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까지 늦춘 간호사 선생님의 호의
지난 한주, 우리집 두 남매에게 독감이라는 지독한 폭풍우가 불어닥쳤다. 마치 이어달리기 배턴을 건네받듯 첫째라는 주자 후 바로 둘째가 독감에 걸리고야 만 것이다. 고작 5살이 된 아이에게 독감이라는 폭풍우는 매우 거세었다. 39도에 육박하는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며아이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기도 했다.
더 이상 집에서 지켜볼 수는 없어 그날 저녁 8시께 해열제를 먹고 지쳐 잠든 아이를 안고 남편과 동네 소아과 병원을 들렀다. 독감이 여기저기 손길을 뻗쳤는지 늦은 시간임에도 소아과는 독감환자로 문전성시였다. 진료를 보고 나니 8시 55분. 의사선생님은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수액을 맞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시곤 컴퓨터 화면의 시계를 흘긋 거리셨다.
알고보니 진료마감시간이 9시 였던 것. 게다가 오늘은 한 주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이었다. 연일 독감환자 진료로 인해 지칠대로 지친 의사선생님과 그 옆의 간호사 선생님의 파리한 안색을 보니 나도 잠시 머뭇거려졌다. 그냥 약만 받아가서 먹일까도 생각했지만 더 파리한 아이의 안색에 그럴 수 없었다. 의사선생님은 결심한 듯 간호사 선생님께 수액처방지시를 내렸고, 간호서 선생님은 흔쾌히 수액실로 나와 아이를 안내해주셨다.
날카로운 수액바늘이 무서웠던 아이는 작은 방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청바지에 니트차림의 퇴근복장을 한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를 부드럽게 어르며 수액줄을 천천히 꽂기 시작했다.
“괜찮아 아가 이모가 안아프게 할게”
두려움에 얼어버린 아이의 차디찬 마음을 포근한 담요로 감싸는 듯한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금새 울음을 그쳤다. 그리곤 잘했다며 주머니속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더니 아이의 손에 한 가득 올려주셨다.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티니핑 비타민이었다. 독감투병내내 잿빛이던 아이의 얼굴이 화사하게 번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5분쯤 흘렀을까?마지막 수액에서 한 방울이 떨어지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을 호출했고 수액 바늘을 빼낼때도 아까의 포근한 음성으로 아이를 살살 달래며 엄지를 추켜올려주시는 간호사 선생님. 시계는 어느덧 퇴근 시간을 훌쩍 넘은 9시 20분이었다. 얼굴에는 고단함이 잔뜩 묻어있었지만 아이의 마지막 수액줄을 빼내고 잘했다며 아이의 등을 도닥이는 선생님의 손길에는 따스함과 활기가 잔뜩 배어났다.
나와 남편은 퇴근시간을 넘겨서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주억였고 간호사 선생님은 괜찮다며 예쁜 아가가 더 안아프길 바란다며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마지막 환자인 우리를 배웅해주셨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이는 아빠품에서 잠이 들었고 알록달록 소아과 간판등도 그제서야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금요일 밤 늦은 퇴근도 불사하며 아이를 위해 따스함을 발휘해주신 간호사선생님의 마음을, 우리는 마치 담요처럼 휘감고 추운 가을밤 집으로 무사히 되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이는 언제그랬냐는 듯 땀을 내며 37.4도로 떨어졌다. 아마도 어젯 밤 간호사님 손을 통해 전해진, 아이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포근한 담요같은 마음 덕분이 아닐까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간호사님의 다정함은 아이 뿐 아니라 그간 아이걱정에 가슴졸이며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우리 가슴마저 녹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