같은 하루를 살며 중간중간 초시계가 삐걱거리며 경고신호를 보냈지만 가뿐히 무시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초시계에 이어 분시계가 멈추었을 때 비로소 나는 경각심을 느꼈다.


“좀 쉬자 제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억눌려 기를 펴지 못한 저 말이 이제서야 바깥으로 솟구쳐나왔다. 생리가 멈춘 이유도, 갑상선 저하가 온 이유도 바로 제대로 쉬지 못함이었다는 것. 나빼고 누구나 아는 사실을 이제서야 나는 깨닫는다.


돌아보면 나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늘 힘을 빼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같다. 가끔은 대충 해도 되는 데 나는 그 대충이라는 것이 용인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늘 가끔은 대충하자 좀 쉬어가자 속으로는 알면서도 하루 아침에 사람이 변할 수 없는 노릇.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각 한 번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아 초등 6년 개근상을 타고야 말았던 아이가 성인으로 컸으니 단 번에 고치기는 힘들터.


하지만 내 삶의 정수인 건강시계가 고장나기 시작하니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러다간 학교일도 육아도 다 놓게 될 더 무서운 위기가 닥칠까 새벽운동을 그만두고 잠을 더 자려 노력했고, 학교에서도 가끔 이완하며 한 템포 늦춘 수업을 중간중간 넣고, 집에서는 저녁을 먹고 진짜 내가 원하는 책(그와중에 책은 놓지 못했다)일부만 좀 읽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매일 하던 블로그 일상기록은 가끔으로 줄이고, 브런치 글쓰기도 연재일은 못 맞추지만 내 컨디션이 좋을 때 쓰기로 마음 먹었다.


어제는 오전에 네시간 학교에서 토요영재수업을 하고 돌아와 기꺼이 낮잠까지 청했다.(낮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만 생각했던 사람이라 큰 결심이 필요했다). 남편에게 어디갈까 바로 재촉해 근처 산책이나 카페라도 갔을 성미지만 마음 속에 멈춰있는 건강시계를 생각하니 그 마음이 일순 날아가버렸다.


두 시간이 지났을까?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개안한듯 세상이 밝아보였다. 늘 희미한 장막처럼 나를 감싸던 피로가 한 겹 걷어내진 기분이었다. 이제서야 절감하는 사실. 주말엔 책에 나온 작가의 말처럼 나사 몇개를 풀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쉴틈없이 돌아가는 시계도 어쩌면 매일 삐걱대며 간신히 초침분침시침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시간을 조각내어 쓰며 몸이 고장나는 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온 것 처럼. 시간이란 그렇게 써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시계바늘을 쉴새없이 움직여나가다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땐 가끔은 나사 하나 정도 빼주면서 숨을 후우 하고 내뱉으며 내 몸 안에 숨쉴 공간도 마련해주고, 주말이나 휴일엔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내 온몸을 편안하게 만들거나 하릴없이 멍때리며 한 시간 정도는 정시보다 느리게 가보는 것이다.


시계탕에 나오는 엄마도 아마 나와 같은 바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고장난 시계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강제로 고장난 시계로 살면서 어쩌면 그 전보다 더 행복감을 맛 보았는지도 모르고. 책을 읽으며 요즘의 나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 한 동안 마음이 일렁였다.

그리고 자그맣게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시계가 완전히 멈춰버리기 전에 가끔은 5분 10분 길게는 한 시간씩 느리게 시계바늘을 돌리며 천천히 나아가보자고. 쉼없이 돌아가다 과열된 기계가 생명이 짧듯 시계도 빨리 돌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안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긴 시간들을 건강하고 현명하게 살아내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을 하나씩 수행해나가기로.


책에서는 고장난 시계가 된 엄마를 딸이 시계탕이라는 뜨끈한 온천으로 데려가 살려내었다. 내게 시계탕은 무엇일까? 곰곰생각해보니 바로 낮잠. 또 일상으로 들어가 1.5배 속 시계가 되려들 때 나의 시계탕. 낮잠이라는 탕에 몸을 담그고 돌아와 일상으로 다시 가뿐하게 들어가야지.


당신의 시계탕은 무엇인가요?


#시계탕

#바쁜하루

#주말엔휴식

#그림책에세이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너도 고민이 있니?해결할 수 없는 고민에 대처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