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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09. 2023

쏟아진 커피에서 얻은 교훈, 2차 화살은 위험하다.

구렁텅이에 빠졌을 땐, 빠져나올 궁리부터 하자.

 얼마전의 일이다.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번개맨 뮤지컬을 보러가는 날.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조수석에 앉으려는 찰나 마침 손에 든 커피컵이 차문에 부딪히면서 아이보리색 가디건으로 쏟아졌다. 새하얀 가디건이 군데군데 짙은 황토색으로 얼룩졌다.

 순간 속에서 화가 솟구쳤고, 곧바로 나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졌다. 격앙된 목소리로 “아 짜증나, 이래서 어떻게 밖을 돌아다니나. 칠칠치 못하게 이게 뭐야” 좁은 차안이 들썩이게끔 불평을 쏟아냈다. 마침 뒤에 앉은 둘째까지 큰 소리로 울어댔고 그 소리에 더 화가 난 나는 욱해서 남편에게 차를 돌리자고 말했다.

 이에 남편은 내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 “거기에 화장실이 있을 거야 얼룩은 지우면 돼”라고 나직이 말했다. 나는 이게 어떻게 지워지냐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았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왜 커피를 가지고 와서는, 앉을때 좀 조심히 앉을걸. 암튼 조심하지 못하는 성격 문제야문제“라며 나 자신을 향해 끈임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가는내내 부정적인 감정이 쉬이 가라앉지 않고 활활 타올라갈때쯤 문득 얼마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불현듯 스쳤다.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나온 2차화살이라는 말.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1차화살,그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2차화살이란다. 모든 문제는 바로 이 2차화살에서 비롯된다는 것.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빠져나올 방법을 궁리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자신에 대해 2차 화살을 쏘며 책망하며 고통에 이른다는 것이다.

 늘 책을 읽고 이런 명문장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실생활엔 적용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반성했다. 그러고보면 커피가 옷에 쏟아진 건 1차 화살이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나의 칠칠치 못함을 자책하는 건 2차 화살. 2차로 모자라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씩씩대기까지 하는 등 3차4차 화살까지 쏘기까지 한 것.

 1차 화살이라는 그 상황을 얼른 받아들이고 그 화살을 뽑을 대책, 즉 남편 말대로 화장실을 가서 비누로 대충 얼룩을 지우면 된다. 1차 화살에서 끝내야 더 큰 고통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차 화살로 입은 상처에 2차3차 화살까지 맞는다면 그 고통은 너무 거대해지니까.

 속으로 재빨리 생각의 전환을 한다. ‘그래 커피를 쏟은 건 되돌릴수 없는 사건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얼른 가서 화장실에서 얼룩을 지우고 즐겁게 공연을보는 거야.‘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서 얼룩을 대충 문질러지웠다. 거울을 보니 다행이도 그 부분이 긴머리에 덮여 눈에 띄지 않았다. 아까 차 안에서 열올린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질정도로..두 아이는 공연내내 방방뛰며 좋아했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공연이 끝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공연장 주변의 캠퍼스를 산책하며 여유로운 주말을 만끽했다.

 다시 차안으로 돌아오는 길, 즐겁게 시간을 보낸 두 아이는 잠들고 평화로운 차 안에서 남편이랑 대화하다 문득 가디건을 보니 아주 옅은 얼룩이 보일까말까 할 정도로 말끔해져있었다.

 아까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 내 자신에게 2차3차화살을 계속 쏘아댔다면 아이들이 신나하는 모습, 가을빛으로 물드는 중인 예쁜 캠퍼스 내부를 만끽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까 그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혜성처럼 떠오른 책에서 만난 명문장에 또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의 인생길에서 날아올 무수한 1차 화살들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2차 화살을 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임을 새삼 깨닫고야 만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마음 속 깊이 아로새길 또 나만의 명문장을 만들어본다.

 “옷에 커피얼룩이 져서 속상할때는, 재빨리 근처 화장실을 찾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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