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우표가 있다면?

세줄쓰기에 기대에 전하는 진심들

by 이유미

개학 후 첫 세줄쓰기 주제를 뭘로 할까 고심하다 얼마 전 흥미롭게 읽었던 “세상의 마지막 우체국” 속 내용이 번뜩 떠올랐다.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불우한 삶을 살던 주인공에게 힘을 주던 한 유명가수가 돌연 자살을 하게 된다. 실의에 빠진 주인공에게 어느날 천국으로 가는 우표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우표값이 200만엔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선뜻 우표값을 지불해 천국에 있는 가수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다시 힘을 내게 된다는 꿈만 같은 이야기.

그 이야기 속 주제에 영감을 받아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를 전자칠판에 조심스레 적어넣었다.


“천국으로 편지 보낼 수 있는 우표가 있다. 누구에게 쓸 것인가?”


오랜만에 받아든 세줄쓰기 주제에 아이들은 반가운 표전으로 열심히 연필을 굴리기 시작한다. 아직은 상실을 경험하기엔 어린 나이지만, 이 주제를 통해 드러날 아이들의 깊은 생각이 궁금해 나는 아이들이 세줄쓰기를 어서 완성하기를 두손 모아쥐며 손꼽아 기다렸다.


오랜만에 교실에 퍼져나가던 딱딱 연필소리가 기분좋게 들려왔다. 이제 아이들과 조용한 아침시간마다 부단히 이어온 세줄쓰기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살짝 시렸다. 세줄쓰기로 평소 잘 알기 어려웠던 아이들의 속내를 알며 전보다 더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또 그들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개며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지난 일년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교실을 울리던 연필소리가 어느새 잦아들었다.


오늘은 공책 검사보다 아이들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싶어 발표를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손을 든 아이는 세줄쓰기 발표할 때마다 늘 앞장서 말하던 세현이. 세현이가 손을 들자 그 상대가 누군지 알겠다는 듯 반 아이들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 여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우리집 강아지 콩순아.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지? 나는 늘 그 날이 너무 후회돼. 너를 더 조심히 살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너무 보고 싶다. 아직도 니 사진보면 자꾸 눈물나. 하늘나라에선 안아프고 행복해야 해“

너를 아끼는 세현이가


세현이의 발표에 잠시 교실에 적막이 감돌았다. 눈이 벌개져서 교실로 들어오던 어느 여름날의 세현이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같은 상실을 경험한 안녕 팝콘이라는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이들과 함께 세현이의 마음을 위안해주었던 기억. 그날 세현이는 나와 반 아이들앞에서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봐주었던 마음씨 고운 반 아이들의 표정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다음으론 비슷한 경험을 지닌 우재.

“세상을 떠난 우리집 강아지 두 마리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살아있을 때 말 안듣는 다고 강아지를 때린 일이 후회가 된다. 좀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발표를 하다 불쑥 솟구친 감정에 아이는 울먹이느라 다음의 말을 끝내 이어가지 못했다. 나는 괜찮아지면 얘기하자고 아이를 다독인다.


이런 순간이 나는 참 감사하다. 아이가 작은 속에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우연히 세줄쓰기의 주제에 기대어 내놓으며 자신의 감정을 속시원히 표출하는 이 순간 말이다. 교실이라는 곳을 편안한 안전지대로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간 우리는 세줄쓰기 시간에 서로의 이야기를 공감해주고 글솜씨에 대한 어떤 가혹한 평가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고 위안해주는 시간이 쌓여 교실을 안전지대로 만들어주었던 것.

우재의 이야기는 더 듣지 못했지만 반 아이들 모두가 그런 우재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행동은 가끔 거칠지만 속은 여리고 따뜻한 아이라는 걸 아이들은 수없이 들어온 우재의 세줄쓰기 발표로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다음은 하준이의 발표


“나라를 위해 용기있게 싸워주신 위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당신들 덕분에 우리가 잘 살아간다고 쓰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반 배려왕 하준이 다운 발표였다. 딱히 상실을 경험하지 못해 쓸 사람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내던 몇 아이들의 눈에 불빛이 탁 켜지는 순간이다. 가족이나 지인 키우던 반려동물이 아닌 위인이라니. 참신한 대상에 아이들은 모두 입이 살짝 벌어진다.


