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의 작은 냄비. 당신이 가진 결핍은 무엇인가요?

서로의 결핍을 따스히 바라봐주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주자

by 이유미


“사람들은 잘 몰라요. 아나톨이 평범한 아이가 되려면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요“


어제 도서관 그림책 수업에서 만난 “아나톨의 작은 냄비”라는 책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라는 제목에서 시사하듯 주인공 아나톨은 늘 작은 냄비를 지고 다닌다. 떼어버리고 싶지만 절대 뗄 수 없는 자신의 몸의 일부와도 같은 냄비. 책에서는 냄비로 묘사되었지만 그 냄비란 아나톨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아들은 실제로 장애를 가졌다고 한다. 이 그림책도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썼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아나톨이 끌고 다니는 냄비가 작가의 아들에겐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그런 관점에서 그림책을 대하니 문장 하나하나가 내게 크고 작은 진동을 일으켰다.


냄비는 아나톨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한다. 걸을 때마다 늘 달그락거리며 큰 소리를 내어 성가시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 냄비를 좋지 못한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냄비를 떼어낼 방법은 없으니 갑갑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평범하지 않은 사람 하나를 만난다.


“세상에는 평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되어요. 그럼 그 냄비를 벗어버리고 싶거든요“


아나톨은 우연히 자신의 냄비를 인정해주는 한 어른을 만난다. 자신도 작은 냄비를 가지고 산다고, 자신의 손을 잡고 함께 가자고 하며 말이다.


이 구절에서 문득 중학교 3학년 시절 체육선생님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중간 기말평가에서 다른 과목은 우수한편이라 선생님들의 칭찬을 듣곤 했으나 체육에서만큼은 늘 젬병이던 그 시절의 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3학년 시절까지 만년 달리기 꼴찌라는 타이틀이 늘 꼬리표 처럼 따라다녔던 탓인지 늘 체육시간만 되면 이상하게 주눅이 들고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그 당시 체육과목은 실기평가가 80프로를 차지했는데 나는 체육에서 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시간표에 체육 두 글자가 든 날엔 다른 아이들은 아침부터 기대감에 환호성을 질러댔지만 나는 혼자 고개를 푹 숙이곤 했으니까. 그 시절 체육은 내게 아나톨의 냄비처럼 달그락 거리며 내게서 좀체 떨어지지 못하고 지독하게 괴롭혔다.


중간고사대비 체육 실기평가인 50m달리기를 일주일 쯤 앞둔 어느 날이었다. 시험도 보기 전에 나는 체육이 또 전체과목 평균을 깎아내리겠다는 절망섞인 확신에 나날이 근심이 깊어져갔다. 이번엔 꼭 반 1등을 해서 삼남매를 키우느라 나날이 허리가 꺾이는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주고 싶은데 체육이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도 힘없이 학교에 터덜터덜 도착해 수업을 듣고 맞은 쉬는 시간, 아직도 선연히 기억나는 그날의 기억. 옆 반 친구가 체육선생님이 잠시 체육실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긴장한 마음으로 조용한 체육실로 들어섰다. 나를 본 체육선생님은 의자를 내어주시며 앉으라고 하시곤 아직까지도 선연한 그 명대사인 다음의 말을 살포시 던지셨다.


“체육시간마다 참 힘들지? 표정만 봐도 자신감이 없는 네 모습을 볼때마다 선생님도 참 안타까웠어. 다른 과목은 참 우수해서 너희 담임선생님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는데 체육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는 널 안쓰러워하시더라. 체육도 해보면 별거 아니야. 다른 과목 공부하듯 체육도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니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봐 넌 잘할 수 있는 아이니까 믿는다“


그 말에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교실로 서둘러 돌아갔다. 다른 어떤 것 보다 나 혼자 꽁꽁 숨긴 내 안의 결핍을 이해하고, 잘 할 수 있다는 격려까지 아끼지 않는 선생님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터져나온 것이다. 나를 이해받았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감사했던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실제로 그 날 이후 나는 무언의 동력을 얻어 매일 집 앞을 내달리며 연습하기 시작했고, 일주일 후 50m달리기 수행평가에서 9초대의 기록을 얻어(아직까지 기억나다니 참 인상깊었나보다) 수행평가 상 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중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체육과목에서 90점을 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아나톨이 자신의 결핍을 이해하고 인정해준 누군가를 만나 작은 냄비를 벗어버리고픈 마음을 가졌듯 나도 중학교 3학년 시절 만난 체육선생님으로 인해 체육이라는 작은 냄비를 잠시나마 벗어버릴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체육을 잘 한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그 이후 체육이라고 하면 늘 주눅들던 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성인이 된 지금 스쿼트도 200개 거뜬히 해내고(물론 삐걱일 때가 더 많지만) 어려운 요가동작(가끔 넘어지기도 한다)을 해내고 있는 건 그 시절 내 작은 냄비를 인정해준 체육선생님 덕분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처럼 이 세상 누군가들도 아나톨처럼 보이지 않는 냄비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냄비 속엔 다양한 결핍들도 가득 담겨있을테고.

그림책 속에선 아나톨이 그토록 떼내고 싶은 결핍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 대신 그 결핍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 더 이상 냄비를 거추장스런 무언가로 생각하지 않게되었다.


우리 자신도 그런 냄비를 가진 서로를 조금 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준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 냄비는 큰 소리로 달그락 거리며 거추장스런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가 마련해준 포근한 가방 속에 쏙 들어가 편안한 무언가가 되어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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