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

무탈히 보내는 하루에 감사한 날들

by 이유미

오늘 아침 출근길, 믿을 수 없는 비보를 들었다. 불과 어제 4학년 다른 반 아이 한 명이 독감에 걸려 갑작스런 쇼크로 쓰러져 인근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당일 저녁 안타깝게 하늘나라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말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며손이 벌벌 떨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지병도 없고 이틀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교실에서 즐겁게 생활했던 아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하루아침 사이에 운명을 달리하는 일이 과연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거칠게 뛰는 심장을 겨우 부여잡고 교실로 향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멍한 내 표정을 보던 몇 아이들이 오늘의 세줄쓰기 주제는 뭐냐고, 오늘의 명언을 뭐냐고 묻는 통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보니 매일 띄워놓던 판서를 띄워놓지 못했던 것이다. 아까의 비보에 도무지 마음이 잡히지 않았던 내가 곧장 교실로 들어오지 못한 탓이었다. 정신이 혼미했지만 그래도 할일은 해야지 하는 생각에 겨우 정신을 붙잡고 키보드에 겨우 손을 얹고선 오늘의 명언을 적었다.


"하루를 마지막처럼 소중히 살아라. 오늘 하루는 전날 죽은 이가 간절히 원하던 그 하루다"


아까의 비보를 듣고 머릿속으로 번개처럼 스친 한 마디였다. 그리고 다음은 세줄쓰기 주제


"오늘 아침 등교길 감사한 일 세가지 쓰기"


매일 습관처럼 하는 우리 반 아침 루틴 두 가지를 차례로 적고 난 뒤 그제서야 잠시 호흡을 고른다. 아이들은 평소와 달리 착 가라앉은 내 모습을 힐끗 살피다 잠시 갸우뚱하는가 싶더니, 자신들에게 평소처럼 주어진 아침루틴을 아무렇지 않게 이어갔다. 잠시 뒤,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여느때와 같이 명언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의 명언을 읽는 데 마음 속으로 울컥했다. 평소에 자주 들었던 이 말이 오늘 상황에 꼭 맞아 떨어져 가슴에 사무친 탓일테다. 눈자위가 살짝 붉어진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아이들. 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여기는 오늘 하루가 결코 당연하지 않은 하루야 얘들아. 지금 이 순간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 누군가와의 예상치 못한 이별에 가슴이 미어지는 사람들이 있을테지.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더없이 소중히 보내자 얘들아.”


평소와 달리 무게가 가득 실린 말에 아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이어진 세줄쓰기 발표. 앞서 내가 언급한 명언 덕분인지 아이들의 감사일기는 모두 건강, 평온한 하루, 일상이라는 키워드가 꼭 하나씩 들어가 있었다.


오늘 하루 건강히 등교해 선생님과 친구들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몸이 아프지 않아 감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뜰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등

25명의 발표자 중 반 이상은 모두 이런 류의 발표를 했다.


마지막 발표자 아이의 말은 다시금내 마음을 쿵 울렸다.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


별 의미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아침의 비보를 가슴에 묻은 터라 그 말 한마디에 콧날이 시큰해졌다.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 그 말이 꽤 오래도록 교실 안을 울리며 내 머릿속에서 쉬이 떠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건강한 몸으로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 온전히 감사해야 할 일임을. 오늘의 비보를 통해 뼛속깊이 절감한다.


세줄쓰기 발표를 마치며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전날 안타까이 돌아간 누군가를 위해 1분 1초라도 허투루 쓰지 말고 순간순간을 반짝 윤이날 만큼 소중히 보내자고 다짐하며 다음 수업을 이어갔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25명의 아이들이 이 교실에 앉아 내 수업을 듣는 모습도 당연한 것이 아님을, 하늘나라로 간 그 아이를 떠올리며 또 절감한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나도 1분 1초를 소중히 쓰기 위해 평소보다 더 아이들을 더 세심히 관찰해 칭찬거리를 열심히 찾아 해주고, 의식적으로 따스한 격려도 이따금 해주며 말이다. 그리고 수학 단원평가가 예정된 시간에 과감히 그 시험을 월요일로 미루고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요를 부르며 아이들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바라보며 자주 침울해지려는 내 마음도 다독였다.


이날의 마지막 5교시 수업 종료 5분 전 아이들이 다 함께 징글벨 노래를 부르며 꺄르르 웃는 모습을 멀거니 지켜보는 데 다시금 가슴이 미어진다. 그 아이도 잘 회복해 돌아왔다면 이 아이들처럼 깔깔 거리며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징글벨 노래를 불렀을텐데 하고.


우리 반 아이는 아니지만 오늘 수업 내내 안타까이 돌아간 아이를 떠올리며 자주 가슴이 울컥거려 혼이났다. 그러면서 아침에 아이들과 다짐한 것 처럼 소중한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냈다. 하교시간 아이들에게 쓰는 알림장 감사일기엔 이렇게 썼다.


"아침에 큰 사고 없이,아픈일 없이 무사히 등교해 수업도 잘 듣고 친구들과 신나게 노래부르며 즐겁게 하루를 보낸 아이들 감사합니다"


안타깝게 하늘나라의 예쁜 별이 되어 돌아갔을 한 아이의 명복을 빌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련다.



“사실 선생님은 너의 얼굴도 잘 모르지만 선생님으로 이 자리에 단단히 서서 너와 꼭 같은 친구들이 하루를 무탈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그리고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평온하기를“


삶이 자주 지치고 힘들때마다 오늘 일을 꼭 기억하리라. 살아있어서 감사하다는 오늘 우리 반 아이의 말을 떠올리며, 매 순간을 소중히. 별 감흥없이 보아 넘겼던 그 명언. 오늘 하루는 어제의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던 그 하루라는 말을 가슴 깊이 각인하며 내게 주어진 하루, 열심히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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