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은 거칠지만, 속은 부드러운 아이를 보며
어제 점심시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 교실에는 큰 소동이 하나 일어났다. 그 사건의 중심에는 1학기때부터 가끔 내 심장을 발 밑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한 아이가 있었다. 평소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화가 촉발되면 그 화를 마음대로 주체못해 손이나 발이 서슴없이 나가는 아이. 어제는 한 아이가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의자를 발로 차면서 그 의자가 튕겨나가 상대방 아이의 배를 가격했고, 또 그 옆에서 말리던 아이를 주먹으로 턱을 강하게 치는 바람에 턱 밑이 발갛게 부어오르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도 부상의 정도가 경미해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내 마음 속에도 화라는 불길이 마구 솟았다. 아이들을 불러 좌초지종을 듣고 상대방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을 물으니 진심어린 사과라기에 그 아이에게 바로 사과를 하도록 일렀다. 그제서야 자신의 한 행동을 똑바로 직시하게 되었는지 아이는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 두 아이에게 차례로 사과를 했다. 두 아이는 친구의 울음에 다시는 그러지 말아달라며 바라는 점을 나직이 말하곤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급히 전화를 걸어 두 아이의 엄마에게 피해사실을 알리고 내가 한 지도도 설명하며 부모님들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한 차례 폭풍우가 지난 뒤, 아이와 나만 단 둘이 남은 상황. 아이에게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너무 후회스럽다. 화 조절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안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였다. 예상치 못한 무거운 답변에 나는 가슴이 무겁게 쿵 떨어졌다. 우선 단호하게 손이나 발로 누군가를 치는 행위는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중대한 폭력행위라며 아이에게 경각심을 주었다. 그리고 나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자꾸 친구들을 치고 싶은 생각이 드니?"
나의 질문에 아이는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눈물을 머금은 채 작게 답했다.
"선생님 저도 모르겠어요. 화가 나면 손부터 나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고치고 싶은 데 마음대로 안되요."
그 말에 나는 가슴에 다시금 무언가 쿵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애처로운 눈빛이 되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매일 약도 먹고 뇌파치료도 받으며 열심히 조절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하지만 가끔씩 제어가 안되는 날이 있다며 오늘이 그런 날이라고 했다. 아이의 숨은 사연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은 나는 속에서 활활 솟구치던 화가 어느 새 휘발되고 안타까운 마음의 불꽃이 살살 피어오른다.
이런 아이들을 교육현장에서 접하면 나는 자주 무기력해진다. 내가 아이의 뇌속으로 파고 들어가 화가 나는 순간 손을 들지 말라고 늘 경고등을 울려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믿어주고 단단히 훈계를 하는 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도와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아이를 보며 나는 나직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이런 저런 조언을 했다. 화를 조절하는 방법에 대해 노력해나가자고. 잘 안된다고 해서 손놓고 무너져 버리면 네가 더 힘들어진다고. 오늘 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며 아이를 도닥였다. 인생은 두 발짝 앞으로 나가고 다시 한 발짝 뒤로 나가는 일이 있다해도 멈추지 말고 계속 노력해 나아가자는 명언까지 덧붙이며 30분 가까이 일장 연설을 했다.그리고 폭력의 행위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행위이기도 하다며 다른 사람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자신. 소중한 자신을 위해서라도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말자고 말이다.
그리곤 아이에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행동을 자주 하자"라고 외치게 한 뒤 조용히 집으로 돌려보냈다.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대고 오늘의 일이 아이에게 큰 경각심을 주어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하는 간절한 바램을 담아 나는 "선생님은 너를 믿어"라는 말을 작게 내본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뜻밖의 아름다운 장면을 목도했다. 국악시간, 오늘은 특별히 강사선생님이 수업을 해주시는 일이라 나는 뒤에서 수업하는 아이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시야에 어제 그 아이가 들어온다. 장구채 잡는 것이 어려워 헤매는 앞자리의 아이에게 손수 시범까지 보여가며 친절히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그뿐 아니다. 뒷 자리의 아이가 장구채를 떨어뜨리니 허리를 숙여가며 장구채를 잡아 책상에 올려주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 한 구석이 뜨거운 무언가로 적셔지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들의 어려움을 저렇게나 세심히 알아봐주고 자신의 손길을 서슴없이 내어주는 아이인데, 저 예쁜 마음을 가진 아이의 뇌속에는 도대체 어떤 괴물이 살고 있길래 자꾸 그 예쁜 마음을 시커멓게 물들여버리는 걸까. 하루에도 수번 저 아이는 예쁜 마음을 친구들에게 많이 표현하고 있을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두 아이가 순순히 아이의 사과를 받아준 까닭은 바로 평소 이 아이가 보인 예쁜 마음들 덕분이 아닐까하고.
물론 때리고 치는 행위는 단호하게 훈계하고 재발할 수 없도록 단단히 지도해나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지도만큼 아이의 마음 속에서 이런 다정하고 예쁜 마음이 많이 발휘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고, 그리고 그런 행위를 보일때마다 누구보다 더 추켜올리고 도닥이며 아이의 뇌를 집어삼키는 괴물이 그 예쁜 마음을 가진 천사가 물리칠 수 있도록 노력해주는 것이 선생님인 내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음악시간에 목도한 그 다정함이 내 마음을 뭉근하게 울린 오늘이었다. 분명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일을 또 겪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다짐한다. 아이도 나름 그 괴물과 싸워 이겨내려 부단히 애쓰는 중일테니 나도 그 옆에서 힘이 되어주자고. 경고등을 마구 울려주고, 아이의 다정함이 더 크게 발휘되어 그 괴물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도록 지도의 끈을 놓지 말자고 말이다.
국악 수업에 이어 수학 수업이 끝난 2교시 쉬는 시간에 어제 그 두아이가 내게 재잘대며 말한다.
"선생님 00이가 사과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갔어요"
나는 그 아이를 흘긋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오늘 쓴 도형판을 양손 무겁게 낑낑대며 연구실로 가져가려는 나를 본 그 아이가 한달음에 달려온다.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는 조심스레 그 도형판을 아이의 손에 건네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어깨를 톡톡 쳐주었다.
양 어깨가 위로 솟은 채 교실 앞문을 나서는 아이를 보며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리고 속으로 작게 다짐한다. "불시에 나오는 너의 거침없는 행동에 선생님도 자주 힘에 부치지만 너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너를 위해 지도의 끈을 놓지 않을게. 네 작은 속에서 자주 발현되는 다정함들이 큰 힘을 발휘해 언젠가는 네 속의 괴물을 다 물러나게 만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