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성향에서 벗어나 조금은 느슨해지기
최근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그림책이 하나있다. 이주 전 도서관 그림책 수업에서 우연히 만난 책인데 수업이 끝나고나서 지금껏 내게 긴 여운을 준 책이다.
제목은 바로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그 시기 나는 우리 반의 한 아이로 인해 꽤나 속을 앓던 중이었다. 돌아보면 그 주에 수영교육이 있는데다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로 인해 아이들이 피로에 허덕이던 시기였기도 했다. 그런 날일수록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평소보다 몸집을 더 불리기도 하니까.
그 아이는 평소 adhd를 앓고 있어 충동조절이 어려운 아이였다. 반 아이들이 조금만 자신을 불편하게 해도 날카로운 촉수를 세워 공격하는 아이. 한날은 수영교육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옆 줄의 여자아이가 자신의 줄을 침범했다고 씨*이라고 허공에 크게 내뱉은 사건이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교탁 옆에 불러다 훈계를 했고 그것이 또 화를 촉발시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발로 벽을 세게 차며 입으로는 다시 비속어를 내뱉고야 말았다.
한차례 심호흡을 하고 그 아이를 복도로 조용히 불러내어 지도했다. 화를 내기 전에는 생각할 게 있다고. 그 화를 내는 순간엔 개운할지 몰라도 그 후엔 자신을 비롯 주변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화는 내는 것보다 참는 것이 어려운 것이고 그 어려운 것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자고.
진정이 된 아이는 고개를 땅으로 떨구었고, 자신도 마음대로 제어가 안되는 감정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약물치료랑 상담은 받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졌다. 노력해보자고 선생님도 옆에서 화라는 감정 다스리는 법을 자주 말해주겠다고 토닥이며 교실로 돌아갔다.
다음날, 학기 초 부터 예민한 성향으로 자주 아이들위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한 아이와 어제 그 아이가 또 시비가 붙는다. adhd성향의 어제 그 아이는 학급규칙을 잘 안지키는 아이들을 늘 불편해하는데 그 아이에겐 예민성향의 아이가 늘 눈엣가시였다. 큰 고성과 함께 욕설이 오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고 나는 어제에 이어 또 그 아이구나 싶어 화가 솟구쳐올랐다. 심호흡을 세차례 하고두 아이를 불러 지도하고, 여전히 씩씩대는 어제 그 아이를 다시 복도로 부른다. 나도 사람이기에 연달아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아이에게 어제 느낀 연민이 순식간에 달아났고 그 자리를 분노라는 감정이 채웠다.
“어제 선생님이 말한 것 기억안나? 선생님도 너가 자꾸 이러면 지쳐. 늘 말하잖니. 생각하고 행동하자고. 쉽지 않겠지만 계속 노력 또 노력해야해. 안그러면 선생님도 더이상 너를 지도하기가 힘들어져. 너를 믿어 믿지만 너도 믿게끔 행동해주었으면 좋겠다“
화가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이 남긴 후회를 절감하는 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교실로 돌아가고 나는 한동안 바깥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이 아이랑 보낼 시간이 6개월도 더 남았는데
그때마다 내가 평온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이 아이를 큰 문제없이 지도할 수 있을까?”
속으로 불쑥 든 두 문장에 절로 어깨가 축 내려갔고 한숨이 샜다. 나머지 시간을 어찌 마무리 했는지도 모르게 보냈고 모두가 웃으며 퇴근하는 기분좋은 금요일에 나만 울상이 된 채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인 토요일, 그림책 수업에서 만난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처음보는 그림책이었는데 두 번째 장의 그림에서 나는 가슴에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일렬로 가지런히 놓인 수박밭에서 돌연 수박하나가 사라진 것. 그 사라진 수박에 집착하며 매일 밤을 세우다 심신이 지친 주인. 어느 날 밤 고양이떼의 습격으로 엉망이 된 수박밭을 바라보며 오히려 안도하고 숨을 몰아쉬는 내용의 그림책이었다.
나는 그 일렬로 놓인 수박밭의 수박하나하나에 우리반 25명의 아이들이 겹쳐보였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울린 건 하나가 사라진 수박이었다. 그 사라진 수박은 그 주 내내 내 속을 앓게 만든 그 아이같았다. 사실 그 아이 빼고는 모두가 선생님의 말을 잘 따르고(물론 몇 번 말을 해야하지만 잘 따르는 편) 학급규칙을 순순히 따르며 평온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중이다.
은근히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나는 반 아이들이 큰 이탈없이 나의 지도에 잘 따라와주고 그 가르침을 각인해 훌륭한 아이들이 되길 바랬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수박밭인 셈이다. 인생이 예측 불가하듯 내가 매해 만나는 아이들도 늘 그런 아이들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인지 올해 유독 힘에 부치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수박이 자꾸 없어지니 나도 앙통처럼 그 아이를 쉬는 시간마다 늘 감시하고 시시때때로 아이의 동태를 살피고 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이의 화에 전전긍긍하며 날로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다.
그러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수박들이 조금 대열을 이탈하고 자유롭게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앙통이 숨을 내쉬며 편안하게 있는 장면을 보며 나는 뭔가 모를 위안을 느꼈다. 분명 아까는 편안하게 느껴졌던 맨 첫장에 일렬로 가지런히 있던 수박밭의 모습이 오히려 숨막히게 느껴졌고, 마지막 장의 약간 헝클어진 수박밭을 보며 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머릿속에 전구가 탁하고 켜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아이들을 일렬로 줄세우며 이탈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내가 무능하게 느껴지고 모든 게 엉망이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허덕이던 나. 모든 아이들은 내 지도를 잘 따라야하고 모난 모습없이 둥글둥글하게 자랐르면 하는 나. 완벽한 틀에 가두며 뭔가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나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 책이었다.
너무 완벽해지려 애쓰다보면 작은 실수나 실패에도 쉽게 무너지게 되는 법. 25명의 아이들은 모두 내 맘같지 않다. 내 자식도 마음대로 안되는 데 어찌 이 아이들을 내 구미에 맞게 다 통제하려 한 단 말인가. 잠시 이탈한 수박이 있다면 인내를 발휘해 기다려주고, 강압적으로 끌고 가는 대신 그 아이의 성향과 속도에 맞게 느슨한 기준을 주며 지도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고양이의 습격에 흐트러져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 그 밭을 이탈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 잘 놓인 수박밭을 여유롭게 바라보던 앙핑처럼 나도 그 아이를 비롯한 우리 반 아이들을 그런 마음가짐으로 바라보며 남은 날들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뭉근하게 들었다.
수박밭에서 수박들이 가끔을 줄을 이탈하고 이리저리 구르더라도 포기라는 카드를 꺼내는 대신 인내의 카드를 들고 그 밭 에 꾸준히 양분을 주고 물을 준다면 내년 2월에는 모양과 크기는 다르지만 속은 꽉차고 붉은 수박들이 탄생하지 않을까?
이러나저러나 수박밭의 주인은 나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