학기초부터 친구들을 배려하고 늘 학급일에 앞장서는 하준이의 큰 마음이 세줄쓰기를 통해 다시금 입증되는 시간이다. 나는 엄지를 추켜올리며 하준이 같은 아이들이 참 많아지면 세상이 참 밝아지겠다며 아이들을 향해 흐뭇한 웃음을 내었다.


이 외에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아빠가 많이 보고 싶어하신다고 전하고 싶다는 승민이, 살아계실때 자신을 참 예뻐해주시던 할머니께 감사했다고 전하고 싶다는 윤서,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외할머니께 쓰고 싶다는 해인이까지. 돌아가신 조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발표를 줄줄이 듣다 보니 나도 문득 쓰고 싶은 사람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돌아가신 외할머니께.

외할머니, 그곳에선 안아프고 잘 지내시지요? 막내딸인 엄마가 늘 가여워 새벽같이 시장에 나와 산나물을 판 돈으로 쌀과 우리 삼남매 먹을 과일, 과자등을 보따리에 잔뜩 이고 오셨던 고마운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갑자기 직장암판정을 받고 쇠약해지셔서 몸져 누워 잠시 우리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지요. 엄마가 잠시 외출한 사이 할머니와 단둘이 남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할머니가 요의를 느끼셔서 저를 불렀는데 서툴게 도와드리다 그만 바닥에 실례를 하게 만들어버렸어요. 그 와중에 할머니는 내내 미안한 기색을 보이셨구요.

얼마 뒤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기셨고 그 후 할머니와 영영 작별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잊지 못해요. 사실 너무 무섭고 두렵고 어린 마음에 오줌을 치운다는 것이 더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생각을 가진 것 조차도 얼마나 죄책감이 들던지. 할머니는 저희를 위해 새벽같이 애써주셨는데 말이예요.


할머니 저희집에 계시는 잠시동안 세심히 보살펴드리지 못해 죄송했어요. 그날 어린 손녀에게 미안한 감정을 들게 만든 사실두요.


그리고 할머니,지금 그렇게 아끼시던 막내딸인 엄마가 많이 아프셔요. 할머니도 많이 속상하시지요? 하늘에서 막내딸인 엄마가 기운내시고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지켜주세요.


편지가 길어졌네요. 할머니 그곳에선 늘 편안하고 행복하세요. 답장을 받을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아마 이 마음 편지를 쓰지 않아도 마음깊은 할머니는 아실거라 믿어요.

사랑합니다“


아이들의 발표에 자극을 받아 나도 모르게 삽시간에 써내려간 편지. 이 편지를 아이들 앞에서도 조심스레 읽으며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표정도 함께 애처로워졌다. 나는 이 아이들의 눈빛에서 받는 위로가 참 포근하고 좋다. 또한 아이들도 이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엄격해보이는 선생님의 입에서 듣는 진솔한 속얘기를 들으며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도 하니까.


서로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으며 하나가 되는 이 세줄쓰기 시간이 쌓여 지금을 만들었다. 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순간. 우리는 안다. 각자 모두는 나름의 깊은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나누면서 한 발 가까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위안을 받으며 더 힘을 내게 된다는 것 또한 자명한 사실이고.


천국으로 보낼 수 있는 우표는 없지만, 우리는 이 세줄쓰기가 천국으로 보낼 수 있는 우표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았다. 서로의 말을 가감없이 들어주고 표정으로 위안해주는 행위 하나가 굳이 천국으로 거금을 들여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마음을 전하기엔 충분했다.


천국에 있는 모든 분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잘 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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