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가진 무게에 대한 성찰. 내 이름은 내가 가꾸기에 따라 달렸다
"모든 이름에는 의미와 비밀이 숨겨 있대
내 이름에는 어떤 비밀이 들어있을까?
그림책 내 이름에 등장하는 구절 중 가장 마음에 강하게 남은 구절이다.
요즘 나는 매주 토요일 그림책으로 진행하는 마음 들여다보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수업에서 들은 내용을 아이들과도 함께 적용해보고 있는 중이다. 이번 주 수업에서 다룬 그림책은 바로 "내 이름"이라는 그림책. 제목이 참 직관적이라서 읽어보지 않아도 이름에 관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챘지만 그림책을 펴드는 순간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 이름에 대해 깊이있는 성찰을 할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
도서관 수업에서는 내 이름이 의미하는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어보고 발표도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 모인 수강생들의 발표 하나하나가 귀에 쏙 박혀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보자면 바로 한 수강생이 한 말인 "이름처럼 살아진다"라는 한 마디. 그러면서 이름을 지을 때 참 신중해야 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50년 가까이 살아보니 이름이라는 건 단순한 글자를 뛰어넘어 이름에 담긴 뜻에 맞도록 행동하고 살아가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첫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도 매우 신중했다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 말이었다. 첫 아이를 낳고 우리 부부는 이름을 짓는데 한 나절을 다 보냈던 것 같다. 앞길이 창창한 아이에게 세상 그 어떤 이름보다 고귀한 이름을 선물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로 자라나길 염원하면서 고심끝에 이름을 지어 선물해주었다. 슬기로울 서 다할 진 . 열과 성을 다해 지어준 이름이지만 지금에와 보니 사실 한 반에 한 명정도는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이름이었다.
도서관 수업에서도 그와 같은 고민을 가진 수강생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 석자 중간중간 꽃을 다양하게 달아준 그림을 내보이며 조심스레 입을 떼셨다. "저는 제 이름이 참 싫었어요. 한 반에 두 세명은 꼭 있었거든요. 그래서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어요" 그렇게 초라하게 생각한 이름이었는데 오늘 그림책 수업 후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다 나름의 의미가 있어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지 않겠냐며 오늘이라도 꽃을 예쁘게 달아 그동안 자신의 이름을 터부시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지금부터라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싶단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한 수강생이 말을 덧붙였다. "그만큼 귀하고 예쁘고 좋은 이름이라 사람들이 많이 짓지 않았을까요? 이름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실 것 같아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평소 아들의 이름이 너무 흔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이름을 지은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기 시작했다. 자식이 특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지 않겠냐며.
그 때 그 수업이 내 마음에 큰 감화를 주어 월요일 아침 출근길 빨간 표지의 내 이름 책을 득의만만하게 들고 출근했다. 아이들에게 토요일에 들은 수업 책이라며 실물화상기에 펴서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간다. 주인공의 이름 '고민수' 민수의 이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을 땐 빛나고, 누군가가 놀리거나 잘못을 한 상황에선 부글부글 끓거나 숨고 싶은 이름이란다.
이름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아이들이 킥킥 대며 즐겁게 따라 읽어가다가 다음의 대목에서 잠시 생각에 빠지는 듯 했다.
"내 이름은 나,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얼굴, 이름만으로도 친구들은 나를 금방 알아"
나는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친구들이 내 이름을 떠올리면 어떤 말을 떠올릴까?"
우리 원우이름을 들으면 어떤 말이 떠올라?"
그 말에 옆에 앉은 소율이는 "일기를 자꾸 미루는 아이요" 원우의 표정이 잠시 시무룩해진다. 한 달 내내 일기를 내지 않아 골머리를 앓게 하던 아이. 아침에 보니 오늘은 원우의 이름이 적힌 일기장이 있어 마음을 놓았었다. 나는 금방 소율이의 말을 수정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 최원우는 일기를 냈단다. 오늘부터 원우는 일기를 안 미루고 잘 쓰는 성실한 아이로 바뀌었어."
나의 말에 소율이는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고 다른 아이들은 오오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는 바로 말을 이어 붙였다.
"얘들아 이름은 내 얼굴이야. 내가 평소에 하는 말과 행동들이 고스란히 내 이름에 어려있어. 그러니 내 이름을 소중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뒷자리에 앉은 하준이가 총기어린 눈으로 대답한다.
" 고운 말을 쓰고 선생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며 친구들을 배려해야 해요"
나는 대답대신 "애들아 김하준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니?"
여기저기서 물건 잘 빌려주는 아이, 독서록 잘 쓰는 아이 등 좋은 말들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교실을 가득 메운다. 하준이의 입은 어느새 귀에 걸려있다.
지난 토요일 수업때 들은 한 수강생의 말이 떠올라 불쑥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름 뜻을 잘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서너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 뜻을 기억해내고 발표했다. 빼어나고 바다처럼 넓고 거대하고 등등 부모님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이름으로 전해졌다. 아이들의 이름의 뜻을 함께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이름처럼 살아진대. 그러니 너희들 이름에 담긴 원대한 뜻을 잘 기억하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지금부터 조금씩 노력해나가자. 내 이름은 나의 얼굴이기도 하니까"
이름처럼 살아진다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갑자기 자세를 바르게 고쳐앉았고 그 어느때보다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수업에 집중했다. 수업을 마친 뒤 이름의 여운이 남은 교실엔 쉬는 시간 서로의 이름에 대해 물어보는 아이들의 왁자한 틈 속 나도 내 이름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부드러울 유, 아름다울 미. 아빠가 집에서 몇 날 몇 일을 옥편을 찾아가며 지어주신 이름. 사람들은 내 이름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까? 그리고 나는 부드럽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의문부호들이 돌연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당연하게 치부해왔던 내 이름 석자를 입 안 가득 하나씩 굴려 발음해본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턴 이름처럼 살아진다는 말을 부적처럼 믿어보련다. 부드럽고 아름답게 사는 삶. 나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가꾸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삶. 내 이름 석자를 들으면 부드럽고 아름다움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라는 다짐으로 하루를 마무리해보련다.
어른인 내게 뒤늦게라도 내 이름을 좋게 가꾸어주자는 다짐을 주는 그림책 내 이름. 역시나 그림책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