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걀과 감자와 호박. 당신의 삶은 무엇인가요?

내 삶은 미나리. 씁쓸하고도 향긋하다.

by 이유미

"삶은 미나리. 씁쓸하면서도 향긋하고"


지난 주 토요일 그림책 테라피 수업에서 또 한권의 인생 그림책을 만났다. 제목은 바로 "삶은 달걀과 감자와 호박" 제목만 들으면 단순히 음식에 대한 줄거리가 나올 법하지만, 책의 제목과는 달리 삶이라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소재에 대해 다양한 음식으로 비유해놓은 깊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책이다.


한페이지씩 넘길때마다 삶은~이라고 시작하는 그림책. 재료를 삶다의 "삶은"이라는 의미와, 인생을 뜻하는 "삶은"은 그 형태도 발음도 유사하다. 언어유희를 이용해 삶을 재미있게 풀어낸 그림책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의 맨 첫장은 삶은 달걀로 포문을 연다.


“삶은 달걀. 겉모습으로만 보면 알 수 없지. ”

첫 문장부터가 내 심장을 깊이 파고든다. 겉으로는 다 행복하고 무탈해보여도 들여다보면 속이 곪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최근 여러 지인을 보며 절감한터라 첫 문장에 일단 시선을 빼앗겼다.


그 뒤로도 죽 이어지는 삶은 으로 시작하는 26개의 다양한 음식들의 향연에 나는 마치 26첩 반상을 먹은 듯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삶에 대해 벌써 다 알아버린 듯한 착각과 함께 말이다. 그 중 가장 내 가슴을 깊이 파고든 문장은 바로 삶은 미나리. 씁쓸하면서도 향긋하다. 요즘 내 삶이 딱 그러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미나리처럼 씁쓸하면서 때론 향긋하다.학교에서, 그리고 집에서의 쳇바퀴처럼 도는 생활을 하는 동안 씁쓸하고 향긋함의 반복이다. 학교에선 다양한 아이들과 학부모님을 마주하며 입안에 쓴 맛이 돌 때가 간혹있다. 늘 같은 에너지로 지도를 반복해도 항상 제자리인 아이들. 예측불가한 안전사고로 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아이들. 정신없이 보내는 아이들과의 일과 속 화장실 한 번 가기도 벅찬 나날들.


집에서는 어떤가? 늘 투닥거리는 두 남매의 싸움중재에 지켜버리기도 하고, 남편과 육아문제로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고, 가족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꿰뚫어볼 수 없기에 생기는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들. 하긴 어제도 남편과 육아문제로 다투다가 진이 다 빠져버렸고 잠까지 설쳤더랬다. 향긋함 보다는 사실 쓴맛이 가장 많은 하루하루의 나날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내게 향긋함을 선물하는 순간도 분명 존재한다. 주말엔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고 남편과도 불안정한 전선을 유지하며 입안에 쓴맛만 남긴 채 오늘 무겁게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상 위에 한가득 쌓인 일기장을 보며 잠시 한숨을 쉬다가 나의 댓글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기대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한자한자 정성을 다해 적어갔다.


검사를 하던 도중 만난 한 아이의 글. 자신이 경험한 주말일기의 끝에 세 줄 남짓 나를 향한 작은 메세지가 적혀있었다.

"선생님 행복한 하루도 있고 힘든 하루도 있죠?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집에선 아이들 돌보느라 힘드시죠? 고생 엄청 많아요. 제가 항상 응원하고 있을게요 화이팅!"


세 줄 남짓한 일기에 어제의 쓴맛이 일순 달아나고 향긋함이 은은하게 입 안 전체로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미나리를 입에 한가득 넣고 천천히 씹으며 향긋하고 단맛을 느끼듯 그 세 문장을 입안에서 내내 굴려보며 향기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림책 속 삶은 미나리가 딱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입안에 향긋함을 가득 머금고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들어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어제 많이 피곤했나봐. 화도 잘 안내던 사람이 아이들한테 화도 내고. 힘듬을 몰라줘서 미안해. 피곤하고 힘들 땐 언제든 말해줘. 힘내서 수업해"

추신: 아무리 화가 나도 감정적으론 하지 말고.


뒤이어 돌아온 대답에 나는 입안 한 언저리에 살짝 남은 씁쓸함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미안해. 아무리 화가 났어도 그렇게 하면 안되었는데 나도 반성해. 힘내서 수업해"


수업 종이 울리고 나는 내게 세 줄의 메세지로 미나리보다 더 향긋함을 선물해준 아이를 촉촉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보더니 이내 미소를 머금고 국어책을 부지런히 피기 시작했다. 나는 입안 가득 향긋함을 가득 머금고 무기력한 몸을 일으켜 세워 국어 수업을 향기롭게 마무리했다.

미나리는 처음 씹으면 쓴맛이 먼저 나는 법이다. 하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오래 씹다보면 그 향긋함이 은은하게 퍼지고 나중엔 기분좋은 단맛이 입안 전체로 퍼져나간다. 절대 급하게 씹으면 알 수 없는 그 향긋함. 나는 이 그림책을 만나고부터 삶을 그렇게 살아가보기로 했다.


급하게 씹어 삼키지 말고, 천천히 씹어삼키며 씁쓸함 속에서도 향긋함을 꼭 찾아나가자고. 그런게 진짜 미나리 같은 삶이라고 말이다.


당신의 삶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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